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고 싶다는 욕망의 정체

어릴 적 장래희망의 기억

남들 하는 만큼은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외국어 얘기만 나오면 실없이 웃으면서 “난 국문과 출신이라…”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 수학은 이차방정식이 내 마지막 단원이다. 삼각함수니 시그마니 하는 단어는 기억하지만 어떻게 계산하는 것인지는 가물가물하다. 미술 실력은 더 형편없다.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가, 지점토 작품 만들기를 했을 땐 공룡, 자동차, 꽃 같은 작품들 사이에 ‘공’이란 제목으로 지점토를 동그랗게 빚어두기만 했다. (차라리 제목을 지구나 슈퍼문 같은 걸로 했었다면 좀 있어 보였을 텐데.)

아무튼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할 줄 아는 거라곤 읽고 쓰는 일과 열심히 뛰어다니는 것뿐이었지만, 그런 나도 ‘장래희망 조사’를 할 땐 그럴 듯한 직업을 적어내는 눈치는 있었다. 나는 장래희망으로 과학자와 의사를 주로 적었고(수학에는 젬병인 내가!), 외교관이라든가(국문과 졸업했습니다.) 가수라고 적기도 했다.(노래방을 좋아하긴 합니다만) 결과적으로 서른에 이르러 칼럼과 에세이를 쓰고 택배 일을 하며 가끔 운 좋게 강연을 하고 있지만, 어릴 적 내가 적었던 장래희망을 보고 기대로 부풀었을 부모님의 마음을 생각하면 괜히 죄송스러워진다.

‘평범한 삶’이라는 신기루

서울대학교, 하버드 대학교를 외치던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4년제 국립대만이라도 가면 좋겠다는 푸념을 하는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이 되는 경험을 통해, 대학 신입생 시절 이미 나와 동기들은 소시민적 체념에 능숙했다. 지방 4년제 국립대학의 상경계열 학과에 입학해서 공급 수요 법칙이라든가 가격탄력성,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 따위를 달달 외우며 내가 바랐던 건 다만 취업이나 잘 되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마저도 최선이라기보다는 최소한의 목표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심각한 청년 취업난 속에서 우리가 한숨에 섞어 자주 했던 말은 “난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은 건데, 큰 욕심 안 부리고 적당히 벌고 적당히 쓰면서 살고 싶은 건데. 그게 이렇게 어렵나?”였다. 과학자, 의사, 가수, 심지어는 대통령을 꿈꿨던 우리는 어느새 거저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았던 평범한 삶을 갈구하는 신세가 되었다. ‘평범한 삶’은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청춘을 희망 고문하는 신기루 같았다.

꿈은 없고요, 그냥 놀고 싶습니다.

그 때문일까, 그 시절 우리가 술에 취해 털어놓은 속내는 이랬다. “꿈은 없고요, 그냥 놀고 싶습니다!” (그렇게 같이 외쳤던 친구들 대부분이 번듯한 직장인이 되었다. 배신감이 든다.) 돈 많은 백수, 금수저 집안의 자식, 조물주 위의 건물주 같은 허무맹랑한 망상을 꿈꿨다. 그래도 다들 심성은 착해서 함부로 저를 키워내느라 등골이 다 휘어버린 부모를 욕하지는 않았다. 대신 부질없는 로또에 운명을 걸어볼 뿐.

나는 지금 ‘글 쓰는 삶’이라는 목표와 꿈을 위해 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달에 한두 번쯤은 로또를 산다. 가끔 사려다가 못 샀을 땐 “아, 또 몇 십억 놓쳤네.”하는 헛소리도 하고. 꿈을 좇으며 살고 있으면서도 가끔은 ‘평범한 삶’이라는 신기루와 ‘꿈 따위 버리고 놀고만 싶은 삶’이라는 망상을 완전히 놓아버리지는 못한 셈이다. 그 둘은, 너무 매력적이다. 평화롭고 풍족하다. 나는 매일 머릴 쥐어짜내며 글을 쓰고, 온몸을 땀으로 샤워하며 택배 일을 하고 있는데.

평범하고 싶다는 욕망의 정체

얼마 전, 부산문화재단이 후원하는 ‘일교차 줄이기 프로젝트’ 모임에서 연사로 초청 받아 강연을 했다. 꿈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프리랜서 작가라는 타이틀이 초청의 이유였다. 세상에, 거창하게 이뤄둔 것 없이 그저 열심히 산다는 이유만으로도 강연을 할 수 있다니. 열댓 명 앞에서 어쭙잖은 말주변으로 1시간 정도 강연을 끝냈고, 다행히 반응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강연을 준비하며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래도 명색이 강연이니, 뭔가 특별하고 임팩트 있는 이야기를 하긴 해야겠는데 아무리 내 인생을 구석구석 뒤져봐도 별로 건질 거리가 없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 내 인생이 이렇게 평범하고 지루했던가.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거다. 어? 내가 알고 보니 꽤 평범한 삶을 살았네. 한때 그토록 원하던 평범한 삶을.

한 가지 재미있는 건, 정작 내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나를 특별하게 바라본다는 것이다. 나를 아는 내 친구들도 나를 좀 특이하게 생각한다. 어쨌든 남들 다 쌓는 스펙도 안 쌓고, 남들 다 하는 취직도 안 했으니까. 직장인들 사이에서 프리랜서 작가랍시고 글을 쓰고 있으니까.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 직장인 친구들도 충분히 특별하다. 나로서는 엄두도 못 내는 일들을 척척 해내고 있으니까. 어쩌면 우리는 스스로에게는 시답잖고 평범하지만 서로에게는 특별한 삶을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강연을 준비하고, 사람들 앞에서 내 이야길 전하면서 평범하고 싶다는 욕망의 정체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적당히 벌고 적당히 쓰는 삶. 아주 대단한 행복도, 아주 대단한 불행도 없는 삶. 봄날의 호수처럼 잔잔한 삶. 우리가 평범하고 싶다고 말할 때 바라는 것들이다. 하지만 평범한 삶이라는 소득 수준이나 안정감의 정도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내가 나다운 삶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남과 비교하지 않아도 되는 삶. 누군가 부럽긴 하지만 그렇다고 스스로가 비참하진 않은 삶. 고인 호수보다 흐르는 강물이 더 삶과 닮아있다는 걸, 아는 삶. 그런 평범함이라면, 누구나 각자의 평범함으로 살아갈 수 있다. 동시에 누구나 서로에게 특별함으로 빛날 수도 있다. 평범함과 특별함이 서로 다르지 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