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닮은 버스킹

너무 덥다.

연일 이어지는 폭염 때문에 출퇴근 같은 필수적인 상황이 아니면 의미 없는 외출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누진세의 위협도 내 에어컨 사용을 멈추지 못했다. (물론 다음 달 전기세는 온전히 내가 감당해야할 몫이겠지만) 혼자 사는 남자라 웬만한 생필품은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가능하면 집에선 가스레인지를 사용하지 않고 먹을 수 있는 간편 식품을 먹는다. 매년 여름마다 느끼는 거지만, 항상 올해 여름이 가장 덥다.

요즘은 우리 동네에 유난히 사람이 북적인다. 너무 가까워서 한동안 잊고 지냈지만, 5분 거리에 광안리가 있어서 피서 행렬이 우리 동네를 가로지른다. 남들은 몇 시간 거리에서 휴가를 즐기려고 일부러 찾아오는 광안리를, 나는 여름이 시작되고 난 약 두달 간 한 번도 가지 않았다. 먹고 사느라 바빠서이기도 했지만, 우선은 너무 더웠다. 광안리 해변에 하얀 물거품 내며 부서지는 파도 소리보다 우리 집 에어컨이 가동되는 소리가 더 시원했으니까.

우리 동네 ‘핫플’이야!

그러던 날씨가 어젯밤엔 웬일인지 열대야도 없이 그럭저럭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올여름에 이런 기회가 또 언제 올까. 나는 부랴부랴 옷을 챙겨 입고 여자 친구와 광안리로 향했다. 불과 5분 거리인데, 더위에 지쳐버린 우리 집 근처와 달리 광안리는 이미 축제 현장이었다. 사람들은 다들 술과 기분과 기온에 붉게 상기되어 있었고, 해변에서는 100m 간격으로 각종 행사 부스와 버스킹이 이어지고 있었다. 오랜만에 본 밤의 광안대교는 유난히 더 화려했고, 밝은 보름달 달빛 덕분에 반짝이는 바다의 물결이 밤에도 선명했다.

덥다고 방에만 틀어박혀 있어서 몰랐지만, 우리 동네는 그냥 덥기만 한 ‘hot place’가 아니라 흔히 말하는 힙하고 화려한 ‘hot place’이었다. 참 살기 좋은 동네야. 새삼 여름밤의 광안리 해변을 걸으며 나는 애동심‘愛洞心’을 되새겼다. 얼마간 걷던 우리는 어느 버스커의 노래를 듣기 위해 모래알이 어지러운 계단에 걸터앉았다.

버스킹의 묘미

아마 광안리 해변의 끝에서 끝까지 걸으며 그 수를 세어본다면 10명은 족히 넘는 버스커들이 있지 않을까. 그 중에서도 우리는 ‘기타치는 웨하스’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인 버스커의 노래를 들었다. 일단 목소리와 가창력이 너무 뛰어났고, 입담도 재치가 넘쳤다. 무엇보다도 취향을 저격하는 선곡.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서른 즈음에’에 이어 정준일의 ‘안아줘’, 박중훈의 ‘비와 당신’으로 이어지던 노래는 Damien Rice의 ‘Elephant’에서 절정에 치달았다.

신청곡도 받았는데, 그 기준이 너무 깐깐했다. 우선 ‘김나박이’ 노래는 소화해낼 수 없으니 패스하고, 신청이 들어온 다른 곡들도 본인이 모르면 패스. 나도 이문세의 ‘소녀’를 신청했지만 기억이 잘 안나 패스. 본인 입으로도 말했듯이 이쯤 되면 신청곡이 아니라 ‘버스커가 부르고 싶은 노래를 알아맞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워낙 호감형인데다가 재치가 있어 즐겁게 무대를 이어갔다. 선선한 밤바다 공기 속에서 그의 노래를 들으며, 또 이런 게 버스킹의 묘미 아니겠냐고 기분 좋게 상황을 즐겼다.

인생은 무대 없이도 치러진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들을 땐, 만감이 교차했다. 갑작스럽게 나선 광안리 산책길에서, 우연히 만난 한 버스커의 노래, ‘서른 즈음에’ 공교롭게도 나는 서른이었다. 괜히 서른 감성(?)에 젖어서 풍경을 찬찬히 둘러봤다. 흘러가는 구름에 말갛게 얼굴을 씻는 보름달. 물결 따라 반짝이는 물비늘과 부서지는 파도 소리. 그리고 가지각색으로 뒤섞인 군상들.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점점 잊혀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쓸쓸한 노랫말이 흘러나오는 동안, 바로 몇 십 미터 옆 다른 무대에선 신나는 힙합 노래에 다들 신나 있다. 아름다운 바다와 하늘, 광안대교 같은 풍경들은 풍경대로 흐르고, 이따금씩 등 뒤로는 위급한 사이렌을 울리며 몇 대의 엠뷸런스가 지나갔다. 누군가는 술에 취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검은 밤하늘에 도발하듯 폭죽을 쏘아 올렸다. 몇 번인가 개 짖는 소리가 들렸고 해변에선 추억을 남기려는 무리들이 점프샷을 찍으려 몇 번이고 제자리 뛰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노래는 계속 되어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 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로 이어졌다.

그러다 문득, ‘버스킹은 참 인생을 닮았구나’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러니까, 굳이 따지자면 인생이란 잘 차려진 세트와 무대 위에서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이런 버스킹 같은 거 아닐까. ‘자, 이번 무대는 아주 슬픈 발라드야. 그러니까 관객들도 감성에 젖어 팔을 천천히 좌우로 흔들기만 하라고.’ 같은 설정은 인생에 유효하지 않다. 내 인생이 아무리 절망적이어도 누군가는 환호하고 세상은 무심하게도 아름답다. 한가롭게 노래나 듣고 있는 동안에도 엠뷸런스 안에서 누군가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사투를 벌인다. 그렇게 각자의 사정으로 어지럽게 뒤섞인 채 흘러가는 것. 무대 없이도 치러지는 일. 버스킹이나 인생이나 그렇게 닮아 있었다.

내 인생의 버킷 리스트에도 ‘버스킹 하기’가 있다. 비록 지금은 노래 실력도 비루하고, 남들 앞에 설 용기도 부족해서 미루고만 있지만 언젠간 나도 버스킹을 하게 되지 않을까. 아무 곳에나 자릴 잡고 서서, 들어주는 사람 몇 명 있지도 않은데도, 묵묵히 노래하는 것. 내 슬픔과 상관없는 행복이 도처에 넘쳐도 개의치 않고 슬퍼할 수 있는 것. 그렇게 각자의 사정으로 어지럽게 뒤섞인 채 흘러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걸, 그때쯤이면 해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