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에 티를 찾는 버릇

사람은 다면체

사람이란 일종의 다면체라서, 때로는 모순적인 두 가지 요소를 동시에 지니곤 한다. 나도 마찬가지여서 필요 이상으로 꼼꼼한 태도와, 필요에 미달할 정도로 칠칠맞은 구석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뭔가 포장을 하거나 어딘가 청소를 할 때, 나는 ‘이왕 하는 거 제대로!’라는 모토 아래 거의 전투적인 자세를 취한다. 지난 번 화장실 청소 땐 1시간 넘게 때 빼고 광을 내느라 말미엔 세제 냄새 때문에 두통을 겪기도 했다. 그래봐야 원룸의 좁은 화장실인데, 그래봐야 며칠이면 다시 원상복구 될 텐데. 이런 내 태도는 돈 받고 남의 집 화장실을 청소해주기엔 수지 안 맞는 장사지만, 내가 내 화장실을 깨끗하게 하는 일에는 최적이었다.

반면에 세 살 버릇 서른까지 못 고치는 칠칠맞은 구석도 있는데, 바로 ‘옷에 국물 튀기기’다. 주의력이 산만하고 수저질이 능숙하지 않은 어릴 적에야 으레 있는 일이라지만, 나이 서른에 만전을 기한 식사 후에도 늘 어딘가에는 빨갛거나 누런 국물 자국이 튀어 있다. 음식점에선 앞치마를 둘러도 소용이 없다. 가끔은 옆구리나 어깨 뒤쪽 같은, 도저히 어떻게 튄 건지 가늠할 수도 없는 부위에 국물 자국이 있다. 내 옷장에 어둡고 진한 색상의 상의가 많은 이유가 꼭 국물 때문은 아니지만, 또 전혀 그런 이유가 없는 것도 아닐 테다.

밀면 때문이야

특히 여름엔 그 빈도가 더 잦아진다. 일주일에 적어도 3,4번은 밀면을 먹기 때문이다. (사실 정확하게는 ‘밀면을 먹기 때문’이 아니라 ‘칠칠맞은 내가 밀면을 먹기 때문’이겠지만) 옷에 국물이나 양념이 튀는 게 싫어서, 짜장면을 먹을 땐 가위로 면을 잘라 한 젓가락이 한 입에 쏙 들어가도록 먹지만, 밀면은 그럴 수가 없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된다. 냉면과 마찬가지로 밀면도 탱글탱글한 면을 씹는 맛으로 먹는 음식이기 때문에. 가능한 부드럽게 흡입(?!)하고, 가능한 그릇에 얼굴을 가까이 붙인 채로 밀면을 먹는데도 다 먹고 나면 늘 티셔츠 어딘가에, 안경 렌즈 어딘가에 옥에 티처럼 밀면 국물 자국이 있다. (그렇다고 나 스스로를 무려 ‘옥’이라고 추켜세우는 건 아니다. 그냥 관용적인 표현으로) 내 나이 서른. 이쯤 되면 그냥 칠칠맞은 게 아니라 부끄러워해야 할 일인 것만 같다.

그렇게, 밀면에 유독 취약한 스스로를 알면서도 이틀 전엔 또 밀면을 먹으러 갔다. 후덥지근한 열대야였고, 내가 사는 곳은 부산이니까. 여자 친구와 집 근처 밀면 가게로 가서 물밀면과 비빔밀면 하나씩을 주문했다. 저녁 8시를 넘긴 시간인데도 가게는 만석이었다.

옥에 티를 찾는 버릇

아르바이트 학생 두 명이 홀을 바쁘게 뛰어다니며 주문도 받고, 테이블도 치우고, 계산도 해내고 있었지만 버거워 보였다. 우리 커플은 심지어 여행을 가서도 맛집이라는 곳이 너무 북적이면 다른 가게를 향하는 성향이라, 정신없는 상황이 그리 마음에 들진 않았다.

앉은 자리의 테이블도 거의 10분 동안 치워지지 않아서, 우리는 남이 먹다 남긴 국물과 면발, 입술 주변을 닦은 구겨진 휴지들을 샅샅이 봐야만 했다. 주문 순서가 뒤섞였는지, 우리보다 늦게 온 테이블에 먼저 음식이 나갔다. 많이 바쁜데다가 고생하는 아르바이트 학생에게 따져서 뭣하겠나 싶어서 말을 아꼈다. 갈증이 나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오려는데, 쌓여있는 쇠컵들이 그리 청결해보이지 않았다. 고춧가루도 묻어있는 것도 있고, 젖은 휴지 조각이 군데군데 붙어 있는 것도 있었다. 순간 짜증이 확 올라와서, 한 마디 했더니 돌아오는 건 성의 없는 “아, 죄송합니다.” 한 마디뿐. 으아, 그냥 나가버릴까. 인상이 구겨질 대로 구겨진 나를 여자 친구가 달랬다. “괜찮아. 그래도 그걸 발견해서 다행이지. 우리 다음엔 다른 밀면 가게 가자.”

그렇게 20분쯤인가를 기다려서 밀면을 먹을 수 있었다. 아, 그런데 야속하게도 밀면 맛은 또 왜 이리 기가 막힌지. 배알도 없이 새어나오는 만족의 미소를 겸연쩍어하면서 우리는 밀면 그릇을 싹싹 비웠다. 10분도 채 안 걸려서 식사가 끝났다.

또 국물이 튀었다

입가심으로 육수를 홀짝이고 있는데, 여자 친구가 던진 한 마디. “어? 또 국물 튀었네.” 역시는 역시였다. 이번엔 자로 잰 듯 가슴의 정중앙에 밀면 국물이 튀어 있었다. 급히 먹느라 언제 튄 건지도 알 수 없었다. 기분 좋은 식사 끝에 국물 자국, 그야말로 옥에 티였다. 괜히 쑥쓰러워서 “어? 언제 튄 거지. 조심한다고 했는데.”하며 혼잣말을 하는데 여자 친구가 한 마디 더 던진다. “언제 튄 게 뭐가 중요해. 어쨌든 한 방울 밖에 안 튀었네. 집에 가서 세탁기 돌리면 되지!”

날씨는 너무 덥고, 기분 좋게 간 밀면 가게에서는 시작부터 마음에 안 드는 것들이라 짜증만 내던 나는 어쩌면 ‘옥에 티를 찾는 버릇’이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애초에 옥에 티라는 표현에는 더없이 완벽할 수 있었으나 아주 작은 흠결 탓에 그러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깔려있는 셈이지만, 뒤집어 말하면 역시 겨우 ‘옥에 티’일 뿐인 것이다. 자그마한 티는 잘도 찾아내면서, 영롱한 옥색의 나머지 부분을 잊어서는 만족이나 행복은 늘 멀리에만 존재하게 될 것이다. XL 사이즈 티셔츠에 쌀 한톨만한 국물이 튀었다한들, 뭐 어때. 당장 격식을 차릴 필요도 없고, 길거릴 걷는다고 그 국물 자국에 집중해서 날 비난할 사람도 없는데. 그냥 집에 가서 세탁기 돌리면 그만일 일인데.

물론, 그 밀면 가게는 다시 안 갈 것 같다. 너무너무 맛있었지만, 그저 ‘옥에 티’정도로 봐주기엔 위생은 너무 심각한 문제니까. 근데, 진짜 너무너무 맛있었다. 이러다 또 가면 어떡하지. 또 티셔츠에 국물이나 튀어 오겠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