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오글거리긴 하지만 나의 인생 모토는 별다를게 없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 이게 전부다. 이게 좀 컨디션이 좋을 때는 늘 어제보다 나은 오늘, 그리고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달려가게 된다. 문제는 좀 컨디션이 별로일 때는 하루를 좀 쓰레기 같이 살게 되고, 그 다음날은 뭘 해도 어제보단 좀 나아지는 하루가 되기 때문에 다시 ‘그래 하루쯤은 또 쓰레기 같이 살아도…’ 하는 마음에 나락으로 떨어지고, 다시 나아지고를 반복하게 된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장점은 있는데 크게 스트레스를 받고 좌절해서 완전히 주저앉을 일은 없다는 것이다. 뭔 좋은 일이 일어나건, 나쁜 일이 일어나건 간에 삶에는 싸이클이라는 게 있고,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산다는 건 사실 크게 대단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말 대단한 일은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매일’같이 살아내는 거다. 그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내가 요즈음 구매한 특정 제품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사실 다름아닌 샤워기다. 특별할 것도 없는 샤워기지만, 상당히 삶의 질을 높여준다고 생각한다. ‘바디럽’에서 제작한 퓨어썸 샤워기인데, 특이한 건 정수기에나 쓰이는 교체식 필터가 샤워기 몸체에 장착되어 있다.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조금은 공격적인 마케팅, 예를 들면 시커먼 한강의 물을 이 샤워기로 정수해 머리를 감는다거나 하는 영상이 구매욕구를 상승시키긴 했다. 하지만 단순히 그것만으로 제품을 구매한 건 아니었다.

일단 첫째로 내가 살고있는 집이 지은지 20년이 넘은 노후된 집이고, 수도관 역시 그만큼의 세월동안 노후되었기 때문이다. 워낙 오래된 집이다보니 리모델링 업자가 와서 보더니 ‘이 정도로 아무런 단열처리가 되어있지 않은 집은 오랜만’ 이라고 할 정도였다. 겨울에 춥고 여름에 덥고를 반복하는데다가 그걸 고치지 않고 방치한 집이니, 수도관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었다.

두 번째는 내 저주받은 신체 때문이었다. 난 좋게 말하면 민감하고, 나쁘게 말하면 굉장히 내구력이 약한 신체를 가지고 있다. 체력이 좋고 강철같으면 나도 좋겠다마는, 어려서부터 잔병치레가 심해서 병원도 밥먹듯이 드나들었고, 1년에 1번씩은 꼭 응급실에 실려가던 게 10대 후반까지였다. 요즘처럼 미세먼지가 많은 날에는 마스크 없이 밖에 나갔다가는 5분만에 눈이 따가워지고, 실제로 미세먼지가 엄청났던 날 등산을 갔다가 바로 후두가 붓고 몸살이 걸렸던 적도 있다. 피부도 마찬가지여서 수질이 안좋기로 유명한 한강 수영장에 한번 갔다가 다음날엔 온통 빨갛게 부어오르는 피부에 경악하기도 했다.

퓨어썸 샤워기를 사용하고 3개월 정도가 지나서, 현재 샤워기의 필터는 살짝 노래진 상태이다. 필터의 가격도 있기 때문에 어느정도는 버티기 위해서, 또 엄청 심각하게 누래진 색깔은 아니기에 아직은 방치하고 있다. 어제 샤워를 하기 위해 샤워기를 들었다가, 필터 내부의 상태가 궁금해져서 오랜만에 분해를 해봤다. 필터 끝자락에는 허연 알갱이들(아마 석회로 추정되는)과 돌멩이 같이 시커먼 조각들(아마 노후된 수도관의 쇳조각들로 추정)이 덩어리 덩어리져 있었다. 질색을 하고 털어낸 뒤에 다시 조립을 했는데, 필터의 색으로 봐서는 조금 더 견뎌도 될 것 같긴 했지만 그 샤워기를 쓰지 않았다면 내가 먹고 마시고 씻었을 물에 그 덩어리들이 섞여있었을거라 생각하니 진저리가 쳐졌다.

