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에는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당연하다는 듯 일어났다.

광장에 백만이 모였다. 인구 14억 중국이 과장 섞어 웅장하게 표현할 때 쓰던 말이 백만 대군이다. 우리는 인구 5천2백만 중 백만이다. 제주에서만 5천 명이 올라왔다. 고속도로는 명절을 연상시키는 정체를 이루었다. 시위를 위해 모인 백만 사이 큰 부상자는 없었다. 사상자는 0명. 백만은 떠나며 쓰레기를 줍고 모았다. 백만이 머물렀던 거리는 멀끔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물론, 백만이 모여야만 했던 이유는 더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레스터시티가 우승했다. 레스터는 영국 런던에서 북쪽 약 160km 정도 떨어진 인구 30만 정도의 중소규모 도시다. 레스터시티가 속한 프리미어 리그는 세계 축구 4대 리그에 속한다. 시장규모는 세계 제일이다. 2016년 이적료로만 1조 7천억을 훌쩍 넘긴 리그다. 토트넘에 입단한 손흥민 이적료가 400억 가량이었다. 팀 선발 선수 전체 이적료를 합쳐 약 300억 정도였던 팀이 레스터시티다. 2부 리그에서 올라왔고 우승 전 시즌에는 강등을 걱정하던 팀. 도박사들은 레스터 우승 확률을 0.02%로 책정했다. 실상 불가능하단 소리. 하지만 레스터시티는 스타플레이어 한 명 없이 프리미어리그를 우승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염소의 저주 : 컵스를 지독하게 괴롭힌 염소의 저주는 지난 1945년 컵스 팬인 빌리 시아 니스가 염소 머피와 함께 WS 4차전이 열린 리글리필드를 방문했다가 4차전 도중 경기장에서 쫓겨나자 당스 컵스 구단주 필립 K 리글리에서 전보를 보내 독설을 퍼부었고 해마다 저주처럼 컵스의 발목을 잡았다.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4738308

시카고 중앙일보 김민희 기자 기사 중 발췌

시카고컵스도 우승했다. 동시에 지긋지긋한 염소의 저주도 털어냈다. 108년 만의 월드시리즈 우승컵이다. 극적 요소는 세월만이 아니다. 경기는 7차전까지 이어졌고 연장 10회 초 ‘벤 조브리스트’의 결승타로 이룬 우승이었다. 상대인 클리블랜드에 시리즈 전적 1-3으로 몰린 상황에서 3연승을 거두며 리버스스윕 우승을 달성했다. 이 역시 미국 프로야구 역사에서 31년 만에 나온 기록이다. 우승 퍼레이드에는 컵스 팬 5백만이 거리로 나와 환호했다. 뉴욕 타임스는 컵스가 우승하지 못하는 동안 미국은 두 차례 세계 대전을 치렀다. 전 세계에 질병으로 난리가 났고 기술 발전 속 최신식의 자동차부터 달나라로 갈 수 있는 로켓까지 만들었다며 얼마나 오랜 세월인지 비유했다. AFP통신도 108년을 강조하며 그간 존 케네디 대통령 암살, 세계 1, 2차 대전, 인터넷, Y2K, 사스, 에이즈, 이슬람 테러, 레이저, 흑인 메이저리그 선수 등장 등의 역사적 사건이 있었다고 말했다. 국내 야구팬들은 순종 때 우승 이후 첫 우승이라며 재치 있게 축하했다. 그럼 한화도 할 수 있겠다는 댓글도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더 오랜 세월 만에 일군 기적도 있다. 럭비에서 뉴질랜드는 막강한 월드 챔피언이다. 경기 전 마오리 족 전통춤인 ‘하카’를 추는 것으로도 유명한 뉴질랜드 럭비 대표팀은 상, 하의 및 양말까지 모두 검은색 유니폼을 입어 ‘올블랙’이라고도 불린다. 7번 열린 럭비 월드컵에서 2회 우승한 유일한 팀이기도 하다. 아일랜드에서도 럭비는 인기 있는 스포츠고 월드 랭킹 6위의 저력 있는 국가다. 하지만 아일랜드 럭비는 뉴질랜드 앞에선 항상 초라했다. 얼마나 오래 못 이겼냐면 무려, 110년이다. 아일랜드는 지구가 소멸할 때까지 결코 뉴질랜드를 이기지 못할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런 아일랜드가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인터내셔널 매치에서 111년 만에 뉴질랜드를 이기고야 말았다. 경기 해설자는 자신이 지금 역사를 보고 있다며, 우리는 역사 속에 있다는 멘트로 이 놀라운 이변에 찬사를 보냈다. 올해 시카고는 기적이 이루어지는 도시인 듯하다. 108년 만의 승리와 111년 만의 승리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했다. 2016년 6월 23일(현지시간) 진행된 브렉시트 찬반 국민투표에서 투표에 참여한 영국 국민 3355만 명의 51.9%인 1742만 명이 브렉시트 찬성에 표를 던지면서 반대(48.1%)를 3.8% 포인트 차이로 이겼다. 이에 따라 영국의 EU 탈퇴가 결정됐다. 영국의 EU 탈퇴는 1973년 EU의 전신인 유럽 경제공동체(EEC)에 가입한 지 43년 만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브렉시트에서 발췌)

