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구두는 인연이 크게 없는 아이템이었다. 서른 다섯해를 살면서 구두를 골라본 적도, 제대로 신어본 적도 없다. 결혼식 때 신은 와인색 구두를 제외하면 말이다. 아버지의 구두는 백일휴가 때 닦아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고, 군대에서 신던 전투화는 구두약으로 광택만 냈지 구두라기 힘들만큼 무겁고 강인한 전투력을 자랑했다. 소년이었을 때, 아버지가 슈퍼맨처럼 보이던 그 시절에는 구두가 열리는 나무를 심어 아버지에게 그 나무를 선물하는 꿈을 꿀 정도로 나와 구두의 세계는 망원경으로 봐야 겨우 보이는 그런 세계였다. 그래서 나는 고등학교 졸업식에도 단화를 털래털래 신고갔고, 지금에 와서는 트랜디한 패션이었지만 당시에는 충격적인 패션으로 친구들을 놀래켰다. 

글쓴이가 구두를 신지 않은 이유는 발볼이 넓어 갸름한 구두가 잘 맞지 않기 때문이었다. 요즘은 맞춤구두나 커스텀구두가 유행하기 때문에 기성구두를 사더라도 발사이즈에 맞춰서 준다지만, 갓 성인이 되었을 때는 그런 서비스가 없었다. 수제구두는 비싸기만 했고, 기성구두의 커스텀 제작은 그 후 몇년 뒤의 이야기였다. 사실 구두점에 갈때마다 부끄러웠던 것 같다. 갈때마다 듣는 말은 ‘발볼이 넓으시네요’ 라는 말이었고 이 구두 저 구두 갈아신어보기 바빴다. 하나라도 팔아보겠다며 달려들었던 매장직원들은 하나같이 나중에서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얼굴에 쓰여 있었다. 그 마음을 너무나 잘 알았기에, 여린 마음에 굳이 안사도 되는, 잘 맞지도 않은 구두를 괜찮아하며 산적도 있었고, 물론 그 구두는 한번 신고는 신발장에 쳐박아두기 일쑤였다. 그때의 쪽팔림과 나에게 맞는 구두는 왜 없는가에 대한 상처 따위가 합쳐져 구두는 어느새 멀리해야 할 아이템으로 굳어져갔다. 오죽했으면 결혼식 때 신을 구두 사는 일을 미루고 또 미뤄 결혼 일주일 전에야 샀을까. 구두는 나에게 일종의 상처였다. 

구두를 멀리하게 되어서였을까, 나는 구두가 필수적인 직업이나 직장을 가진 적이 없다. 나는 종종 사무직, 샐러리맨들의 세계를 동경할 때가 있다. 물론 그들이 들으면 손을 절래절래 흔들테지만 나같이 평생을 프리랜서로 산 사람들에게는 경험해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임에는 틀림없다. 내가 만났던 샐러리맨들 치고 구두에게 상처입은 영혼은 아무도 없는 듯 했다. 나는 워낙 자유로운 영혼이다 보니 지금으로 치면 ‘탈코르셋’ 정도의 주장을 한때 하기도 했다. DJ.DOC 의 노랫말처럼 회사에선 반바지를 입을 수 없고, 사회가 요구하는 패션과 구두를 입고 신어야함이 못마땅했다. 그래서 점점 더 멀리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구두와 가까운 직업은 나도 모르게 꺼렸고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요즘은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 나에게 맞는 구두가 있었더라면 내 운명은 달라졌을까. 아니면 성인식에라도 내게 딱 맞는 구두가 있었다면 남들이 토익공부하고 이력서를 써댈때 나도 그 길을 따라가고 있었을까. 운명은 결과론적인거라 딱 장담할 순 없지만 감히 추측컨대, 내게 맞는 구두가 있었다면 나는 내 운명이 바뀌었을 것이다. 프리랜서로서의 삶을 살면서도 하다못해 클라이언트를 만날때 단화가 아닌 구두를 신었다면 계약 몇개는 더 따냈으리라. 

요즘 탈코르셋을 주장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여성들에게 탈코르셋이 있다면 남자들에게는 아마도 탈넥타이나 탈구두 같은 것이 아닐까. 각자의 개성이 존중받는 사회에 사는 것은 그 어떤 것 보다도 중요하다. 하지만 인생을 돌이켜보면 사회에는 보이지 않는 시각적 약속이 있는 것 같다. 수십년, 많게는 수백년 동안 지속되어 온 인간의 관습이 바로 그것이다. 인류가 수십년간 지속시켜온 약속을 하루아침에 깨뜨리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정장차림과 구두착용을 ‘신의’ 의 표본으로 여긴다. 이것은 단순히 개성이라는 이름의 나를 강조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바로 “내가 당신을 만나기 위해 이 정도의 ‘불편함’은 감수하고 있습니다”라는 일종의 언약과 같다. 

내게 맞는 구두도 중요하지만 불편한 구두도 신을만한 가치가 있었다. 어쩌면 내 불편함을 이유로 타인에게 더 큰 강요를 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구두를 신으면 발이 퉁퉁 붓고 심하면 물집까지 잡힌다는 것을 우리 누구나 다 안다. 사람과 사람의 진정한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은 상대의 불편함이 내게 감동을 줄때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구두를 신고 가는 그 이유가 이런 이유들 때문일 것이다. 내 결혼식이 끝난 후, 물집이 뜯겨 피딱지가 앉은 내 발뒷꿈치를 보고서 집사람이 받았을 그런 감동들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