쓸데없이 타사 제품을 선전하는 것 같지만, 샤워기에 그 ‘필터’ 하나 장착한 것만으로도 내 삶의 질은 꽤 올라갔다고 생각한다. 처음에 말한 ‘어제보다 나은 오늘’ 이다. 사실 그런 이유로 공기청정기도 미세먼지가 이슈가 되었을 초창기에 사서 요즘엔 거의 매일 돌리고 있다. 못믿을 수도 있지만 공기청정기가 없을때는 재채기와 눈가려움으로 뜬눈으로 밤을 새운적도 많았다. 뭐 이게 무슨 건강염려증 같은 ‘환경염려증’ 이라고 비아냥대도 솔직히 상관이 없다. 내 삶이 나아졌고, 나는 미세먼지를 호흡하고 녹물로 샤워해도 멀쩡할정도로 튼튼한 몸이 아니니까.

뭐 궁극적으로는 공기청정기를 안 써도 되고, 필터를 안 써도 되는 세상이겠지만, 그런 세상이 얼마나 빨리 오겠는가. 바야흐로 1993년 대전 꿈돌이 동산에서 ‘미래에는 전기로 움직이는 자동차의 시대가 곧 올 것입니다’ 하면서 이빨을 털었던 꿈돌이와 꿈순이는, 그놈의 전기차가 세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니는 2018년이 올 때까지 25년이 걸릴 줄은 예상이나 했을까. 심지어 그 당시에 잘 나가던 대우 그룹은 망해서 공중분해되기까지 했다. 꿈돌이랑 꿈순이는 몰랐을거야 아마. 로봇 팔이 다 말라 비틀어져서 물이 담겨있지도 않은 종이컵을 건조하게 들어서 이컵에서 저컵으로 따르는 걸 보며 우와 우와 감탄사를 연발하던 나도 몰랐는데, 꿈돌이랑 꿈순이라고 알았을라고. 그때 차 타고 5시간 넘게 대전 엑스포에 갔다가 차가 방전돼서 보험사를 부르던 아빠도 몰랐을 거다. 전기차라니?!

좌우지간 전기차를 아무렇지 않게 볼 수 있는 세상이 왔건만, 사실 전기차를 ‘흔하게’ 볼 수 있는 시대는 아직도 아니다. 아직 도로에는 유로6도 충족시키지 못하는 구형 디젤 차들이 매연을 뿜뿜거리며 달려대고 있다. 최근에 지인이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사긴 했다. 조수석에 앉아 같이 목적지로 달려가는데, 와우, 꿈돌이와 꿈순이가 아직 살아있다면 뒷자리에 앉혀주고 싶을 정도였다. 일단 잠시 멈춰섰을 때 엔진이 아예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일반 자동차 특유의 공회전 진동이 없었다. 약간의 진동에도 차멀미가 심하던 내게 그정도로 조용하고 진동없는 차는 그야말로 혁명이었다. 지인도 차를 운전하며 말했던 것이, 정말 어렸을 때 상상만 하던 차를 모는 기분이라고 했다. 완전 전기차도 아니고 단지 하이브리드일 뿐인데! 하이브리드도 급진적인 환경론자들에게는 성에 차지 않겠지만, 이 하이브리드가 소비자들에게 주는 만족감은 그야말로 ‘어제보다 나은 오늘’ 그 자체이다. 난 솔직히 제대로 보급도 안되어있는 전기 충전소의 상황을 보면, 완전 전기차에는 보조금을 끊고 하이브리드에 보조금을 더 몰빵해주는 게 낫다고 본다. 전기 충전소가 충분하게 보급되었다는 판단이 들면 그때 하이브리드에 주던 보조금을 전부 전기차로 돌려도 늦지 않다고 생각할 정도다.

목표와 이상은 급진주의자들이 세우지만, 사실 세상을 실질적으로 바꿔나가는 건 이런 점진적 개화파들이다. 급진주의자들은 이상과 이론을 세우는 데 까지는 멋있어 보이지만 그 뒤로는 보통 주저앉아서 땡깡을 피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지기 힘든 논리를 펴면서.

