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 있을 때 GOP에서 근무했다. (GOP가 어딘지 모르는 사람을 위해 잠깐 설명하자면, 그냥 쉽게 말해서 애국가 나올 때 38선 철책을 훑으며 가는 군인들, 걔네가 있는 곳이 GOP다.)

GOP는 근무의 형태가 좀 괴랄하기 짝이 없었다. 일단 매일매일이 실제 작전 투입의 형태인데, 그 작전이란 게 바로 경계 근무였다. 그냥 초소에 서서 총으로 전방을 겨누고 북한군이 오는지 안오는지 감시하는, 바로 그 근무. 그러다보니 철책 근무는 24시간 공백없이 풀타임으로 돌아가야했다. 낮에는 초소를 한 개만 잡고, 밤이 되면 초소를 동시에 중대별로 5개를 잡고 밤새 총 인원 28명의 근무자와 상황실 근무자, 그리고 소대장과 부소대장 등의 장교와 부사관들이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여름에는 낮이 길고 밤이 짧아서, 낮에는 무지막지하게 삽질과 곡괭이질과 페인트질을 하고 밤에는 짧게 근무를 섰다. 문제는 겨울이었는데 밤이 정말 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길어지는 날에는, 거기다 안개가 껴서 동시 근무가 연장되는 날이면 8시간, 재수없으면 12시간까지도 근무를 서는 날이 있었다.

말이 12시간이지 당장 밖에 나가서 친구랑 단둘이 밤12시부터 다음날 낮 12시까지 12시간을 보내야된다고 생각해보라. 술을 5시간을 먹고 피씨방에서 게임을 5시간을 해도 2시간이 남는 시간이다. 심지어 군대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친구도 아니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선임이었고, 차라리 술이라도 먹었으면 취해서 즐겁기라도 하지 맨정신에 12시간을 붙어있다보면 더 이상 한마디도 할 힘이 없어진다.

그날이 그런 날이었다. 재수없게 10시간을 근무를 서고 이제 들어가서 잘 생각에 행복해하고 있었는데, 인원이 부족한 관계로 이따 밤에 좀더 재워줄테니 연속해서 2시간 근무를 더 서라는 통보가 상황실에서 날라왔다. 12시간동안 깨 있다보니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다. 여기가 군대인지 군대꿈을 꾸는지도 몽롱한 상황에서 시간은 야속하게도 가다서다를 반복했다. 한 10분이나 흘렀을까 하고 시계를 보면 1분 30초가 지나가 있는 2시간이었다. 너무 지루하게 흘러가서 거의 시간이 멈추는 것 같은 느낌에 손으로 시간을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

그때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느냐면, ‘아, 내가 원한 군생활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나는 총쏘고 뛰고 구르고 좀 뭔가 그래도 군인 같은, 군인 냄새나는, 군인 맛이 나는 그런 밀리터리한 군생활을 꿈꿨는데, 이건 뭐 인간 CCTV도 아니고, 이 짓을 1년을 해야 되는 건가, 솔직한 얘기로 CCTV보다 우리가 단가가 싸서 여기에 이러고 이짓거리를 시키는 것 같아, 하, 이놈의 총 실탄 한번 장전도 못해볼 거 내가 군인이 맞기는 맞나? 멋있게 장전한번 철컥 하고 싶다, 그 장전하는 소리 진짜 좋은데…’ 뭐 대충 이런 의식의 흐름이었다.

근데 그렇게 생각만 하고 있던 찰나에, 뭔가 기분이 좀 이상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진짜로 실탄을 총에다 장전하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속으로 생각만 하면서 듣고싶어했던 그 경쾌하고 기분좋은 실탄 장전 소리, 철컥하는 그 실탄 장전소리는 내 상상이 아니라 실제로 발생한 사운드였다.

일단 나도 놀랐지만 제일 놀란 사람은 똑같이 12시간 잠도 못자고 멍하니 앞만 보고 서있다 갑자기 옆에서 후임이 실탄을 장전해버린 내 선임이었다. 평소에도 과묵하니 별 말이 없던 그 선임이 눈이 3배로 커져서는 그 자리에서 얼음처럼 얼어붙었던 그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그 다음 말 까지도.

