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유튜브 채널을 자주 본다. 얼마나 자주 보는지 보다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대중교통을 타도, 자기전에 침대에 누워도, 식당가서 음식을 시켜놓고 기다리는 시간에도, 심지어는 밥을 먹으면서도, 넋놓고 얇은 스마트폰 화면으로 움직이는 영상을 보고 있으면, 가끔은 별 재미도 없는 영상인데도, 한번 보고 두 번 보고 세 번 넘게 본 영상인데도 또 넋놓고 보고 있는 일도 있다.

헌데 프랑수아 트뤼포가 말했듯이 영화를 사랑하는 세 가지 단계가 있으니, 1단계는 한번 본 영화를 두 번보고 세 번 보고 반복해서 보고, 2단계는 본 영화에 대해서 글을 쓰고, 3단계는 직접 영화를 찍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다보니 나도 문득 유튜브 채널을 한번 열어서 컨텐츠를 한번 만들어 올려볼까 생각이 들었다. 수익성에 대한 유혹 때문도 있었지만 수익보다도 컨텐츠를 만든다는 것 자체에 대한 흥미가 더 강했다. 영상을 전문적으로 할 생각은 더는 없으니 가볍게 접근하기도 좋았고.

태극권을 오래 수련하고 있고, 또 아르헨티나 탱고를 1년 넘게 추고 있다보니, 그동안 몸으로 익힌 움직임과 트레이닝에 대한 이론이나 운동법을 언젠가는 정리해야지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이미 훌륭한 트레이닝 이론이나 운동 방법론들이 유튜브에도 넘쳐나고 있긴 했지만, 내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정리한 사람은 아직 없기 때문에 자료를 남기는 차원에서라도 늘 생각을 하고 있긴 했었다.

제목도 정해뒀었다. Naked Martial Arts. 라고. 벌거벗은 무술이란 컨셉으로. 그동안 나는 동양 무술의 가장 큰 단점 중 하나가 도복을 입는 것이라고 생각을 해 왔다. 정작 도복 문화의 발원지인 일본에서는 공수도의 경우 원류인 오키나와로 가면 딱히 도복이라는 문화가 없었다. 오히려 본토의 유도에서 빌려온 게 이 도복문화인데, 공수도는 지금도 오키나와에서의 훈련 모습을 보면 도복을 입되 상의를 탈의한 채 웃통을 까고 수련하는 모습들을 많이 볼 수가 있다.

뜬금없이 도복 이야기를 왜 했느냐, 현대 스포츠의 생명은 정확성과 원리에 근거한 과학적 접근과 분석인데, 동양 무술의 이 도복 문화가 이 과학적 접근과 분석에 심각한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태권도도 마찬가지고 유도도 마찬가지이며, 무엇보다 중국 무술들도 마찬가지다. 도복의 펑퍼짐한 실루엣으로 가려서는 인체의 제대로된 자세를 보고 교정할 수가 없다. 제대로된 자세가 없으면 제대로된 힘이나 움직임이 나올 수가 없다. 같은 정권 지르기라도 제대로 된 자세를 잡았는지 아닌지는 도복을 입은 실루엣으로는 판단할 수가 없다.

중국 무술에서는 그래서 개인 교습이 단체교습보다 엄청나게 비싼데, 이는 스승이 제자의 몸을 일일이 잡아줘가면서 교정을 해주기 때문이다. 애초에 도복을 입은 실루엣의 몸은 척 봐서 교정해주기도 쉽지가 않다. 내가 하고픈 것은 스승의 도복을 벗기고, 제자의 도복을 벗겨서, 인체의 정확한 실루엣을 보면서 정확한 자세에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방법론이다.

실제로 나는 아르헨티나 탱고를 배우면서 익힌 정확한 자세가 태극권을 익히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되었고, 그게 대부분의 무술 자세에도 비슷한 긍정적 영향을 끼칠 거라는 걸 확신했다.

그래서 이런 걸 유튜브 컨텐츠로 만들어서 한번 올려보면 어떨까, 한 2편에서 3편 내지로 핵심만 정리해서 일단…

이라는 생각들을 요즘 하고 있었다.

근데 이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또 다른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그래서 내가 도대체 하고 싶은게 궁극적으로 뭔데? 유튜브 채널 만드는게 내 인생의 새로운 목표이자 궁극적인 지점인건가? 그건 아닌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유튜브는 그저 구실이고 나는 꾸준히 태극권이나 아르헨티나 탱고를 수련하면서 동시에 누군가를 가르쳐보고도 싶고 내 이론을 정리해서 남기고도 싶은 것이었다.

그래서 일기를 쓰면서 정리를 좀 해 봤다. 내가 하고싶은게 도대체 뭔지.

노동을 해서 돈을 벌어 자립을 하고, 글을 쓰고 연극을 하고, 독서를 하고, 중국어와 영어를 꾸준히 공부하고 사용하는 것, 태극권과 탱고를 계속 하는 것. 정도.

그리고 요즘 이런 걸 하면 어떨까 하고 상상하는 것 중에 하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에 다시 가서 순례자들을 위한 알베르게(숙소)를 열고 싶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시 가고 싶고, 그곳에 살고 싶다는 생각은 정말 자주 했지만, 요즘 들어서는 그렇다고 내가 무슨 순례길을 앞뒤로 계속 오고가는 거지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니니까, 구체적으로 순례길에 관련된 무언가를 하는 편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을 많이 했다. 그게 바로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 알베르게를 여는 것이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있는 수많은 알베르게를 다녀갔지만 내 기억으로는 일단 ‘제대로 된 따뜻하고 든든한 아침식사’를 주는 식당이 전무했고, 무엇보다 건조한 날씨와 일교차 때문에 여름에도 눈이 내리는 변덕스러운 날씨에도 숙소는 너무나 추웠다. 벽난로가 있는 곳이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었고, 이불을 덮지 않으면 한여름에도 덜덜 떨면서 자다 감기에 걸리기 일쑤였다.

