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그 구두

어릴 적, 내게 구두는 꽤 낯선 물건이었다. 아버지는 정장에 넥타이, 잘 닦인 구두를 신는 회사원이 아니었으니까. 친구들의 용돈 벌이 리스트 단골 소재였던 ‘아빠 구두 닦고 500원’의 기억이 내게는 없다. 아버지는 주로 운동화나 단화를 신으셨고, 그마저도 늘 주름지고 먼지를 뒤집어 쓴 모습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쉬운 마음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설거지, 방 청소, 흰 머리 뽑기 등등 구두 닦기 말고도 용돈 벌이용 노동은 충분했으니까.

멋 부릴 줄은 모르고 흙먼지 뒤집어쓰며 축구나 할 줄 알던 내가 처음 진지하게 구두를 생각했던 건 고등학교 졸업식 즈음해서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지만, 졸업식 날 여학생들은 거의 대부분 교복 차림이었는데 반해 남학생들은 거의 정장 차림이었다. 물론 몸에 맞지도 않고 세련되지도 않은, 아마도 졸업식 이후로는 꺼내 입을 일 없을 낯부끄러운 정장들이었지만 다들 꽤 멋진 어른이라도 된 양 한껏 어깨에 힘이 들어갔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정장에는 셔츠와 넥타이, 당연히 신발은 구두가 함께여야 한다고 믿었다. 돌이켜보면 지지리도 진부하고 보수적인 시절이었다.

나는 광택이 번지르르한 원 버튼 피크드 라펠 정장을 골랐다. 최악의 선택이었고, 당연히 졸업식 이후로 입을 일이 없었다. 작은 도트 무늬가 잔잔한 화이트 셔츠에 촌스러운 색 조합의 스트라이프 넥타이. 정장 못지않게 최악이었고, 언제 버렸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래도 꼭 하나, 졸업식 이후에도 경조사나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요긴하게 찾았던 것이 바로 구두였다. 과하지 않은 광택이 돌고 가죽이 튼튼한 블랙 브로그 윙팁 구두. 가죽 결이 드러나는 천연 가죽 구두에 비해 가죽의 경년 변화를 즐기는 맛은 없지만, 늘 깔끔하게 새것처럼 신을 수 있어 좋았다. 웬만한 빗물에도 가죽이 상하지 않았고, 소위 ‘전통적인’ 방식으로 제작된 구두에 비해 가벼운 중창과 밑창도 편안했다. 졸업식 이후로도 2년 동안 든든히 내 발을 책임졌던 그 구두의 행방은 내가 군대를 다녀오자 묘연해졌다. 이사를 하면서 미아처럼 흘러버린 것인지, 삼촌이나 사촌형이 슬쩍 가져가버린 것인지 모르겠다.

벌써 그 시절로부터 10년이 지났다. 갓 스물이었던 내가 갓 서른이 되는 동안(서른이라는 단어 앞에 붙는 ‘갓’은 어쩐지 부자연스럽다. 아마도 괜한 자격지심이겠지.) 7켤레쯤 되는 구두가 내 발을 거쳐 갔다. 골목 보세 가게에서 산 싸구려 구두부터 이름만 대면 알 법한 브랜드의 구두, 나름 공들여 만든 수제화까지. 아무 장식도 없는 더비나 플레인 토부터 클래식한 스트레이트 팁, 그리고 브로그 윙팁까지. 블랙, 버건디, 브라운, 체리 레드까지. 구두 켤레 수는 얼마 안 되지만 돌이켜보니 참 가지가지 신었다 싶다.

지금 내 신발장에는 2켤레의 구두가 얇은 먼지를 뒤집어 쓴 채로 벌써 몇 개월 동안 외출도 못하고 있다. 폭염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그 구두들보단 러닝화나 스니커즈가 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이유라면 아마 계절이 바뀌어도 구두의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끔은 고등학교 졸업식, 내 생애 첫 구두가 그립다. 적당한 광택이 도는 블랙 가죽은 어느 복장에나 잘 어울렸는데. 브로그 윙팁 만큼 포멀과 캐주얼을 아우르기 좋은 디자인이 또 없는데. 고급스러운 홍창이니 뭐니 해도 딱딱하고 무겁고 미끄러우면 다 무슨 소용이람. 폭신폭신하고 가벼운 그 구두의 걸음걸음이 참 좋았는데. 내 발에 맞게 주름진 구두의 발등이 꼭 구두의 표정 같아서, 늘 반가웠는데.

서른으로부터 다시 10년. 앞으로의 내 구두는 어쩌면 그 시절 사라진 구두의 닮은꼴들일지도 모르겠다. 첫사랑 잊으려고 이 사람, 저 사람 다 만나봤는데 결국 그 사람만한 사람 없더라는 진부한 청승을 떠는 것처럼. 내가 이 구두, 저 구두 참 많이도 신어봤는데 그 시절의 그 구두만한 구두가 없었다. 10년이 지나는 동안 사람은 변하고 누구와도 다시 그때 같을 순 없겠지만, 내 발에 꼭 맞는 구두는 변하지 않는다. ‘구두가 사람보다 나은 이유’라고 말하면 너무 거창할까. 뭐 어때, 겨우 구두 한 켤레를 잊지 못하는 사람이란 존재도 그리 거창하진 않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