난 언젠가 한국도 플라스틱 제품을 완전히 사용하지 않게 하는 법안이 발효될 거라고 생각을 한다. 미세 플라스틱 문제는 꽤나 심각한 이슈이고, 환경 문제는 이제 정말 심각한 위협이 되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내 생각에 과연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이 미세 플라스틱 문제를 미세먼지처럼 실질적으로 와닿는 이슈로 생각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당연히 해결을 위해 머리를 맞댈 날도 아주 먼 미래가 될 것이다. 왜 이렇게 냉소적이냐면 나는 사실 어렸을적부터 꽤나 ‘급진주의자’ 였기 때문이다. 헌데 살다보니 이런 이슈들은 아무리 급진주의자들이 나대봤자 결국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피부로 와닿기 전까지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깨닳았다.

미세먼지, 정확히는 공기 환경 문제에 관해 사람들은 처음에는 중국을 욕하고, 그 다음엔 마스크를 샀고, 그 다음에 공기청정기를 사기 시작했고, 이제는 정말 진지하게 근본적인 해결책을 논의하고 실행하려는 단계에 이르렀다. 원래 사람들이란 이런 족속이기 때문이다. 인류란게 원래 이기적이고 자기 피부에 와닿지 않으면 그냥 쌩까는 생물이다. 미세 플라스틱 문제? 솔직한 얘기로 한여름에 길가를 걸어다니다 보면 먹다 말아서 얼음이 둥둥 떠다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플라스틱 컵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걸 자주 보는 입장에서, 이게 해결되려면 정말 멀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사람들은 고등어를 먹다가 고등어 안에서 미세 플라스틱 알갱이들이 무슨 제습제 알갱이마냥 부득부득 씹혀야만이 정신을 차릴거다. 그게 아니라면, 커피숍이나 일반 음식점에서 1회용 플라스틱 컵을 판매할 때 세금을 지금의 10배로 때려버리면 그만이다. 사람들은 자동으로 텀블러를 장착하고 다니겠지. 급진주의자들처럼 배타고 나가서 미세 플라스틱 섬을 영상으로 찍어 유튜브에 올리는 걸로는 생각보다 세상이 너무 늦게 바뀐다. 돈으로 맞아본 사람들은 유튜브로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것보다 더 빨리 변할거다.

남북 관계가 지금 극적으로 개선이 됐다지만, 어떤 면에서 보면 지금 이것도 만족을 못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지금 당장 국경을 개방하지 않는 게 굉장히 짜증날 것이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세상은 그런 땡깡으로 변화하지 않는다. 과도기가 있기 때문에 진화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실질적으로 사람들의 생활을 변화시키고, 또 세상을 변화시킨다. 세상은 그렇게 변화한다. 언젠가는 내가 쓰는 공기청정기나 필터샤워기는 역사의 뒤안길이 될지도 모른다. 나 역시도 그것을 바란다. 그러나 당분간은 그게 팔릴 것이고, 사람들의 삶에 작은 행복을 더 해줄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미래의 발판이 될 것이다. 바로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이어가면서 말이다.

한국은 궁극적으로는 ‘쓰레기’ 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환경을 만들려고 할 것이다. 일반적인 국가라면 다들 궁극적으로 그런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당장 중국이 폐 플라스틱 수입을 전면 거부하기로 한 상황에서, 쓰레기 소각장을 하나 더 세우니 마니 하는 이슈로 갑론을박하는 게 우리의 상황이다. 음식물 쓰레기 처리도 골치아픈 문제중 하나다. 그러나 과연 진지하게 근본적으로 음식물 쓰레기 배출이 없는 세상이 오는게 빠를까, 아니면 가정과 업소에 효율좋은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 완비를 목표로 하는 게 빠를까.

여름이 훌쩍 다가왔다. 샌들을 하나 살까 하는데 칸투칸에서 샀던 아쿠아 슈즈가 떠오른다. 돌멩이가 너무 자주 들어와서 발바닥이 찝히고, 이물질이 쉽게 들어왔던 초창기의 아쿠아 슈즈. 이제는 신발끈도 다이얼로 돌려 묶고 이물질이나 돌멩이가 들어올리는 없어졌다. 거기다 물은 더 잘 빠지도록 개조됐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위해 하나 장만해볼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