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는 ‘지금’을 정당화하기 위해 부정된다.

날 사랑하긴 했니?

헤어진 연인 사이에서 으레 나오는 말이다.

죽기 살기로 사랑한 연인도, 헤어지고 나면 ‘과거’를 부정한다. 그 ‘과거’를 부정하다 보면 나오는 결론이 바로 ‘날 사랑하긴 했니?’다. 그렇지 않고는 논리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벌어진 것들이 왜 이럴까를 하나하나 곱씹다 보면 말이다. 역으로 말해, 사랑했다면 이런 이별은 벌어지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나는 ‘지금’이 아프다. ‘지금’나는 살기 위해,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 그 사람의 나쁜 기억을 떠올린다. 그래, 맞아. 그 사람은 원래 나쁜 사람이었어. 나와는 맞지 않는 사람. 잠깐, 나도 정말 그 사람을 사랑하긴 한 걸까?

직장에선 비일비재한 일들이다.

새로운 리더가 부임한다.

초기에 좌중을 압도해야 한다. 더불어 이전과는 다른 비전과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 새로운 리더가 부임했다는 건 세 가지의 경우다. 첫째, 전임자가 사업을 잘못 이끌었거나 둘째, 때가 되어서 바뀌었거나 셋째, 전임자에게 신변상 문제가 발생했거나. 어쨌거나 새로운 리더는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그렇다면 그 논리는 ‘우리는 이전과는 달라야 한다’다. 그것은 곧 ‘과거’의 부정을 뜻한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말이 있다.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통하여 새것을 안다는 의미다. 그런데, 직장에선 이게 잘 통용되지 않는다. 과거를 짓밟아 청산하고, 내가 그 위에 서야 하기 때문이다. 월급쟁이 리더라면 더더욱 그렇다. 빨리 성과를 내고 인정받아야 한다는 조급증. 욕심에 기인한다. 생존을 위해선 어쩔 수 없다. 직장인의 가장 큰 과제는 살아남아 버티는 것이기 때문이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이 곳, 직장의 정글에서 말이다.

그런 모습이 안타까울 때가 있다.

내가 모시던 리더가 있다.

고집불통에 독선이 가득했지만, 그나마 인간미는 엿볼 수 있던 사람이다. 그런데 요즘 업무상 힘든 일에 봉착했는 모양이다. 당장 위로부터 압박을 받으니, ‘과거’의 부정이 시작되었다. 그 ‘부정’속엔 나도 있었다. 모시던 그때로 강제 소환된 것이다. 나와 함께 열심히 일하며 따먹은 성과에 대한 달콤함은 잊은 모양. 그 모든 걸 ‘부정’하며 ‘그때는 맞았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틀리다’를,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부르짖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와서 묻는다. 저 리더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과거의 성과를 전혀 appreciate 하지 않는 것 같다며. 측은했다. 기분이 나쁘기보다는 말이다. 그것에 대해 변명하고 싶지 않았고, 설명하고 싶지도 않았다. 진흙탕 속에서 손짓을 하며 내게 어디 한 번 덤벼봐…라고 말하는 상대에 말리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런 모습은 참 안타깝다. ‘지금’을 살고자 ‘과거’를 부정하면, ‘지금’의 나는 무엇이 되는가? 서로 사랑한 과거는 아름답게 하고, 새로운 사랑을 만나도록 축복해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과거를 더럽히고 미래를 저주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그래서 남는게 뭘까? 오히려 잃는게 많지 않을까?

리더라고 해서, 나보다 경험이 많고 나이가 많다고 해서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안타깝고 측은한 이유다.

물론, 나도 돌아봐야 한다.

나는 그러지 않았는지, 내가 살고자 남들의 과거와 성과를 부정하진 않았는지.

세상엔 배울 것이 참 많다.

저렇게 해야겠다는 것과, 저러지는 말아야지 하는 것들.

직장인의 아픔이자, 장점이다.

‘온고지신’해야겠다.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