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난히 내 등과 어색한 사이다. 유연성이나 자세의 문제일지도 모르겠고, 그저 타고난 뼈의 위치가 그렇게 생겨먹은 탓일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나는 내 등과 참 멀고도 어색하다. 양손을 각각 위아래로 등 뒤에서 깍지 끼는 자세는 말할 것도 없다. 뒷목 아래 3cm 정도, 허리 조금 위. 내가 내 손으로 닿을 수 있는 등의 영역이란 겨우 그 정도다. 사실상 등 면적의 80% 정도는, 내 몸이면서 내 몸이 아닌 셈이다. 나는 몸에 비해 팔도 꽤 긴 편인데도 그렇다. (다리가 길었어야 했는데.)

해서, 나는 샤워볼도 사용하지 못한다. 등을 씻어내지 못하니까. 아직 여자 친구와 서로 ‘등을 트지 않았을 때’까지만 해도 효자손은 필수였다. 고시원에 살 때,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문손잡이에다가 등을 비벼 긁어야만 했던 기억도 있다. 여름에 등 한 가운데 모기라도 물리면 비상사태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약 25년 동안은, 나 스스로에게 등이란 늘 어려운 곳이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등은 늘 서로에게는 편하고 가까운 곳이었다. 앞에서 말로 다 못한 감정들이 뒤돌아 터덜터덜 걷는 등에 묻어나기도 했다. 서로의 가슴에 손을 얹는 사이는 흔치 않지만, 우리는 한 번쯤 묵묵히 누군가의 등을 두드려준 적이 있다. 이십대 초반, 낯선 동네의 허름한 목욕탕에서 노인의 고목 같은 등을 밀어주며 나는 생각했다. 등은 서로에게 남겨두는 객지 같은 거구나. 이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다정히 들렀다 가는 곳이구나.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충 4,5년 전쯤부터 우리 커플은 서로에게 등을 텄다. ‘등을 트다’라는 표현이 낯설긴 하지만 내용은 별 거 없다. 그냥 등이 간지러울 때, 서로가 긁어주게 되었단 의미다. 처음엔 별로 내키지 않았다. 내 등이 백옥같이 매끈한 것도 아니고, 보통 등이 가렵다는 건 막 씻고 나온 상태라기보다는 하루의 찌꺼기가 등에 쌓여있는 상태일 때니까. 그런 등을 내보이는 것도 별로인데, 여자 친구 손으로 그런 등을 긁게 한다니. 사랑의 힘인지, 세월의 힘인지는 몰라도 이제 우리는 서로의 등을 긁어주는 사이가 되었다.

유난히 등이 멀기만 했던 내게 ‘등 긁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빼앗겼던 땅 덩어리를 되찾은 기분, 신체의 구성이 완전해지는 기분이랄까. ‘등아, 너가 거기 있었구나.’하는 감각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등 전체를 샅샅이 짚어낼 수 있는 여자 친구가 굳이 내게 등을 내어주는 걸 보면, 제 손으로 긁는 것과 다른 사람의 손으로 긁는 것의 ‘손맛’이 다르긴 다른가보다.

어제는 내가 등을 긁어주는데, 여자 친구가 문득 이런 얘길 했다. “있잖아, 참 신기하지? 사실 별로 등이 가렵지도 않았는데, 긁기 시작하면 엄청 시원하단 말이야.” 듣고 보니 그랬다. 가끔은 별 생각 없는데도 여자 친구가 대뜸 “등 긁어줄게!” 하는 바람에 등을 내어준 적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근데 별로 안 가려워, 그만 해도 될 것 같아.”라고 말하지 않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등이 시원했으니까. 정말, 기다렸다는 듯이.

그래, 사실 등은 정말로 기다리고 있었던 거 아닐까. 혼자가 익숙해진 그 누구라도, 반가운 얼굴을 만나면 마음이 들뜨는 것처럼. 무언가에 익숙하다는 것이, 곧 그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건 아니다. 우리는 전혀 달갑지 않은 상황이나 감정에 익숙해져야만 하는 삶을 살고 있으니까. 등도 제 몸의 주인에게 외면 받는 고독이 익숙할지언정 좋지만은 않았을 테다. 특히 나처럼 뻣뻣한 주인을 만난 등이라면, 그 고독은 더했을 터. 그런 등에게 여자 친구의 손길은 마치 반가운 말동무 같았을 것이다. 손톱 끝으로 슥, 슥 훑어 내리는 그 짧은 순간에 내가 “름아, 거기, 거기. 아이고 시원하다.” 뱉었던 그 말은 사실, 등이 하는 말이었던 거다. “있잖아. 내가 되게 외로웠거든. 와줘서 고맙다. 여기 날개뼈 아래쪽이랑, 옆구리 쪽도 들렀다 가.”

3년 전 썼던 ‘등’ 이라는 제목의 시가 있다. 정말 좁은 방 침대에 누워서, 등에 관해 생각하면서 썼던 시다.

등에 관해 생각한다
한 번도 실제로 본 적 없는 등에 관해
실재한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등이라는 딱딱한 관념에 관해
아무것도 껴안을 수 없고
다만 기대어 오는 것들 버티는 것으로
제 몫을 다하는 덤덤한 친절에 관해
잊고 지내도 될 것 같은
그러나 오직 진통으로만 말을 건네는
불친절한 의사소통에 관해
무엇이어도 상관없지만
반드시 무엇이든 되어야만 하는
옛 애인의 사망 소식 같은
등이라는 이름에 관해
노년이면 기어코 가슴을 다 이겨버린 후
굽은 허리로 하늘 대신 땅을 보게 만드는 잔인함에 관해

누가 그에게 등이라고 이름 붙인 걸까
세상의 모든 것들 이름 있고 난 후에
겨우 생겨난 이름 같다
서러운 이름 같다

뒤에서 누가 안아주면 눈물이 날 것 같다

시기 상, 우리 커플이 서로 등을 튼 지 얼마 안 됐을 때 적었던 시다. 내 몸에서 가장 외면 받은 곳. 거울이 아니면 절대 내 눈으로 마주할 수 없는 곳. 등은 아무리 힘들어도 제 몸의 주인에게 위로 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사람은 제 등을 위해서라도, 오직 그 이유 때문만이라도 등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말없이 등을 두드려주는 사람. 외로울 때 뒤에서 따뜻하게 등을 껴안아 주는 사람. 가끔 아무 이유 없이 서로의 등을 긁으며 등의 안부를 묻는, 그런 사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