당시 캐머런 총리는 영국의 미래를 위해 EU 잔류에 투표해 줄 것을 국민들에게 호소했지만 국민들이 결국 브렉시트를 선택하자 투표 결과를 수용하겠다며 사임 의사를 밝혔다. 영국의 탈퇴는 유럽연합의 결합과 효율성을 위태롭게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더욱 커지면서 브렉시트 직후 글로벌 증시는 폭락했다. 전문가들은 브렉시트로 인해 영국의 경제상황이 안 좋아질 것을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브렉시트가 확정된 이후 영국 소비는 호조를 기록했다. 앞으로 브렉시트가 불러올 현상들을 지켜봐야 하겠지만, 공고하게 보였던 유럽연합에 균열이 생겼다는 점은 우려되는 부분이다. 세계 5위 경제 대국이자 유럽연합의 주축이었던 영국이 최초 탈퇴하는 국가가 될 줄은 몰랐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미국의 각 주와 워싱턴 DC의 선거권자는 직접 대통령 후보에 투표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특정 정, 부통령 후보를 지지하기로 서약한 선거인단에 투표한다.

선거인단 제도에 대한 설명 – 두산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67120&cid=40942&categoryId=31651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었다. 무슨 말을 더 해야 할까? 트럼프 당선이 확정되자 캐나다 이민국 홈페이지는 접속 과부하로 마비되었다. 많은 미국 국민들이 거리로 나와 대선 불복을 외쳤다. 이는 선거인단 제도의 허점을 드러낸 사건이라며 울부짖었다. 자국 보호 무역주의를 내세우는 트럼프 당선은 한국 FTA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방위 비용 부담을 해당국에서 책임져야 한다는 트럼프의 신념 때문에 주한미군 문제와 북한과의 관계 역시 새 국면을 맞을 공산이 크다. 트럼프는 과격하고 폐쇄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다. 그는 미국을 자신의 기업처럼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오로지 경제만을 내세운 지도자를 선출했던 말로가 어땠는지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너무 잘 알고 있다. 트럼프 당선 소식에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고 앞 다투어 우려를 표하는 형국이다. 미합중국 45대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이 모든 일이 올 한 해 벌어졌다. 정말이지, 2016년에는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당연하다는 듯 일어났다. 이젠 UFO가 지상에 착륙하여 지구인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해도 별로 놀랍지 않을 것 같다.

판타지란 단어가 사전에서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나는 인생계획을 다시 세웠다. 이전에 지웠던 일들을 적었다. 위시리스트 개수가 늘고 버킷리스트 항목이 추가됐다. 사진을 좋아해서 ‘캐논 1DX’를 최종 기종으로 목표 삼았었는데 ‘핫셀블라드’로 고쳐 적었다. ‘세계일주’가 내 여행 계획 중 가장 원대한 꿈이었는데 여기 ‘달 여행’을 더했다. ‘소설로 등단’이란 목표를 적을 때에는 이조차 주제넘은 듯 하여 부끄러웠는데 그 아래 ‘한국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이라고 끄적대면서는 무덤덤했다.

