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필력만 필요한게 아니었다

글을 잘 쓴다는 것

‘글쓰기’를 다짐하고 실천에 옮겼을 때, ‘글 잘 쓰는 것’은 나의 목표가 아니었다.

일단 그냥 쓰는 거였다. 훗날, 어느 일정 기간이 지나 돌아봤을 때 그것이 쓰레기 일지, 아니면 자산이 될지 스스로 궁금했다. 당시엔 ‘글쓰기’가 내 인생 목록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뭔가 꾸준히, 진득하게 이룬 것이 없는 나 자신에 대한 불신이기도 했다. 일단 다짐했으면 써보기나 하라는, 당시 내면의 비웃음이 생생하다.

그런데 그 ‘글쓰기’는 다행히 쓰레기가 되지 않았다. 꾸준히 자산이 되어가고 있는게 신기할 뿐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니, 이젠 ‘글 잘 쓰는 것’이 목표가 되어가고 있다. 내 기준에서 ‘글 잘 쓰는 것’은 생각하는 바를 수려한 문체로 처음부터 끝까지 막히지 않고 써내려 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고, 공감을 얻어 함께 깨닫는 것. 이러한 면에서 나는 아직 멀었다. 그럼에도 글을 잘 쓰는 것에 대한 목마름은 여전하다.

재능으로 쓰지 말고,
재능이 생길 때까지!

이 말은 나에게 위로가 되면서도 힘든 여정을 예고한다.

나의 글이 쓰레기가 되지 않은 건 꾸준함의 산물이지만, 재능이 생길지는 미지수기 때문이다. 머리에 떠오르는 수많은 영감과 소재, 그리고 이야기들을 과연 내가 다 표현해낼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꾸준함으로는 턱도 없고, 지금보다 더 큰 재능이 생겨야 가능할 것으로 보여 걱정이 앞선다. 물론, 포기하지는 않겠다.

글을 쓰기 시작한 초기엔 ‘영감(靈感)’이 손가락을 움직였다. 하루에도 몇 개의 글들을 토해냈다. 아마도 묻혀있던 내면의 에너지가 분출하길 기다렸으리라. 그걸 모르고 살다, 쏟아지는 그것들을 보니 스스로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더불어 또 다른 삶의 목표, 취미, 비전이 생긴 것에 기쁘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욕심이 생겼다. ‘필력(筆力)’에 대한 목마름이다. 글을 잘 쓴다는 작가들의 책도 뒤적여 보고, 인상 깊은 문장을 따라 해 보기도 하며, ‘글잘법’에 대한 칼럼도 많이 읽었다. 그래서 글을 잘 쓰게 되었다는 건 왕자와 공주가 만나 평생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동화 속에나 있을 법한 일이다.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좋은 문장이 나왔다고 쳐도, 그 문장들이 구성하는 전체를 지탱할 수 없었다. 반대로 전체 구성이 좋아도 문장이나 표현이 풍부하지 못하면 밋밋했다.

독서와 사유(思惟) 그리고 경험

마침내 깨달은 건 글을 잘 쓰기 위해 필요한 건 ‘필력’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선 ‘필력’도 중요하지만, 자양분도 필요하고 그것을 곱씹어야 한다. 그리고 내 경험을 살려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독서와 사유 그리고 경험이다.

1. 독서


‘영감’으로 떠올린 소재는 나날이 줄었다. 그리고는 뭔지 모를 갈증이 몰려왔다. 이내 깨달았던 건, 독서의 부재였다. 쏟아내기만 하고, 섭취하지 않은 모양새였다. 응축된 ‘영감’은 분출되었지만, 다시 그것이 응축할 자양분이 필요했던 것이다.

‘영감’을 다시 모으고 응축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독서’다. 즉, 남의 글을 읽는 것.

피카소는 말했다.

“저급한 예술가들은 베낀다. 그러나 훌륭한 예술가들은 훔친다!”

