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국수는 막 먹는 음식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No’ 다. 막국수는 고급음식이었다. 왜냐하면 양반집이나 부잣집 정도나 되야 먹을 수 있었고 평민들이라 해도 귀한 손님이 오거나 잔치가 있을때만 먹을 수 있던 진귀한 음식이었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를 하나씩 알아보자. 

글쓴이가 춘천으로 장가를 온 뒤, 가장 많이 먹었던 음식이 있다면 아마 닭갈비와 막국수였을 것이다. 요즘은 닭갈비와 막국수가 세트로 묶여져 나오지만 사실 춘천에서도 막국수만 전문적으로 잘하는 집을 찾기는 힘들다. 글쓴이의 경우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해놓고는 갈빗집에서 굳이 냉면을 안시켜 먹듯이 닭갈비집에서 막국수를 찾지 않는다. 물론 진짜 갈빗집은 어차피 고기육수와 함께 냉면을 내는 경우도 있으니 그렇다고 쳐도 닭갈비와 막국수는 교집합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춘천에도 막국수만 전문적으로 하는 집이 있다. 물론 그런 집 또한 닭갈비를 내놓긴 하는데 순서가 바뀐다. 보통의 경우는 닭갈비 & 막국수지만 막국수 전문식당은 막국수 & 닭갈비다. 그런 식당에서는 막국수를 반드시 먹어야 한다. 

막국수에 대한 오해는 왠지 저렴해 보이는 이름에서 시작된다. 바로 ‘막’ 자 에서 시작되는데 이 막자는 막걸리의 ‘막’ 자와 동일하다. 그런데 이 ‘막’자는 막국수, 막걸리 둘 모두에게 저급한 음식이라는 오해를 종종 불러일으키는데 여기서 ‘막’ 자는 ‘마구마구’의 ‘막’ 자가 절대 아니다. 막 만들기 때문에 막국수나 막걸리가 되는게 아니라 이 ‘막’자에는 ‘바로’ 혹은 ‘방금’ 이라는 뜻이 있다. 마구잡이로 만든 국수가 아니고 마구잡이로 거른 술이 아니라 방금 만든 국수 혹은 방금 거른 술이라는 뜻이다. 

막국수의 기본재료는 ‘메밀’을 주재료로 한다. 메밀은 강원도 산간에서 쉽게 키울 수 있었고 환경도 많이 타지 않는다. 척박한 땅이나 화전(火田)을 일군 땅에서도 매우 잘자라기 때문에 강원도 지역에서 주로 재배를 많이 했다. 또한 구황작물로서의 역할을 했기 때문에 추운 산간지방에서 끼니용으로도 매우 좋았다. 

하지만 문제는 이 메밀이라는 곡식의 속성에 있다. 메밀은 밀가루와는 달리 글루텐 성분이 적기 때문에 찰기가 적다.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국수의 식감을 낼 만한 성분들이 월등히 부족하다. 즉 일정한 시간동안 숙성을 시켜 식감을 끌어올려야 하는 일반적인 국수와는 달리 메밀국수는 숙성을 시키면 시킬수록 국수가락이 뚝뚝 끊어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면을 뽑는 동시에 뜨거운 물에 담궈 면을 삶는 방식을 사용했는데 이게 바로 ‘막국수’ 가 된 것이다. 면을 만들자마자 ‘바로 막’ 삶아 먹는 국수인 것이다. 

그런데 이 메밀을 주원료로 한 막국수는 칼국수처럼 썰어낼 수도 없었다. 썰어봐야 고른 면발이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뭉텅이 뭉텅이 질 뿐 절대로 제대로 된 면이 나올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반죽한 메밀 덩어리를 국수로 뽑아내야 데에 있어 특수한 장치가 필요했는데 그것이 바로 국수 누름틀이다. 

국수누름틀은 장정 한명이 달라 붙어도 국수를 뽑기가 힘들다. 더욱이 옛날 나무로 만든 누름틀이었다면 더 가혹했을 것이다. 게다가 그 누름틀 자체도 크기도 큰데다가 그만한 물건을 집집마다 비치해둘 리가 없었다. 분명 누름틀 자체는 기껏해봐야 한 동네에 한 개, 많아야 두개 정도였을 것이고 그리고 그 누름틀도 부잣집이나 어느 양반댁 정도나 되야 소유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평민들이 잔치나 귀한 손님이 왔을 때 누군가를 대접해야한다면 그나마 없는 살림에 메밀로라도 국수를 만들어 부잣집 마나님께 누름틀을 빌려 귀한 음식을 대접하지 않았을까.

막국수는 강원도 사람들이 귀한 사람에게 대접할 수 있는 최고의 음식 중 하나였다. 국수 하나를 대접하기 위해 동네 진사댁 어른에게 굽신거리며 누름틀을 빌려야 했고, 농삿일에 쓰여야 할 장정을 따로 한명 빼내어 누름틀로 국수를 내려야 했다. 거기다가 없는 살림에 닭이라도 한마리 잡아서 육수라도 내어야 했을 것이다. 쌀이 귀하고 밀가루가 흔치 않았으니 그나마 그들의 가장 귀한 식량인 메밀로 국수를 내렸을 것이다. 그러니 이름에 속지말고 언젠가 귀한 손님에게 막국수 한 그릇 대접하면서 앞서 말한 이야기를 함께 전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