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친한 동생이 이야기했다.

‘오빠,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말이 뭔지 알아?’

뭔데?

‘끼리끼리 논다는 말. 이거 정말 무서운 말이야.’

조금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정말 무서운 말이었다. 뭔가 운명론 같은 말이니까. 너의 미래에 일어날 일은 뭔가 정해져 있다는 듯한 말. 니가 같이 놀아나는 사람들의 면면은 결국 너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뻔하디 뻔한, 그 끼리끼리 놀고 있는 인간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너의 인생이나 운명이나 미래도 그러하리란 말.

그렇다면 나 역시도 끼리끼리 놀고 있나? 나는 거기서 좀 벗어나 있나?

그렇게 생각하면 사실 할 말은 없었다. 사실 지금 당장 곰곰이 생각해봤을 때 끼리끼리 놀고 있다는 범주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은 많이 없을 것이니.

 

예전에 사귀었던 여자친구는 나에게 이런저런 상처를 많이 줬다. 그 중에 가장 큰 상처는 ‘너 연극하지 말고 기술이나 배워’ 라는 말이었지만, 그것 못지않게 큰 상처가 되었던 말도 있었다.

그녀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나는 가정이 화목하고 행복하게 사랑받고 자란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

그런 사람은 뭔가 ‘에너지’ 자체가 다르다는 이야기였다. 어느정도는 공감했다. 나 역시도 주변에 그러한 사람과 그러하지 않은 사람들을 자주 겪어와 봤던 터였고, 이것은 편견이 아닌 어느정도 자라온 환경에 따라 사람이 풍기는 에너지가 다를수 있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그녀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와 연애를 하는 중이었고, 나는 여자친구에게 애초부터 이야기했었지만 가정이 화목하고 행복하게 사랑받고 자란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그 발언은 본인의 장래 희망을 이야기하는 소망에 불과할수도 있었지만, 내게는 ‘넌 그런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어차피 넌 나와 안돼’ 같은 낙인과도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 가슴에 박혔던 상처는 지금도 가끔 예전 일을 생각하면 따끔거리며 떠오르는 아픔이 되었다.

난 그녀와 연애를 하면서 행복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녀는 끊임없이 나의 부족한 부분을 지적했고, 나는 끊임없이 그런 것들을 개선하고 고쳐나가려고 했었다. 문제는 그녀가 지적했던 나의 몇몇 부분들은 나의 부족한 부분이라고 할 수 없는, 그저 나의 어느 일면들이었다. 그녀는 나라는 사람의 존재의 근간 자체를 어느순간부터 부정하고 있었고, 그녀의 말 때문에 나 역시 나라는 사람의 근간을 부정하고 있었다. 힘든 나날이었다.

그 절정이 바로 ‘연극 하지 말고 기술이나 배워’ 라는 말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거기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내가 하고있는 건 단점의 개선이 아닌 나 자신에 대한 부정일 뿐이라는 걸.

 

어느 순간부터 나는 사람에 대한 호불호가 강해졌다.

누구나 친한 사람들과 친하고,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 친하지 않겠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딱히 신경을 쓰지 않기로 결심한 뒤로는 인연을 끊는데 있어서 힘겨워 하지 않았다. 아무리 친했던 관계라고 하더라도 어느 순간 이 사람과 함께 지내는 게 기분이 나쁘거나 고통스럽다면, 연락처를 지워버리고 차단하고 봐도 아는척을 하지 않는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매정하다고 할수도 있지만 그렇게 해서 떨어져 나간 사람들만 지난 5년간 몇 명일지. 딱히 세 본 적은 없지만 세 본다면 꽤 많은 사람들일거라 생각한다.

후회는 없다. 내게 가장 소중한 건 내 인생이고, 무엇보다 지지부진하게 그저 모두와 두루두루 친하고 원만하게 지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끼리끼리 노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과 내가 어울린다면, 나는 그 싫어하는 사람과 끼리끼리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니까.

이런 생각에 확신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그렇게 멀어진 사람 중 나보다 나이가 조금 많은 형이 있었다. 그 형과는 직접적으로 틀어진 계기가 있어서 멀어졌다기보다는, 내가 그 즈음에 가장 싫어하고 혐오하게 된 사람들과 그 형이 가까이 어울리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멀리하게 된 케이스였다. 그런 간접적인 계기 때문에 어느정도는 나도 미안하게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졸업공연을 하게 되는 날 오랜만에 만난 그 형은 멋쩍었는지, 아니면 정말 반가움에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보자마자 인사도 없이 뒤통수를 때린 뒤에 ‘오랜만이다’ 라며 미소를 지었다.