얼마전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왔던 또다른 친구와 이런 이야기들을 하다가, 야, 우리 할 거 없으면 순례길 가서 알베르게나 열자, 고 수다를 떨었다. 가서 한국식으로 구들장 깔고 온돌 황토방 하나 만들고, 거기 아궁이에다 가마솥 걸어서 아침마다 시래기 국밥 뜨뜻하게 토렴해가지고 아침밥으로 팔자. 내가 여기까지 운을 띄우자 친구는 니가 출자하면 내가 가서 국밥 말아서 토렴할게, 하고 나섰다. 결국 내가 돈을 내야 되는 운명이구나, 하는 걸로 마무리가 되었지만, 사실 몇 달전부터 그 생각이 자꾸 아른아른 눈에 밟혔다.

이 꿈은 언젠가는 1년이 됐든 3개월이 됐든 진짜로 한번은 내 인생에서 하고 가야 하는 거로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 꿈에다가 위에다 썼던 내가 하고싶은 많은 것들을 쭉 나열해봤더니, 묘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야기 창작 예술에서는, 한가지 이야기에 대한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있다면, 그 중에 몇 개는 어쩔수없이 포기하고 주도적인 하나를 골라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가장 좋은 선택은 그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하나로 합치는 것이다. 라고.

산티아고 순례길에 위치한 알베르게인데, 온돌 황토방이 있고 아침에는 토렴한 시래기 국밥을 파는 곳이고, 낮에는 그 작은 시골의 지역사회에서 사람들에게 태극권을 가르치고, 저녁시간에는 아르헨티나 탱고 밀롱가를 여는, 그 와중에 꾸준히 독서도 하고 글도 써서 1년에 한두번은 연극을 하는.

뭔가 파편적이었던 하고싶었던 덩어리들을 모아모아 모아보니, 뭔가 현실성을 다 떠나서 그래도 구체적이고 명확한 하나의 덩어리가 생긴 게 기분이 좋았다. 사실 꿈에는 현실성을 따져서는 안된다. 실제로 실현 가능성이 있고 없고를 냉정하게 따지기 전에, 애초에 모든 꿈에는 현실성이 없다. 그래서 꿈인 거다.

예를들어 세상에 굶주리는 사람이 없도록 하겠어! 라는 꿈은 가난한 사람이 꾸건, 세계 최고의 부자가 꾸건, 애초에 불가능한 목표인 것이다. 그 목표에 다가가는 방식과 방향이 그저 달라지게 될 뿐이고, 그럼으로써 그들이 목표에 다가가는 걸음마다 세상이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할 뿐인 것이다.

더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불가능한 꿈을 똑같이 꾸는 경우 실질적으로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은 없이 살고 가난한 사람일 쪽이 더 크다. 농담이 아니다. 이야기 창작 예술에서는 또 이렇게 이야기한다. 어떤 인물을 창조했을 때 무한대의 가능성을 주는 것은 좋은 선택지가 아니다. 우리는 살면서 어떤 방식으로든 일정한 제약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때로는 족쇄에 가까운 것을 하나이상씩 달고 살아간다. 그 제약과 족쇄 때문에 인간은 그것들을 벗어나고 우회할 창의성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네덜란드의 한 소년이 있다. 지금 한창 전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을 한 소년이다. 이 소년이 돈이 많았다면 뭐 특정 재단을 만들어 기부를 하거나, 티비에 나와서 바다 거북이 코에 꽂힌 플라스틱 빨대 사진등을 보여주며 여러분 플라스틱 쓰지 맙시다, 라고 말을 했겠지만, 알다시피 네덜란드의 일개 한 소년은 그런 돈이 없었다.

이 소년은 연구를 시작했다. 바다의 해류가 흘러가는 방향, 그리고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모여 섬처럼 뭉텡이를 이루는 현상을 연구했고, <오션 클린업> 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그리고 쓰레받기처럼 바다의 플라스틱 부유 쓰레기들을 알아서 자동으로 모아 수거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실험하기에 이르렀다. 아직도 이 시스템의 실효성에 대해서 사람들은 반신반의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건, 보얀 슬랫이라는 이름의 이 소년은, 실제로 이 시스템을 만들어나가고 있고, 이제 곧 태평양 한가운데서 60개에 달하는 시설들을 설치해 최종적인 실효성 테스트만을 남겨놓고 있다는 것이다. 실효성이 입증되면 여러 나라들은 즉각 이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반응을 보이고 있고, 이중에는 대한민국도 있다.

뭐 내가 보얀 슬랫 급이라는 건 아니고… 쓰다보니 뭔가 결론이 이상한 교훈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결론은 하고 싶은 것들이 있으면, 당신들도 조각 조각 조각모음을 하지 말고, 오히려 하나의 덩어리로 뭉탱이로 모아보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불가능할 것 같은 꿈 한 덩어리를 구체적으로 만들어보라는 것이다.

사실 실효성을 떠나서 그렇게 구체적인 꿈의 덩어리를 만들어놓으면, 기분이 참 조크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