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어른인가

가짜 어른 구분법

얼마 전 브런치에서 ‘가짜 어른에 속지 않는 법’이라는 글을 읽었다. 구구절절 명료하고 재미있는 글이었는데, 특히 나는 이 문장이 좋았다. ‘말과 행동이 달라 헷갈릴 때는 행동만 보는 것이다. 사람들은 말과 행동이 다를 경우, 자꾸 말을 믿으려 하지만 말은 그 사람이 아니고 행동이 그 사람이다.’

내가 어른이라고 믿었지만 실은 어른이 아니었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온화한 표정과 그럴싸한 말을 믿은 탓에 구차하고 비겁한, 어른답지 못한 행동들을 보지 못했던 지난날들이. 그리고 행동을 기준으로 다시 되짚어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른다운, 존경할 만한 사람들도 드러났다.

아직 나는 어려서

내 나이 서른. 아직도 나는 내가 어리고, 어리석은 것만 같다. 오히려 고등학생 때가 더 ‘내가 벌써 나이가 몇인데…’하는 생각을 하며 어른이 다 된 것처럼 행동했다. 돌이켜보면 민망하고 부끄러운 짓이었다. 이제는 누가 내게 조언을 구하는 게 부담스럽다. 일단 내가 아는 게 너무 없고, 뭔갈 안다고 해서 함부로 조언을 건네는 것도 같잖은 짓 같아서. 절대로 어디 가서 ‘내 나이가 서른인데…’ 하며 어른 대접 받으려면 어쭙잖은 짓은 못하겠다.

어른 대접이라는 거, 누군가 날 어른으로 봐준다는 거, 문자 그대로 그건 내가 결정하거나 요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나이를 내세우고, 직책을 내세우며 누군가에게 “날 어른 대접해달라. 난 이만큼 어른이다. 난 이제 다 컸다.” 외치는 것만큼 어리고 어리석은 짓이 또 없다. 어른답게 행동하면, 주위에서 어른 대접을 해준다. 말주변이 없어 그럴싸한 말을 못해도 상관없다. 내가 읽었던 글처럼, 말은 그 사람이 아니고 행동이 그 사람이니까.

꼰대의 특징

한때 ‘꼰대’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다. ‘틀딱충’과 동의어처럼 사용되던 꼰대라는 말에는 ‘나이는 드실 만큼 드셨으나 어른답지 못한 사람’이라는 함의가 있었다. 그러다 요즘엔 ‘젊은 꼰대’가 범람하면서 함의에도 변화가 생겼다. 나이는 별 상관이 없어진 셈이다.

젊은 꼰대의 특징 중 하나는 자꾸 제 입으로 어른 대접을 바란다는 것이다. 책임감은 없으면서 남탓은 잘하고, 행동은 개차반이면서 말은 번지르르하다. 실질적으로 필요한 정보에는 게으르고 주변의 조언은 아니꼽게 듣는다. 그러면서 ‘실전’이라는 허울을 맹신하며 주먹구구식으로 일을 처리한다. 최소한의 원리원칙이나 도의적인 수준도 없이 ‘융통성’이라는 만능 도구로 불법, 부도덕, 비매너를 일삼는다.

현실적으로 최선이나 최상이 힘들면, 최소한을 확보하는 것도 좋은 타협점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때때로 훌륭한 어른보다 젊은 꼰대가 반면교사로는 더 적절하다. 최소한 저렇게는 하지 말아야지, 다짐하게 되니까.

누구의 어른인가

누구의 어른인가. 이 문장을 되새겨야겠다. 나는 나만의 어른인가, 타인들의 어른인가. 아직 익지도 않은 사과가 아무리 몸집을 키워봤자 실속 없이 빨리 떨어지는 낙과로 썩을 뿐이다. 겉멋만 잔뜩 들어 나이나 직책을 앞세워 스스로를 아무리 어른이라고 불러본들, 그렇게 젊은 꼰대가 되어갈 뿐인 것처럼. 누군가가 먼저 붉고도 윤이 나는 때깔을 알아보고 잘 익었다고 불러줄 때까지, 사과는 시간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 누군가가 어른이라고 불러줄 때까지, 묵묵히 어른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