독서가 왜 필요한지 깨달았다. 다른 사람의 생각, 지식, 세계관, 관점, 시야 그리고 느낌과 표현까지 볼 수 있는 독서는 최상의 선물이다. 부끄럽지만 독서를 좋아하지 않는 나였다. 하지만 글을 잘 쓰고 싶다는 바람에 서점에서 보내는 시간은 많아졌고, 책을 구매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커졌다. 빨리 읽어 치우려는 버릇도, 한 문장 한 문장 맘에 와 닿는 것을 밑줄 그어가며 읽다 보니 깨달음의 재미가 쏠쏠하다. 밑줄 그은 것들을 나중에 노트에 한 번 더 정리하면 정말로 피와 살이 되는 느낌이다.

2. 사유(思惟)


독서를 통해 뭔가를 얻었다면 그것을 잘 소화해야 한다. 나는 그것을 ‘사유’라 생각한다.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사유’에서 시작되었다. 너무 소비적으로만 사는 것 같아, 무어라도 생산하고픈 욕구를 사유를 통해 끄집어낸 것이다. 독서를 통해 얻으려는 것도 ‘사유’다. 피카소의 명언대로 다른 사람의 것을 읽고 베끼는 것이 아니라 훔쳐야 한다면, 그 둘의 차이는 ‘사유’로 갈릴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것은 자유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을 수 있다.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행위다. 무엇을 생각해야 한다는 강박보다는, 생각나는 것을 사유하는 것도 좋다. 가끔 난 ‘사유’가 어려우면 아무거나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의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그러다 보면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기억이나 영감이 떠오르기도 한다.

‘사유’하는 시간은 글쓰기를 하며 더 풍부해졌다. 예전엔 그저 스쳐 지나갔던 것들도 글의 소재로 바라보면 진지해진다. 이리저리 표현하려 노력하는 ‘사유’도 머리를 풍부하게 한다. ‘사유’하고 글 쓰고, 글 쓰니 ‘사유’하고. 또 독서를 통해 ‘사유’하고. 생각하면 할수록 자유는 더 커진다.

3. 경험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경험은 소중하다.

초라하게 보이는 직업도, 지겹기만 한 일상도, 이불킥을 날려야 하는 과거도. 모든 것이 소재가 되고, 독서와 사유를 통해 얻은 소재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준다. 우리는 우리의 경험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특별나 보이지 않고, 남의 그것이 더 커 보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삶은 편집본이다. 재밌게, 지루하지 않게 조각조각난 예고편과 같다. 우리가 그네들의 삶을 24시간 감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내 삶은 나와 24시간을 함께 한다. 길게 늘어진 재미없는 서사 같다.

내 경험이 독서와 사유를 통해 얻은 소재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은, 지겹게만 보이던 내 일상과 경험을 달리 볼 줄 아는 시야와 관점이다. 내 삶을 편집해보면 어떨까. 아니, 무편집본이라도 그 서사를 꿰어 의미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 내 경험과 삶을 이리도 보고 저리도 볼 줄 안다면, 나는 누구보다 풍부한 소재를 가지고 있는 존재가 된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선 ‘필력’은 기본이다. 그리고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이 독서, 사유, 그리고 경험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저 중 하나라도 부족하면 나는 좋은 글을 쓸 수 없을 것이다.

아직 그 정도가 미천하여 갈 길이 멀다. 그러나 감사한 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위의 것들을 앙망한다는 것이다. 갈구하고, 욕심내고, 가지거나 도달하려 노력한다. 내 삶을 달리 볼 줄 아는 시야도 생기고, 독서를 통해 얻는 것도 많으며 즐거운 생각이 많아졌다. 글쓰기 이전엔 누리지 못한 것들이다.

글을 쓰려 앉아도 써 내려가지 못하거나 좋은 소재를 생각하고도 글로 표현하지 못해 속상한 적도 많다. 괴로운 밤을 보낸 적도 여러 번. 그래서 노력해야 한다. 바라고 또 바라야 한다고 다짐한다. 다이어트하는 법을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듯이, 글 잘 쓰는 법을 알아도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족스럽지 못해도, 계속해서 글을 쓰려는 이유다. 재능이 생길 때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