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밥이 가지고 온 인류 최악의 비극

공짜밥이 가지고 온 인류 최악의 비극

사람들은 공짜밥을 좋아한다. 나라에서 공짜로 밥을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도 해보고, 1년 365일 식비 걱정하지 않는 엉뚱한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복지시스템의 발달은 인간의 천부인권과 보편적 인권을 확장시켜 주는 것이 사실이지만 사실 이 복지의 기준에 대한 논쟁은 나라마다 그리고 세대마다 다르다. 

복지시스템의 일환으로 개발된 제품은 아니지만, 세탁기의 발명은 여성의 인권을 급상시킨 아주 대표적인 가전제품으로 알려져 있다. 세탁기의 발명 이전의 여성은 하루 중 절반을 ‘빨래’ 에 투자했다. 빨래에서 해방된 여성들은 짜투리 시간을 이용해 점점 사회로 진출했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가사노동이 있었으니 바로 밥 짖는 노동이다. 물론 요리의 영역에서도 여성을 사회로 밀어낸 아이템들은 많았다. 냉장고로 인해 매일같이 장을 보거나 재료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고, 가스의 대중화로 여성들은 더 이상 오랜 시간동안 아궁이를 지키고 앉아 있을 필요가 없어졌다. 화력 좋고 화구가 여러 개인 가스레인지는 여성들의 요리시간을 비약적으로 단축시켜주었고 더 나아가 전자레인지의 발명은 여성들에게 더 이상 땀을 강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요리라는 행위 자체는 ‘화식’ 과 ‘재료손질’ 이라는 특성상 시간경비가 많이 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또 빨래는 조금만 배우면 누구나 다 요령껏 할 수 있지만, 요리는 그 스펙트럼이 워낙 방대하다보니 그야말로 끝이 없고 정복되지 않는 세계와 같았다. 간단한 요리라 하더라도 개개인의 손을 타기 마련이며, 숙달된 자가 아닌 이상 함부로 손대기 힘든 것이 바로 요리의 세계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몇년전 열띤 논쟁을 벌였던 ‘전면무상급식’은 사실 단순히 학생들에게 공짜밥을 먹이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물론 유료급식이라는 시스템이 있는 가운데 무료냐 유료냐를 둔 논쟁이긴 하지만 어쨌든 ‘급식’ 이라는 시스템 자체는, 엄마들에게 ‘요리’라는 무거운 짐을 벗어던지게끔 하는 정책이었다. 급식시스템은 빨래터에서 벗어난 엄마들에게 한번 더 주방을 벗어나게끔 한 것이다. 그리고 ‘무상’ 정책을 통해 엄마들의 마음의 짐을 조금 덜어내게 할 수 있었다. 

이렇듯 공짜밥, 무상급식은 개인이 해야할 일을 국가가 대신 해주면서 국민의 부담을 덜어주고 그 국민으로 하여금 다른 생산력에 개인의 에너지를 쓸 수 있게 함이 가장 기본적인 원리이다.

하지만 이런 공짜밥, 무상급식의 기준을 정하는 데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많은 논쟁이 있다. 포드(Ford)가 자동차를 처음 생산했을 때는 에어백과 ABS가 없었다가 도로환경이 발전할수록 이젠 에어백과 ABS는 모든 차의 기본적인 사양이 된 것 처럼, 사회가 발전할수록 기본적인 사회안전망도 더불어 발전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회라는 것은 수만개의 부품으로 만들어진 ‘자동차’ 가 아닌 사회구성원 개개인의 합리성이 충돌하고 서로의 이익이 다르기 때문에 이 안전망을 만드는 기준 또한 달라진다. 

글쓴이는 무상급식에 대한 정치적 논쟁을 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청소년들의 무상급식 찬성론자이지만 무상급식의 끝 중의 끝, 아주 극단적인 역사적 사례를 소개하고자 이 글을 쓰고 있다. 이런 위험성이 있으니 무상급식을 재고하자는 말을 하고자 함이 아니라, 이런 사례가 있다는 정도의 글이니 혹시라도 정치적인 글이라 오해하지는 말자. 