지금까지 나는 상식을 기준으로 실현 가능할 법한 일들만 계획해왔다. 하지만 2016년은 상식을 허무는 한 해였다. 병신년을 지나는 동안 그 어떤 병신 같은 짓을 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믿음이 생겨버렸다.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다 될 성 싶다. 혼자 상상하며 피식 웃고 넘겼던 어이없는 망상들을 진지하게 계획하고 있자니, 어라, 이상하게 방향이 잡히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 될 것 같더라.

공상이 실현되고 망상이 실제가 된 작금, 세상에서 나만 현실에 잡혀 사는 건 도무지 억울하다. 나는 유년의 철없음을 되찾고자 한다. 무엇이라도 될 수 있을 것만 같던 비상식과 어떤 일도 이룰 자신 있던 무모함을. 생각해보니 실현의 기준을 세운 건 내가 아니었다. ‘이건 돼요?’ 하고 물으면, ‘안 돼’ 라고 답하는 세상을 통해 불가능을 학습해 온 거다. 그런 세상이 단호히 안 된다던 일들이 보란 듯 이루어진 한 해다. 말하기조차 싫은 어떤 일들 마저 말이 되어버린 점은 유감이지만, 어쨌든 이를 통해 하나 알게 되었다.

말도 안 된다는 말이 말도 안 된다는 걸.

영화 매트릭스의 유명한 포스터 카피.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 상상 이상의 세상이다. 벌어지는 일들에 비하면 우리의 상상력은 비루하다. 분발해야 한다. 말도 안 된다는 핀잔에 주눅 들어 우리는 상상력을 잃었다. 하지만 이토록 많은 안 됨이 되어버린 걸 목도한 시점에서 더 이상 움추릴 필요 없다. 당연하게 외치자. 말이 된다고. 말처럼 될 거라고. 시간이 걸릴지언정 결국 안 될 일은 없다고.

지극하게 믿어 온 상식은 깨졌다. 지독하게 억압당한 상상을 펼쳐야 한다.

이제, 우리의 상상은 판타지가 아니다. 머잖아 판타지란 단어 자체가 사전에서 사라진다 해도 수긍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엇을 상상 하든 그 이상을 보여주는 세상에서 실상 이루지 못할 것이 무엇 있으랴?

안 될 것 같으니까 더 하고 싶다

초등학교 때 공상과학 그림 숙제가 주어지면 다들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그렇게도 그려댔다. 막상 실제로 믿는 아이들을 거의 없었다. 남들이 많이 그리니까 그게 꼭 미래 사회 그림의 필수 요소처럼 인식되었을 따름. 만일 어떤 아이가 당돌하게 ‘저는 커서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만들 거예요!’라고 하면 진지하게 듣는 어른은 없을 테다. 아이의 귀여운 상상 정도로 흐뭇하게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겠지.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자동차로 하늘을 날기 위해 연구한 사람이 있고, 결국 해냈다.

2003년 7월 21일, 호주 시드니에서 개막된 ‘빅 보이즈 장난감 전시회’에 미국의 발명가 폴 몰러 박사가 ‘스카이 카’를 선보인 것이다. 반경 10m 좁은 공간에서 이ㆍ착륙이 가능하고 헬기의 4분의 1만큼 연료를 소모함에도 시속은 헬기의 2배 이상인 570km로 날 수 있는 자동차. 상용화 여부는 다음 문제다. 대체로 안 된다고 했거나,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던 상상을 실제로 구현했다는 게 중요하다. 그런 걸 만들어서 뭐하냐며 현실의 제약들로 따지고 들 때, 누군가는 아랑곳없이 그걸 만들어 냈다는 거다. 세계 도로 교통을 하늘로 옮기는 건 무리겠지만, 하늘을 나는 자동차가 가능하다는 것만으로 다방면의 모색이 가능하다. 또 모르는 일이지. 제5원소의 도시 속에서 살아갈 후손들의 시대가 올 지도.

