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추억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에는 숱한 명장면이 있다. 그 중에서도 나는 영화의 초입무렵 #4 참깨밭 주변 씬을 가장 좋아한다. 롱-테이크로 수사반장과 온 관계자들이 논두렁에 나자빠지는 바로 그 씬 말이다. 그 장면에서는 또 하나의 인상 깊은 장면이 등장하는데, 바로 경운기가 용의자의 족적을 깡그리 뭉개버리고 가는 장면이다. 스토리상 이 족적만 잘 보존되었더라도 영화는 아마10분 만에 엔딩이 나왔을 것이다. 이렇게 한국 최고의 스릴러물은 경운기 노인의 열연이 다했다.

지문과 족적
범죄현장에는 언제나 지문과 족적이 있다. 그래서 과학수사대는 이 두가지 신체프로필을 찾으려 언제나 열일이다. 어느 날인가부터 스릴러물을 볼때마다 드는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은 ‘범죄현장에는 과연 발견되지 않은 족적과 지문이 얼마나 많을까’ 에 대한 의문이었다.그리고 그 생각은 곧장 우리의 삶과 이어졌다.

너무 뻔하게 맞는 말이지만, 우리는 범죄현장의 가해자가 아니다(?). 물론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어느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될 가능성도 현저히 낮은 것 같다. (본인 승질만 잘 다스린다면…) 그렇다면 범죄와 동떨어진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지문과 족적은 여전히 유용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혀 유용하지 않다. 지문과 족적을 이 지구상 어딘가에 숱하게 찍고 다녀도, 그 누구도 그 흔적을 강력범죄자의 것 마냥 알아주진 않는다. 아, 다만 회사의 지문출퇴근기는 기똥차게 잘 알아준다. 내가 회사 이익에 막대한 피해를 주는 가해자라서 그런가. 일 잘하는 사람들은 출퇴근기록이 허술해도 잘만 넘어가던데. 언제나 내게만 가혹하게 칼 같더라. 백일휴가 당시에는 아버지 구두를 닦아드리며 뒷굽을 보고서야 그나마 내 평생에 딱 한번 그의 흔적을 알아본 적이 있다. 전역 후3개월이니 그것도 끝나더라. 자식 잘 키워놔봐야 소용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문과 족적은 삶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유용성과 의미의 확장성이 언제나 일치하지 않듯이 말이다. 특히 구두의 족적이 주는 의미가 더욱 그렇다. 똑같은 신발인데도 신발장 안 구두에서는 하나하나 저마다의 사연이 보인다. 어떤 음악을 들으면 특정 시점이 생각나는 것처럼, 신발장의 구두를 빤히 보면 어떤 당시가 떠오른다. 내가 이 구두를 왜 샀었는지, 이 구두를 신고 어디를 돌아다녔었는지, 이 구두를 신고 얼마나 중요한 사람을 만났었는지, 이 구두를 신고 어떤 인생의 중대사를 함께 겪었는지 너무도 훤한 기억들이 떠오른다.

구두에도 나만의 족적이 있다. 내 걸음걸이 습관, 체중, 보폭과 엄지발가락이나 뒷꿈치에 가해지는 압력. 사람들의 다양한 지문만큼이나, 내 족적 또한 특별하다. 그래서 구두의 족적은 범죄현장이 아닌 우리네 삶의 현장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증거다.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지 않는 이상 우리는 오늘도 구두를 신고 이 땅 위에 서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나만이 알아보는 숱한 족적을 삶의 현장에 찍고 다니면서 말이다. 현대화된 도시에 살면서 지금은 사라져버린 비밀의 화원은 어쩌면 우리집 신발장일지도 모른다. 지금 당장 신발장을 열어보라. 당신도 모르고 아무도 몰랐던 당신의 일기장이 그 안에 숨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