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구두를 신었던게 언제였을까,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졸업식이거나 입학식이거나 둘 중 하나 였을테다.
학생때야 어머니가 사주신 유명하지 않은 브랜드의 운동화를 마르고 닳도록 신고 다녔으니. 처음 구두를 신었던 때가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하지만 처음 구두를 신었을 때의 느낌은 알고있다. 딱딱하고 불편한 감촉, 내려다 보면 내 얼굴이 비칠 정도로 반들한 표면, 뭐가 그리 좋으신지 흐뭇하게 쳐다 보시는 부모님의 얼굴.

구두는 하나의 상징이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의 준비가 되었다는 의미이자, 사회의 딱딱함과 불편함을 감수할 만큼 성숙했다는 의미이다. 남성의 구두와 같은 의미로 여성에게는 하이힐이 그럴것이다. 어쩌면 구두는 신발이라는 기능적 의미를 떠나 사회적인 상징의 하나로 기능하는지도 모른다. 한 정치인의 타계 후 그가 신은 낡은 구두가 재조명되듯이 사회는 구두로 사람을 기억하기도 평가하기도 한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구두의 사회적 의미도 변화고 있는 듯 보인다. 전통적인 의미의 테일러드 슈즈가 아닌 기능적인 면이 강조된 컴포트 슈즈를 선호하는 것도 의미와 효율을 함께 잡고자 하는 현대인의 심리가 반영된 결과일지 모르겠다. 만약 20명 정도의 작은 규모의 조직이 있다고 치자. 내일 모두 구두를 신고 오세요, 라고 전달하면 20명 나름의 다른 구두를 신을 것임에 틀림없다. 누군가는 반짝반짝 잘 닦여진 구두를 신고 올것이고, 누군가는 명품구두를 누군가는 신발장에서 오랜만에 꺼낸 낡은 구두를 신고 올것이다. 정보가 전혀 없다고 해도 나란히 세워놓은 구두로도 많은 부분 조직 구성원들의 케릭터를 확인할 수 있을것이다.

구두를 매일 신는 사람이 매일 신지 않는 사람보다 작겠지만, 적어도 중요한 자리가 있을때 자기만의 구두를 신고 간다.
문득 처음 구두를 신었을때의 감정이 떠오른다. 그리고 지금 나의 구두는 얼마나 낡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가기 위해 신발장에서 낡은 구두를 꺼내어 신을때 예전에 느꼈던 설레는 감정은 사라진지 오랜듯하다. 낡은건 나의 구두뿐만 아니라 나의 마음과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낡은 구두가 비난 받을 이유가 없듯이 낡은 마음이 비난 받을 이유도 없다. 낡은 만큼 편해졌고 또 그만큼 발뒷굽치와 마음에 생채기가 날 확률도 적어졌다. 한편으론 새구두의 설렘이 그립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론 낡아가는 마음이 여유롭기도 하다. 마흔이 되어가는 여름, 문득 싸고 튼튼한 구두를 새로 하나 장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