어떤 말도 안 되는 일의 취지가 좋을 때, 사람들은 거기 동감하지만 진지하게 생각하진 않는다. 로봇이 가사 일을 대신할 수 있다고 50년 전에 말했다면 누구나 ‘그거 참 편리하겠군!’이라고 답할지언정 대부분 가사 로봇의 보편화를 믿지 않았을 거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로봇과 함께 사는 삶을 상상으로만 치부하지 않는다. 머잖은 미래에 그런 날이 올 것을 믿는다. 로봇을 비웃던 시대에 누군가는 로봇을 연구했고 점차 성과를 보이며 여론을 바꾼 결과다.

만일, 소속 직원들이 자율적으로 근무하면서 회사를 운영할 수 있다고 하면 누가 그걸 믿을까? 말은 좋지, 취지는 좋지, 하면서 그저 이상향 취급하고 말 것 같다. 서 너명 내외의 소그룹 프리랜서형 집단에서는 가능하겠지만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기업이라면 불가능하다고 단언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회사에서는 서로 직급으로 부르지 않고 모두가 존대어를 사용한다고. 또, 판매 제품의 원가를 공개하고 붙이는 마진까지 드러낸다면? ‘내가 만들고 싶은 기업 문화’라는 주제로 토론을 한다 치고, 누가 이런 내용을 발표한다면 수두룩한 참여자들이 요목조목 반박을 펼칠 모습이 훤하다. 현실감을 가지라고. 빛 좋은 개살구라고. 경영은 이상만으로 할 수 없다고.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하지만 직원들조차 반신반의하던 이상향을 향해 가는 회사도 있고, 2016년이 우리에게 준 교훈을 생각해보면 별로 놀라운 일도 아니다. 혹 누군가 ‘에이, 그건 몇몇 외국회사에서나 가능한 거지 한국에선 안 돼.’라고 삐딱선 탈지 몰라 미리 말해둔다. 한국에도 그런 회사 있다. 자율근무제를 실행하고도 매출 향상을 이루는. 요즘엔 면접도 얼굴 안 맞대고 보더라.

칸투칸의 2016년, 말도 안 되는 일

나는 글쓰기 프리터다. 이 회사에 필요한 글을 쓰고 원고료를 받는다. 홍보 성향의 글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아니, 도리어 회사 광고하지 말아달라고 부탁받는다. 자신들이 하고 싶은 건 이익을 남기는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익은 그저 직원의 임금을 주고 전기세를 내는 정도면 족하다고. 그럼 무얼 하고 싶냐 하면, 시장에 좀 더 나은 메시지를 던지는 ‘모임’이길 바란다고. 유별난 회사다. 그래서 나는 쓰고 싶은 글을 써 보냈다. 칼럼이나 수필 따위를 줄곧 써냈다. 제품에 대한 직접 언급 없는 글들이 제품 파는 회사 마케팅 채널에 노출되었다. 회사는 내게 고맙다고 말했다. 대체 뭐가 고마운지 어리둥절했다.

칸투칸 식구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 내가 존중받고 있다는 걸. 그들은 고용자로서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소통을 추구했다. 굳이 설득하려 들지 않았다. 그저 자신들이 해 온 걸 보여주고 해 나가고 있는 모습을 드러냈다. 내 세계를 자신들의 세계에 욱여넣지 않고도 같은 세계를 공유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프리터는 정식 직원은 아니다. 하지만 소위 말하는 정직원과 비정규직 개념과는 다르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 집단의 수준을 알 수 있다. 나는 파트너다. 그렇게 대해 준다. 또, 여기 속한 직원들은 기술자가 아닌 창작자로서 무르익는다. 직접 모델을 하거나, 사진을 찍는다. 글을 쓰고 고친다. 아이디어를 내고 다듬는다. 칸투칸의 직원들은 숙달되기보다 숙성된다. 그렇게 성장한 창작자들이 칸투칸을 특별하게 만든다. 누군가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는 게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알아서 움직인다. 생각들은 각자의 것이나 생각이 향하는 방향은 한 곳이다.

