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구두는 웨딩홀의 서빙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기 위해 산 2만원짜리였다. 돈이 필요했고, 급하게 인터넷으로 주문했기에 사이즈가 맞지 않아 손가락이 3개 4개는 들어가는 헐렁뱅이였다. 디자인은 볼 것도 없었다. 난 구두의 종류조차 제대로 몰랐기 때문에 그냥 제일 얌전하고 무난하게 생긴 검정 구두를 골랐다. 지금 보면 옥스퍼드도 아니고 윙팁도 아니고 정말 그냥 ‘구두’였다. 싸구려 가죽은 길이 들지 않았고, 복숭아뼈 밑에서 칼처럼 올라와서 내 발목뼈와 살들을 쓸고 저며냈다. 처음 구두를 신고 발목이 까져서 피가 났고, 그 구두는 영원히 길이 들지 않았다.

면접에서는 떨어졌다. 무슨 대단한 기업에 취업하는 것도 아니고 고작해야 아르바이트 면접이었지만, 8월의 무더운 날씨에 시커멓고 무거운 겨울 양복을 입은채로 발을 절뚝거리며 면접장에서 돌아오는 기분은, 그저 피곤하기만 했다.

내가 정장과 구두를 다시 신을 수 있었던 건 한참이나 시간이 흘러서, 친구의 부모님이 돌아가신 장례식장에서였다. 정장은 여전히 몸에 맞지 않게 크고, 덥고, 무거웠고, 구두는 여전히 발목이 아프고 헐렁거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빠 옷을 훔쳐입은 것처럼 어색하게 장례식장에 들어섰다. 내가 스무살이 넘어 가 본 거의 첫 장례식장이었다. 친구 역시 크고, 덥고, 무거워 보이는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넥타이를 맨 목이 답답해 보였다. 풀을 잔뜩 먹인 와이셔츠의 깃이 친구의 목을 쓸어서 목은 빨간 자국이 나 있었다. 우리는 어색하게 마주보며 절을 했는데, 내가 아빠 옷을 훔쳐입은 것처럼 보이듯, 친구 역시 그러했다.

새삼 생각해보면 나는 정장을 입는 법을 단 한번도 누구에게 배워본 적이 없었다. 구두를 고르고 신는 법 역시 마찬가지였다. 장례식장에서는 부조금을 얼마를 내야 하는지, 들어가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절을 몇 번을 해야 하는지, 절을 하기 전에 향을 피워야 하는지, 웃고 떠들고 도박을 하는 건 되지만 왜 건배를 하는 건 안되는지, 그전엔 배운 적이 없었다.

나는 갑작스레 맞지 않는 구두를 신어야 했던 것처럼, 갑작스레 이제 어른이잖아, 하면서 등떠밀려진 기분이었다. 내 맞지 않는 구두는, 옥스퍼드도 아니고 윙팁도 아닌, 그저 시커먼 그 구두는 장례식장의 난장판이 된 신발들 틈에서도 알아보기가 어렵진 않았다. 누가봐도 아저씨 구두인, 그러나 몇 번 신지는 않고 발목이 아파 뒷굽을 접어 신었던, 마치 누군가 아빠 것을 훔쳐 신은 듯한 그 구두.

어찌어찌 살다보니 나이가 서른이 되었다. 젊다기엔 민망하고, 늙었다기엔 창피하다. 애매하다. 그저 20대 초반 대학 초년 시절, 왜 그리 대학 선배들은 몇 살 차이도 나지 않는 새파랗고 어리석은 나이들이면서 어른들처럼 으스댔을까 싶다. 그들은 어른인 줄 알았을까? 어른이 되고 싶었을까? 대단한 선배인 것처럼 으스대던 그 선배들 중 하나가 4학년이 되고 취업 준비에 면접 준비에, 평소 입지도 않던 베이지색 정장 치마에 자켓에, 얼굴은 허옇게 뜬 화장에 어울리지 않는 시뻘건 립스틱을 바른채로, 과 사무실을 왔다갔다 했다. 처음 신어보는 힐이 어색한지 삐그덕대던 그 발걸음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그 선배도 나처럼, 민망하고 창피하고 애매했을까.

나는 이제와 정장을 입고 구두를 신지 않아도 되는 직업이라 다행이다. 사실 나는 여력이 없어 도피한거나 마찬가지다. 비슷한 나이에 이미 구두가 익숙한 그대들이, 나는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갑작스럽게 등이 떠밀려진 또래의 모두가, 한번씩은 민망하고, 창피하고, 애매하고, 또 어색했던 우리들이, 나는 지금껏 잘 살아와줘서 고마울 뿐이다.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잘, 한번 잘 살아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