인류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머지 않은 과거, 불과 1세기도 지나지 않은 과거에 ‘무상급식’ 으로 인해 4000만명의 인구가 아사(餓死)한 비극적인 역사의 사례가 있다. 1세기, 무상급식이라는 힌트에 대충 눈치챈 분들도 있겠지만, 그렇다. 바로 공산주의가 막 대두되던 바로 그 무렵쯤이다. 

이 무렵 전국가적차원의 무상급식이 이루어지던 나라는 공산주의의 나라 러시아(구 소련)도 아닌 바로 옆 나라 중국이었다. 중국은 1950년대 후반 마오쩌둥에 의해 ‘대약진 운동’ 이 펼쳐진다. 대약진운동은 마오쩌둥과 공산당이 열의를 가지고 시작한 사회부흥운동이자, 최초로 농촌이 주체가 된 ‘혁명’ 이라는 의도와는 무색하게 현실과 동떨어진 운동이었다. 

대약진 운동의 모든 내용들을 기술하기는 어렵지만 글쓴이가 주제로 잡은 부분만 설명하자면, 당시 중국은 모든 인민들을 생산 단위로 묶어 취식을 함께 하도록 했다. 그리고 덤으로 각 마을마다 할당량을 부과하여 생산하게 했으며 모든 마을에 강철과 식량을 생산하도록 했다.

이때 ‘인민공사’ 라는 조직이 등장하는데, 1958년 인민의 통제를 위해 만든 조직이었다. 사회주의 국가에 전국가차원의 대대적인 경제운동을 통해서 국가 전체의 생산력을 끌어 올리기 위해 모택동이 선택한 전략은 전인민들에게 ‘무상급식’을 주는 것이었다. 먹을 것에 대한 걱정을 없애면 자연스럽게 생산력이 올라갈 것이라는 아주 단편적인 이 생각은 인민공사 대식당이라는 시설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래서 당시 전 인민의 90% 가량이 이 대식당을 이용하게 된다. 

또 대약진운동의 일환으로 철생산에 매진하다보니, 집에 있는 철기들을 나라에서 수거해갔는데 이 중 식기류들도 굉장히 많았다. 그런데 나라에서 공짜밥을 주니 당연히 식기류가 필요 없어지자 국민들은 나라에 보탬이 되기 위해 그 철식기들을 기꺼이 나라에 바쳤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1960년 전후, 중국에는 최악의 기근과 자연재해가 발생한다. 먹을 것도 없고 식기도 없고, 자급자족의 식량생산성도 최하로 떨어진 상태에서 공짜식당에서만 밥을 먹던 인민들은 그야말로 멘붕에 빠진다. 멘붕에만 빠졌던 것이 아니라 먹을 것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4000만명이 굶어죽게 된다. 

‘밥 걱정 하지말고, 노동에 최선을 다하라, 밥은 국가가 책임진다’. 아주 단순한 말이지만 이것은 20세기 중국 역사에서 가장 뼈아픈 인민의 역사가 되었던 것이다. 

물론 당시에 자연재해나 외부적인 요인이 없었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허나, 우리는 한가지 알아둘 것이 있다. 역사에는 비합리적일지도 모르는 가외성(redundancy, 중첩성 혹은 중복성)이 의외로 인류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경우도 많았다. 

자동차에 스페어 타이어는 그 무게로 인해 차량의 성능을 저하시키고 연비를 떨어뜨리지만, 비상시에 운전자의 안전을 지켜주는 장치가 된다. 글쓴이가 예전 칼럼에서 썼던 아일랜드 감자 대기근도 이런 가외성을 무시해서 발생한 결과다. 

공짜밥은 사회의 안전망이 될 수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공짜밥으로 인해 벌어질 사회적 안전망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음식의 역사를 통해 인류는 언제든지 성장해 나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