“야, 너 뭐하는거야…”

나였어도 놀랐겠지. 실제로 나도 놀란 상황이었으니까. 난 뭐라 설명할 말이 없어서 어버버거리고 있었다. 뭐라고 설명해야될지도 몰랐다. 계속, 죄송합니다, 이게 그냥 생각만 했는데, 잠을 안잤더니… 하며 뭐라고 횡설수설만 해댔다. 다행히 선임이나 나나 상황파악이 빠른 편이었고, 내가 그 선임한테 특별히 악감정이 있거나 불편한 상황이 있던 것도 아니었기에, 얼른 수습이 되었다. 그뒤로 한동안 실탄 근무가 아니라 공포탄을 들고 근무를 들어가야했지만.

GOP에서 잠 때문에 있었던 극적인 일화 중에 하나고 지금은 나름 웃으면서 추억할 수 있지만(이외에 추운데 밖에서 자다가 얼어죽는 꿈을 꿨는데 실제로 일어나니 추워서 온몸 관절이 사후경직처럼 마비가 되어가던 경험이랑, 계속 근무를 서는 꿈을 꾸는 바람에 잠에서 깬 뒤에 근무를 들어가면서 진짜 엉엉 울뻔했을 정도로 억울했던 경험이 있다), 사실 난 이 GOP에서의 1년 때문에 이후의 삶에서 내내 잠에 관해서는 거의 트라우마가 생겼을 정도였다. 지금도 유독 잠을 충분히 못자면 괜히 기분이 나쁘고 스트레스가 쌓여서 하루종일 우울할 정도다. 밤에 충분히 못잤다고 생각되면 어떻게 해서든 낮잠으로든 보충을 해줘야 할 정도고, 그게 안되면 정말 하루종일 우울하다.

이런 내 생활패턴은 특히나 잠에 인색한 한국의 노동 환경과는 정말 맞지가 않았다. 내가 현재 프리랜서 극작가라는 사실이 이럴 때는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매일 아침에 칼같이 일어나 출근하고 늦게까지 야근하는 평범한 직장인 생활을 나는 도저히 해낼 자신이 없다. 매일 지속적으로 컨디션이 하락하는 동시에 노동 효율성이 영구적으로 떨어지는 상황은 군대에서 했으면 됐지 또 할 여력은 더 남아있지가 않다.

그리고 군대에서의 저 실탄 장전 경험을 그냥 웃어넘길 에피소드가 아닌게, 미국에서는 실제로 24시간 연속 근무를 하고 집에 돌아온 경찰이 서랍에 있던 권총을 천식 약으로 착각하고 입에 넣고 당겨버린 사고 사례가 있었다. 내가 들고 장전을 했던 총이 전방으로 향해 있었고, 다행스럽게도 근무중이라 양손으로 들고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망정이지, 만일 훈련 상황처럼 긴장된 분위기에서 누군가를 조준하고 있는 와중이었다면, 내가 같이 있던 선임을 향해서 방아쇠를 당겼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군대에서 내내 내가 이해할 수가 없었던게 바로 이 잠에 대한 인색함이었다. 간부들은 도무지 병사들을 푹 재울 생각 따위를 하지를 않았다. 심지어 어떤 장교는 ‘대한민국 군인들의 평균 수면시간은 6시간이니 매일 6시간씩만 자도 된다, 엄살부리지 마라’ 고까지 했다. 그러는 자기는 BOQ에서 매일 늘어져라 풀타임으로 자는 사람이. 더군다나 쉬어야되는 주말에까지 이어지는 청소에 일광건조에… 제대로 맘 편히 자본 기억이 군대에서 있었는지 모르겠다.