생각과 생각과 생각을 섞는다.

마음과 마음과 마음을 나눈다.

사랑과 사랑과 사랑을 전한다.

사람과 사람과 사람을 잇는다.

그런 식으로 칸투칸은 세상과 소통한다.

이 유별난 회사는 정말로 이익보다 메시지에 집착한다. 아웃도어 브랜드가 오프라인 광고에 연연하지 않고 온라인 마케팅에 공들이던 초기,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유명 모델이 아닌 직원 모델이 처음 등장했을 때,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대기업도 아니면서 ‘생비스’와 ‘판지오’ 같은, 비즈니스웨어니 애슬래져니 하는 것들을 론칭했을 때,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메시지가 이 모든 걸 말이 되게 만들었다.

웹에서 청년을 위로했고 지난한 삶을 보듬었다. 직원 모델을 멋들어지게 촬영해 누구나 빛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아웃도어 불황에 폭탄 세일 대신 정가 자체를 낮출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고 브랜드 다양화로 숨통을 텄다. 거창하지 않아도 위대함에 다가갈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칸투칸은 그렇게 청년들이 더 많이 찾는 아웃도어 브랜드가 되었다. 이제 디자이너 패션 브랜드인 ‘허니오소리’를 선보이며 또 다른 말도 안 될 욕심을 부린다.

이제 그러려니 한다. 어차피 말 되게끔 만들 테니까.

칸투칸의 행보는 말 같지 않은 소리를 말도 못 하게 멋진 결과로 치환하는 과정이었다. 2016년에는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당연하게 일어났고, 칸투칸도 조용히 넘어가진 않았다. 문득, 직원들에게 물었다. 이렇게.

“칸투칸의 2016년, 말도 안 되는 일에 대해 말해주세요.”

자율근무제, 수평문화, 원가공개, 그리고 슬랙

이 네 가지가 가장 많이 나온 답변이었다. (소비자에게도 묻고 싶었지만 나는 리서치 기관이 아닌지라 거기까진 좀 어렵다.)

한국 기업에서 자율근무란 지자체의 보도블록 갈아엎기와 비슷했다. 보여주기 식 행정에 그칠 뿐이다. 자율 근무가 과연 가능할까? 아웃도어팀 MD 윤영주 씨는 “몇 군데의 회사를 거쳐 오며 이렇게 자율근무제를 완전 자율근무제로 시행하는 부분을 처음 보고 또 거기에 맞춰가고 이루어 가는 부분들을 보면서 놀라운 마음과 우와우와 하는 마음들이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우와가 무려 두 번이다. 작정하고 시키는 사람과 시키는 걸 조금이라도 덜 하려고 발악하는 사람 사이 눈치 게임이 일반적인 한국 직장문화에서, 자율근무란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취급 받기 일쑤였다. 한데 칸투칸은 이를 시행 중이고 2017년부터는 앞에 한 단어 더 붙는다. ‘완전 자율 근무제’

인적자원부 김미경 씨는 “직급·직위 사용 대신, 상대방에 대한 호칭을 ‘님’, ‘씨’로 통일하였다는 점.”을 꼽았다. 말도 안 되는 걸 넘어 보통 말도 못 꺼낼 소리다. 이게 어느 정도냐면 대표를 부를 때도 이름 뒤에 ‘님’이다. 또 모든 직원이 직급 상관없이 존댓말로 소통한다. 수평 호칭 문화는 적극적 의견 개진과 신속한 의사 결정을 가능토록 했다.

