오래 머물러 있던 곳은 머릿속 기억이 아니라, 온몸의 감각으로 장소의 경험이 몸에 배어든다. 그곳의 냄새, 그곳의 온도, 그곳에서 바라본 노을의 색이나 등 뒤에서 들려오던 아무 의미 없는 소음들까지 온통 그곳을 그립게 만든다. 그래서 몇 달 만에 고향으로 향할 때면, 문득 ‘고향의 냄새’ 같은 것이 정겹게도 불어오는 것만 같다. 특별히 시골이나 어촌이 아니고서야 비슷비슷한 도시 사이에 차이랄 게 있겠냐마는, 아무튼 고향에서는 실체를 알 수 없는 익숙하고 정겨운 감각들이 되살아나곤 한다. 

부산 소재 대학을 다니면서도 부산의 방방곡곡을 누비지는 못했다. 기질이 게으른 탓도 있겠고,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했던 탓도 있었다. 카페에서 늘 같은 자리에만 앉는 단골손님처럼, 나는 늘 대연동, 남천동, 전포동 정도의 범위 내에서만 지냈다. 꼼꼼하고 애살맞은 부산 청년은 아니었지만 우직하고 꾸준한 ‘부산 거주자’였달까. 그러다 보니, 대학 시절 내내 지냈던 고시원 인근의 꼬불꼬불한 골목을 헤매지 않고, SNS에서 ‘맛집’이라며 호들갑 떠는 가게들이 ‘그냥 근처 밥집’ 정도로 익숙해지는 순간도 왔다. 재작년에 이사를 해 지금은 금련산 역 인근에서 지내는데, 누군가에겐 관광지인 광안리가 이렇게 편안한 앞마당처럼 느껴질 줄은 몰랐다.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선 부산영어방송재단에서 부산 청년을 대표하며 <부산 청년 생태보고서>라는 제목의 라디오 다큐멘터리의 작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어느새 나는, 부산 사람이 다 되어 있었다. 

세 번째 단락에 이르러 뒤늦은 고백을 하자면, 나의 물리학적 고향은 부산이 아니다. 나는 김해에서 태어나 초중고 시절을 모두 김해에서 보냈다. 삼계동과 내동, 외동이 주 활동 지역이었다. 부산보다 훨씬 좁은 김해에서도 나는 늘 같은 자리에만 앉는 고리타분한 단골손님처럼 주 활동 지역을 벗어나지 않으며 지냈다. 그러던 내가 부산에서 산 지 이제 딱 10년. 요즘 같이 급변하는 시대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도 너무 느슨하다. 강산이 아니라 거의 모든 삶의 방식들이 변했다. 그런 시대에 내 인생 3분의 1을, 나는 부산에서 보냈다. 

스물다섯, 스물여섯 그때까지만 해도 김해 본가로 향할 때면 앞서 말한 그 ‘고향의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지하철 2호선 사상 역에서 경전철로 환승하고 집으로 향하는 길. 3호선과 환승역인 대저 역을 지나 평강으로 향할 때쯤이면 거짓말처럼 ‘김해 냄새’가 났다. 심지어 경전철은 열린 창문 하나 없는데도. 그러면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는 거다. “아, 역시 고향은 고향이네.” 그렇게 집에 도착하면 하는 일 없이 마음이 편안했다. 동네를 걷기만 해도 구석구석의 변화를 알아차리는 재미가 있었다. 

그러던 내 감각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건 바로 작년부터였다. 오랜만에 본가로 향하는 경전철 안에서 나는 ‘고향의 냄새’ 같은 건 생각도 하지 않고 봉황 역에 내렸다. 맛있는 집밥을 먹고 TV를 보며 쉬면서도 왠지 엉덩이가 근질근질했다. 부산의 내 방에 남겨둔 마무리 짓지 못한 일들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룻밤을 자고 다시 부산으로 향하는 길, 경전철 종점인 사상 역에서 내려 2호선 지하철로 환승하러 가면서 나는 익숙한 감각을 느꼈다. 맞다. 이유 없이 마음이 편안해지는, 실체를 알 수 없는 ‘고향의 냄새’였다. 김해와는 조금 다르지만, 그립고 편안한 부산의 냄새. 그러고 나서 세어보니 내가 부산에 터를 잡고 산 지 어느덧 10년이었다. 

김해 연지공원보다 부산 시민공원이, 김해 김수로 왕릉보다 부경대학교 캠퍼스와 UN 평화 공원이 더 살가워질 줄은 몰랐다. 수시로 올랐던 김해 경운산보다 금련산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광안대교가 더 숨통이 트일 줄은. 타지로 떠난 고등학교 동창이 부산에 왔을 때, “우리 동네에서 보자.”는 말이 이렇게 자연스러워질 줄은, 정말.  

태어난 직후 10년 동안은 동물적인 존재로서 신체가 성장하는 기간이고, 그다음 10년은 신체와 자아가 자리 잡는 기간이다. 자랄 대로 자란 스물의 내가 부산에서 살아온 10년은 어떤 기간이었던 걸까. 아마 내가 존재하는 공간과 나 사이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정립하는 기간이었던 게 아닐까. 그런 10년을 나는 부산에서 보냈다.

‘제2의 고향’, ‘마음의 고향’ 같은 진부한 표현이 내 이야기가 되었을 땐, 전혀 진부하지 않았다. 이젠 누가 내게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부산’이라고 대답해도 영 틀린 말이 아니다. 10년이면 강산은 당연히 변할 테고 어쩌면, 고향도 변한다. 그리 서운하기만 한 일은 아니다. 다른 곳이 아니라 부산이어서, 부산일 수 있어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