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이 마를 때까지, 건배!

글을 쓰려고 자료를 조사하다가, 문득 ‘건배’라는 단어가 낯설다. 게슈탈트 붕괴현상인가 싶어 다른 단어들을 살펴보지만, 역시 건배라는 단어만이 유독 낯설다. 다시 곰곰이 되짚어 보니 아, 이유가 있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배우들이 술을 마시는 장면에서 의례적으로 ‘건배’라는 대사를 들었던 것 같다. 힘찬 건배, 위로의 건배,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 허공에다 대고 하는 혼자만의 쓸쓸한 건배까지. 배우들은 굳이 입으로 ‘건배’라는 단어를 내뱉었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말없이 잔을 부딪치는 것으로 변했다. 드라마나 영화 뿐만 아니라 실제 우리네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술 없이도 취할 수 있는 친구들과 한껏 흥이 오른 술자리에서도 “건배!”하고 외쳐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건배(乾杯)’의 한자어를 살펴보면, 뜻 그대로 ‘마른 잔’이다. 술로 가득 찬 술잔을 비우다 못해 말려버린다는 뜻이다. 그러니 건배 후 원샷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순서인 셈이다. 실제로 조선시대 더 이전부터 우리 선조들도 ‘원샷’을 해왔다. 지금과의 차이라면 ‘치’라는 조선시대의 술잔 한 잔의 용량이 거의 1L나 된다는 점 정도. 역시 음주가무의 민족다운 스케일이다. 따지고 보면 굳이 건배라고 외치지 않아도 건배를 실천해왔다. 그러니 달리 말하면 건배는 건재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탈골을 감행하는 원샷의 기억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대학 새내기에게는 전공이나 교양, 그 어떤 과목보다 더 많은 시수(時數)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음주학’이었다. 특히 1학년 1학기에는 술을 마실 명분들이 정말 많다. 처음 만났으니 반갑다고 한 잔, 개강했으니 한 잔, 벚꽃 폈으니 한 잔, 시험 기간이니까, 시험 끝났으니까, 종강했으니까, 비 오니까, 공강 시간이 딱 들어 들어맞으니까… 어쨌든 일상의 모든 순간이 결국 ‘한 잔’으로 귀결되는 시기가 바로 1학년 1학기였다.

그렇게 밥 먹듯 술을 마시며 나는 내 주량이 겨우 소주 1병 반 정도라는 걸 처음 알게 됐다. 나로서는 주량에 도달하는 순간 ‘음주학’은 종강이나 다름없었지만, 다른 수강생들은 생각이 달랐다. 특히 술에 대한 남다른 학구열을 지닌 몇몇 동기, 선배들의 열정적인 랜덤게임은 나를 낙제생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만 마시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내가 술잔을 비우길 기다리며 어깨춤을 추다가 탈골이 되어버리는, 심지어는 탈골된 팔로 다시 술잔을 들어 올리는 그네들의 헌신 앞에서 내 사소한 숙취는 내밀 것이 못 되었으니까.

특히 날 괴롭게 했던 건, ‘원샷’이었다. 심신이 말짱할 때야 소주 한 잔 입 안에 털어 넣는 것이 뭐 그리 대수랴. 크, 하는 감탄사로 목을 긁어주면 독한 소주 향도 달콤해지곤 했으니까. 하지만 주량을 넘겨, 치사량에 가까워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한 모금 거리도 되지 않던 소주 한 잔이 어찌나 버겁던지. 그쯤 해선 산속 옹달샘을 할짝거리는 산짐승마냥 소주를 아껴 마시고 싶은데, 꼭 남 술잔만 쳐다보는 악취미를 가진 선배가 한 명씩은 있었다. “어? 술잔이 찰랑거리네?”하며 술 따르는 시늉을 하면, 나는 꼼짝없이 남은 술을 비워야 했다. 그렇게 다시 새로 술잔을 채우면 쉴 틈 없이 들어오는 건배, 다시 원샷.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땐 그게 나름의 예의였고 또 나름의 흥을 돋우는 방식이었다.