글쎄, 옆에 재떨이 같은게 있었다면 얼굴에 던졌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썩은 표정을 지으며 ‘왜 뒤통수를 때려?’ 라고 이야기하자 그 형은 금새 섭섭한 표정을 지으며 ‘그때 그 일 때문에 그러는거야?’ 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멀리서 그 형의 얼굴을 확인했을 때부터 이미 예전의 앙금같은 건 존재하지가 않았다. 어느정도는 그 형과의 화해를 마음속으로 준비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모든 것이 산산히 부서진 것은 과거의 앙금이 아닌, 오랜만에 만나자마자 뒤통수를 때린 그 형의 행동이었다.

그 형에게 긴 말은 하지 않았다. 공연 보러 왔으면 공연이나 보고 가라, 고 한마디를 했었나. 아마 그랬었던 듯하다. 우연이 닿아서 그 형이 이 글을 보고 내게 연락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때는 정말 이렇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그때 안 맞은 것까지 두 배로 맞고 싶은 거 아니면 조용히 그냥 차단 당한채로 살라고.

 

사실 조금은 사악한 마음의 위로이지만 내가 싫어하고 혐오하는 사람이 예나 지금이나 끼리끼리 모여서 옹기종기 자기들끼리 만나고 다니는 걸 보면, 내심 안심이 되면서도 삶의 자극을 받는다. 결국 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저 수준에서 노는 것이고, 나도 저렇게 안주하는 삶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노력해서 계속 나아가야 한다고.

不怕慢, 只怕站.

 

천천히 가는 것을 두려워 말라, 다만 멈추어 서는 것을 두려워 하라.

 

요즘 들어 가장 마음에 새기는 말이 있다면 바로 저 고사성어 일텐데, 아마 나는 ‘끼리끼리 놀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것은 아닐지.

 

결국은 변하고 발전한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서였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아이러니하지만 나는 여전히 내 주변에 남아있는 나의 친구들, 그 ‘끼리끼리’ 들 속에 속해있는 나를 확인하면서 안정감을 느끼고는 한다. 연극을 하면서 가장 힘든 것 중에 하나가 MT를 가거나 반드시 술을 많이 먹는 문화인데, 개인적으로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유는 별것도 없는 게 내가 친구들보다 술이 많이 약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런 이유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끼리끼리’ 모여서 가끔씩은 폭음을 하고, 정말 술을 미친 듯이 먹어대며 만취가 된다.

‘나’ 라는 개인은 술을 한방울이라도 마시면 한 글자도 창작을 위해 써내려가지 않는 사람이지만, 연극을 하거나 친구들과의 친목을 위해서는 어찌됐든 나는 마셔댄다. 싫어하지만 마셔댄다는 것도 핑계일지 모른다. 어쩌면 친구들과 마시는 것은 그다지 싫어하지 않는 게 정답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저 친구들과 ‘끼리끼리’ 어울린다는 것을 그것으로 증명하는 것에서 안정감을 얻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발전하고 싶지만, 주변의 친한 이들과는 그저 변치 않음을 확인하고 싶은, 모순된 마음.

 

지방대를 2년 다녔었다. 지방대도 아니고 어쩌면 ‘지잡대’ 라고 비하해 불러도 좋을, 그래도 딱히 할 말이 없을 만한 곳을 다녔다. 지금 와서는 정말 생각만 해도 웃기는 일이지만 그 ‘지잡대’ 에도 4년제라고 대학원이 있었고, 생각보다 많은 선배들이 그 대학원에 진학해서 석사를 따고 박사를 따낸 채 졸업을 해서, 그냥 그렇게 살았다. 사실 단 한번도 뭔가 전공 관련해서 잘된 사람 소식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단순히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만이 아니라 학교의 역사를 통틀어서. 그런 대학이었다.

그 대학에 다닐 때의 나는, 그 대학의 대학원을 가고, 졸업을 해서 그저그렇게 사는게 그냥 꿈인 시절도 있었다.

군대를 다녀오고, 제일 먼저 했던 것은 그 대학에 자퇴를 신청하는 것이었다.

 

뭔가 벗어나고 발전을 하고 싶었다. 의도와는 다르게 운이 나빴을 수도 있지만,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고, 곧 새로운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됐다. 새로운 공부를 하게 됐다.

 

그리고 여기까지 왔다.

 

끼리끼리 논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지만, 정작 나는 끼리끼리 놀면서 참 편안함을 느낀다.

 

오늘도 그저 열심히 살려고 노력만 할 뿐이다. 노력만. 어쨌거나 자각은 하고 있으니 다행이지 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