칸투칸 홈페이지에 등록된 모든 상품은 원가 및 마진을 공개하고 있다. 그것도 상세페이지 가장 위에 큼지막하게. 몇 개를 팔아서 얼마나 남았다는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판지오 마케터 박지은 씨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기업이 원가공개라는 커다란 어젠다를 시작할 때는 소문난 잔치처럼 엄청나게 요란한 쇼가 필요하다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떠한 언론 기사 하나 없이 배너 계좌를 늘리듯 조용히 쇼핑몰에서 원가 탭을 늘리기만 했습니다.” 칸투칸의 투명성은 이 원가공개로 담보된다. 회사의 본질이 여기 드러난다. 허세 부리지 않는다. 있는 척, 고상한 척하지 않는다.

그리고 슬랙.

‘슬랙’은 협업을 위한 메신저다. 네이트온이나 카카오톡 같은 것과는 다르다. 채널을 여럿 생성해 자유롭게 오갈 수 있고 파일을 주고받거나 특정인을 호출할 수도 있다. 대화 내용과 주고받는 파일이 모두 서버에 저장되어 검색이 가능하고 용량이 큰 원본 파일도 전송된다. 윈도와 맥, 안드로이드와 IOS를 모두 지원한다. 구글드라이브와 연동하여 URL의 공유 문서 제목을 자동으로 읽어온다.

칸투칸 구성원의 의사소통은 이 슬랙 상에서 이루어진다. 스카이프를 사용할 당시 개인 메시지로만 보고 가능했고 자료는 메일로 주고받거나 직접 상대 자리로 가야 했다. 슬랙에서는 관련 구성원이 동시에 보고사항을 파악할 수 있고 공유한 파일은 누구든 다운로드 가능하다. 슬랙이 도입되면서 수평 호칭 문화도 어렵지 않게 정착되었다. 슬랙은 누구나 손들고 검증 없이 얘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프리터인 나 역시 슬랙으로 소통한다. 조금의 불편도 없다.

슬랙이 무엇보다 매력적인 건 스스로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회사 돌아가는 사정을 속속들이 알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면 회사 철학에 자연스레 동화된다. 따로 시간을 내지 않아도 슬랙을 통해 회사를 파악해 나갈 수 있다, 자유롭게 이동 가능한 채널들을 살피며 오늘 총매출을 알 수도 있고, 아직 공개되지 않은 신상품의 정보도 취할 수 있다. 고객 클레임이나 홈페이지 오류처럼 민감한 부분까지 가감 없이 들여다볼 수 있다. 타 부서 이슈에도 관심이 생기면서 시야가 넓어지고 지식이 깊어진다.

슬랙은 투명하다. 아무것도 숨김없이, 아무나 다 알 수 있도록.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는 건 당연했고, 같은 손에 달린 손가락끼리도 서로 무얼 하는지 도통 알 수 없던 것이 기존 한국 기업 문화였다. 우리 팀, 너희 팀 나누어 경쟁하고 실적에 따라 암묵의 권력이 나누어지는.

슬랙에는 편이 없다. 다 한 팀이고 같은 이슈를 공유한다. 누가 명령하지 않아도 제 일을 찾아 하고, 제약 없는 피드백이 이루어지기에 자율근무제가 가능하다. 알아서 일하고, 위계를 따지지 않고, 10원 단위까지 원가를 공개하고, 업무용 메신저로 일하는 회사라니.

진짜 말도 안 되는 일, 이라고 생각했지, 나 역시.

척하지 않고 척척 한다.

표면적, 대외적으로 하는‘척’ 시늉이 아니다. 자발적, 자율적으로 ‘척척’ 한다.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누군가 뿅 나타나서 척척 도와준다. 때론 서로 일 더 못해서 안달 난 사람들 같을 때도 있다. 고용주도 아닌데 꼭 자기 명의 회사처럼.

‘내 껀데? 내 브랜든데? 내 콘텐츠인데?’

슬랙으로 회사 운영이 가능한 건 직원 수준이 일정 이상을 담보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직원이자 모두가 주인이기 때문이다. 들어오기는 어려워도 나가기는 쉬운 회사를 표방하기 때문이다. 까다롭게 채용하되 구성원의 의사를 존중한다. 성장시키되 발목 잡지 않는다. 애사심을 강요하지 않지만 직원들은 자기 일을 사랑하게 된다. 언급했듯 각자가 한 명의 창작자이기 때문이다. 가장 큰 동기는 자발적 동기다. 칸투칸은 그 부분을 자극할 줄 안다.