건배사가 뭐길래

대학을 졸업하고 나이도 서른이 되고나니, 어리바리하던 친구들이 다들 직장인이다. 대학생에겐 대학생의 고민이 있듯이, 직장인에겐 직장인의 고충이 있는 법. 그렇다고 뭐 그리 전문적이거나 세련된 고충은 아니었다. 특히 ‘첫 회식에서 어떤 건배사를 할 것인가’는 막 신입사원이 된 친구들의 최대 난제였다. 프리랜서로 지내는 내가 공감하기 어려운 난제이기도 했고. 그래도 글 쓴답시고 앉아있으니 내게 건배사를 추천해달라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나는 건배사에는 젬병이었다. 그건 뭐랄까, 술에 취한 문학의 신이 점지해주신 능력이 아니면 창작할 수 없는 분야였다. 쉽게 말해, 글 쓰는 놈이 아니라 술 마셔본 놈이 건배사를 더 잘 짓는다.

당장 ‘건배사’를 검색해보면 기발한 내용들이 참 많다. 물론 큰 틀에서의 공통된 창작 방식은 있다. 예를 들면 ‘개나발(인과 라의 전을 위하여!)’, ‘오징어(랫동안 그럽게 울리자!)’ 처럼 초성으로 N행시를 짓는 방식이 있고, 짤막한 스토리텔링을 한 후에 선창, 후창 방식으로 하는 방식이 있다. 그중에는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들도 있다. 예를 들면 ‘거시기(절하지 말고 키는 대로 절할 때까지)’ 따위의 건배사. 특히 회사 회식 자리라면, 최악의 건배사가 아닐까. 하긴, 최근엔 광주대학교의 한 교직원이 한 여직원의 이름을 거론하며 “OOO의 성생활을 위하여!”라는 건배사를 했다가 논란이 되기도 했으니 글이든 술이든 짓는 사람에 따라 미추가 극명한 건 마찬가지인가 보다.

개인적으로는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참 별볼일 없는 동네 아저씨들이 ‘정희네’에 모여 외치는 건배사가 마음에 들었다. “우게!(우게!), 우게!(우게!) 잔을 비우게!”였는데, 끝까지 듣기 전까지는 정확한 뜻을 알 수 없는 궁금증과 서스펜스(!?), 그리고 건배라는 뜻에 충실한 ‘잔을 비우게’라는 말까지. 이렇게 말은 하지만, 아마 써먹을 일은 없을 것 같다.

건배하지 않는 건배(乾杯)

그런가 하면 잔을 부딪치지 않고서 잔을 비워야 하는, 건배하지 않는 건배(乾杯)의 순간들도 있었다. 바로 장례식 조문 자리. 상주와 가족들을 최대한의 슬픔으로 곡소릴 하고, 조문객들은 최대한의 왁자지껄함으로 고인의 가시는 길을 쓸쓸하지 않게 하는 우리네 장례식 문화는 그야말로 역설과 모순의 현장이다. 때문에 아무리 밥 생각이 없어도 장례식장에선 수육 한 접시, 육개장 한 그릇 정도는 비워야 예의고, 술 생각이 없어도 소주를 나눠 마시며 왁자지껄하는 것이 예의다.(물론 인사불성이 되어 폐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이십대 초반, 일찍 세상을 뜬 친구의 장례식에 조문을 간 적이 있었다. 같이 골목에서 술래잡기를 하고, 운동장에서 축구를 했던 친구였다. 자식을 먼저 보낸 장례식장은 처연하고 처절했다. 중학교 졸업 후 오래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이 모여 친구의 가는 길을 배웅했다. 수육이며 육개장, 소주가 가득한 상에 둘러앉아서 우리는 서로 한숨만 푹푹 쉬었다. 그러다 누가 먼저 소주로 잔을 채웠고, 우리는 뭣도 모르고 짠 하는 소리를 내며 건배를 했다. 죽은 친구의 누나가 퉁퉁 부은 얼굴로 와서는 억지로 웃으며 “장례식장에선 건배 하는 거 아니데이. 죽은 동생은 이해해주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면 뭐라칸다.”며 알려주지 않았다면, 몇 번쯤 더 짠, 하며 건배를 했을 것이다.

그 뒤로도 몇 잔을 연거푸 마셨다. 서로 의미 없는 근황을 묻다가, 잔을 비우는 것 말고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건배 없이도 우리는 다들 건배(乾杯)를 했다. 눈물 없이도 슬퍼하고, 죽지 않고도 죽음을 느끼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