거기다 경직된 한국 노동 환경의 특성상 아마 전역후에 평범한 직장인이나 노동자의 삶을 살았다면 비슷하게 수면 부족에 시달렸을 거다. 내가 중국을 부러워하는 것 중 하나는 점심 먹고나서 무조건 2시간의 낮잠 시간이 있다는 것이다. 중국에선 점심을 먹고나서 학생들은 책상 위로 기어올라가고, 노동자들은 알아서 그늘에서 발을 뻗고 눕는다. 그때는 어느 높은 사람이 와도 이들의 잠을 깨울수가 없다고 한다. 스페인에 여행을 갔을때도 제일 적응이 안됐던게 한여름의 서머타임이었다. 사실 건조한 날씨라서 그늘만 가면 시원한데도 얘들은 12시부터 2시까지는 무조건 휴식이었다. 더워서 일 못한다면서.

재밌었던 건 이 서머타임을 욕하는 건 무조건 한국사람들이었다는 거다. 한국사람들이 하는 말도 똑같았다.

“저렇게 게으르니 경제가 엉망이지.”

당시 스페인 경제가 엉망이긴 했지만 글쎄, 과연 스페인 경제가 서머타임 때문에, 전국민이 2시간 낮잠 좀 자느라 그렇게 엉망이었을까.

우리는 언젠가부터 잠이란 것에 너무 인색해졌다. 하루쯤은 한숨도 안자도 버틸 수 있고, 뭐 다들 그렇게 사는 거고, 그렇게 버틴 피로는 결국 주말에 몰아서 자버리는 식의 생활 패턴에도 너무 익숙해졌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는 사람들에겐 게으르다고까지 생각하게 됐다.

잠이 왜 얼마나 중요한지는 새삼 내가 강조하지 않아도 이미 넘치는 과학적 연구결과들이 있다. 잠을 자야 뇌의 신경 세포들이 마침내 다시 연결될 힘을 얻고, 잠을 자야 뇌의 기억세포들 사이에 낀 찌꺼기들이 청소가 되고, 잠을 안자면 대장암 발병률도 확 올라가며, 뭐 이런 구구절절한 것들을 다 들지 않아도, 잠이란 것은 심리학자 매슬로우가 말한 인간의 5대욕구의 가장 기본적 생리적 욕구중 하나에 해당된다.

알다시피 매슬로우의 이론은 인간은 생리적 욕구 -> 안전의 욕구 -> 사랑, 사회 소속감 추구 욕구 -> 존경욕구 -> 자아 실현의 욕구를 순차적으로 추구하게 된다는 것인데, 앞의 것이 완전히 충족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게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은 일단 1차 관문에서 뭔가 감점을 꽤 많이 당한 다음에 다음단계로 나아가길 종용받고 있는 것 아닐까. 젊은이들이 꿈이 뭔지, 하고싶은게 뭔지 모르겠다고 한다면, 일단 잘 먹이고 잘 재우는 게 우선 아닐까. 사실 당장 직장인들에게 하고싶은게 뭔지 물어보면 모두가 ‘퇴근’ 이라고 답하지 않을까. 우리는 어쩌면 첫 번째 계단이 무너진 사다리를 자꾸 꼭대기까지 올라가라고 종용받는 불안한 처지 아닐까.

한국인들이 잠을 안자고 일을 열심히 한다는 게 근면과 성실의 지표는 될 수 있지만, 우리가 일을 ‘잘’ 한다고 말할 수는 절대 없다. 알다시피 한국은 OECD 가입국 중 노동 효율성이 가장 떨어지는 나라 중 하나이다. 다른 나라가 조금 일하고 더 많이 이뤄낼 때, 우리는 더 괴롭게 많이 일하고 더 조금 이뤄낸다는 뜻이다. 그동안은 ‘그럼 더 일해서 그 간극을 메꿔라!’ 라는 식으로 버텨왔지만, 이제는 좀 인식의 틀을 모험적으로 바꿀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이제 우리는 21세기를 살고 있는 나름 문명인들 아니겠는가.

멍 때리기 대회도 있는 마당에, 나중엔 잠 잘자기 대회도 생길지 모르겠다. 아, 그러고보니 진짜 있구나. 서울 숲에서 최근 ‘숲속 꿀잠 대회’ 라는 걸 개최한다고 해서 화제였다. 이런 게 대회가 생긴다는 건, 아무리 이게 서울 숲이 홍보용으로 개최하는 대회라고는 하지만, 뭔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해석해도 무방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