칸투칸 스스로 B급 감성이라고 하는 부분이 있는데 막상 B급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키치적 느낌은 없다. ‘진퉁’처럼 보인다. 원가공개 역시 ‘사장님이 미쳤어요! 창고개방!’ 뉘앙스라기보다 진정과 진심으로 다가온다. 싸구려 감성과 차별화되는 칸투칸만의 묘한 고급짐. 그 기반엔 세심한 ‘정성’이 배어있다. 배너 카피 하나도 무척 고심해 작성하고 사진 한 장 크롭에도 수많은 생각을 한다. 그 ‘정성’은 단순히 회사 콘셉트에 따라 기계적으로 일한다고 나오는 게 절대 아니다. 우러난 애정으로부터 나온다. 애정이 깊어지면 신뢰가 된다.

말도 안 되는 일들을 말이 되게 한 근본은 바로 이렇게 피어난 신뢰다.

상식을 뛰어넘는 세상에서

인정한다. 이룬 성과에 도취되기에는 아직 이루어야 할 것들이 많다. 다만, 이루어 낸 것들은 우리에게 용기를 준다. 말도 안 된다고 했던 일까지 기어이 말이 되었다.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만한 말. 맹목적 아집이나 고집은 없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목표를 향했고 본질에 다가가기 위해 부단히 탐구했던 것 뿐. 진짜 안 될 일을 우긴 적은 없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우직하게 했을 뿐.

찬찬히 따져보면, 말도 안 된다고 했던 그 일들은 제법 가능성 있던 일들이었다.

백만이 하나의 맘으로 움직였기에 아름다웠다. 레스터시티는 단단한 수비와 발 빠른 공격수를 배치해 철저한 역습 전략을 구사했다. 시카고컵스는 젊고 유망한 선수들로 전력을 다지며 시즌 시작 전부터 도박사들에게 우승 후보 0순위로 꼽혔다. 브렉시트와 트럼프 당선은 이성적 판단에 따른 결과는 아니었다. 중요한 사안들이 의외로 감성에 더 많이 지배된다는 사실을 간과했기에 벌어진 사달이다. 칸투칸은 지속적으로 직원들에게 기회를 주었고 창의적 시도를 계속했다. 어설픈 콘텐츠를 만들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 과정을 지켜보고 지원하여 내공이 쌓이도록 이끌었다. 아이를 믿어주는 어른 1명만 있다면 아이는 바르게 자란다는 말처럼, 직원을 믿어주는 회사가 있었다.

진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진 않았다는거다. 칸투칸이 나이키를 이기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 시카고 컵스가 과거로 가서 염소를 극진히 모시고자 타임머신 개발에 구단 운영비를 투자한 것도 아니다. 그들이 이룬 성과는 지극히 될 법한 일이었다. 0.02%의 자릿수에 실망하지 않고 맨 끝 2에 사활을 걸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매우 작은 수치일 뿐 아주 불가능한 수치는 아니잖은가? 전략을 세우고 줏대있는 비전을 따랐다. 0.02%는 기어이 200%의 현실이 되었다. 상상 속에서나 이룸직한 비상식적 결과였다.

상식을 뛰어넘는 세상에서 실상 이루지 못할 게 무어랴? 남들이 말도 안 된다 말하는, 미련하게 당신조차 그렇게 믿어버린, 그래서 포기하려는 그 일의 가능성을 다시 타진하자. 변화나 시도 같은 것. 그게 될 리 없다고 비아냥대는 일일수록 좋고 함부로 덤비지 못 했던 일이면 더 좋다.

2016년에는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당연하다는 듯 일어났다. 2017년에는 당신 역시 말도 안 되는 일을 당연하게 해 내길. 설령, 해내지 못하더라도 꼭 기억하길. 말도 안 되는 일은 세상에 없으니 목표를 향해 굴하지 말고 나아갈 가치가 있다는 걸.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理想)을 보게 되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