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 계획을 접기까지

막연하게 유학이란 게 가고 싶었다. 난 한국에서 받은 교육들에 크게 실망하고 있었다. 내가 공부를 잘 하지 못했던 것은 둘째치고, 그래서 초중고 교육은 건너뛰고 보더라도, 갖은 노력 끝에 들어갔던 한국 최고의 예술대학중 하나에서도 3년간 너무나도 실망을 많이 했다. 중간에 스페인에 여행을 다녀오면서 더 그런 갈증과 갈망이 커졌다.

어찌됐든 공부에 대한 갈망이 적지 않았고 그 갈증이 해소되지 않았던 시점에서, 졸업을 앞두게 되자 이제 대학원을 갈까 생각을 했었다. 어렸을때야 학력 콤플렉스가 좀 있었지만, 그래서 특정 대학들은 막연히 내가 갈 수 없을거야, 라는 생각도 했었지만 한번 노력해서 뭔가 이뤄내본 경험은 사람의 목표치를 크게 향상시켰다. 뭐가 됐든간에 최고의 교육기관에 가야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최고라는 학교에 와서도 기대에 못미치는 시간들이 꽤 많았는데, 이제 학교를 졸업하고 더 상위기관에 가면서는 정말 최고 수준의 학교에 가면 갔지 그 밑으로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대학원에 가려고 했다. 웃기는 건 그냥 가볼까 생각을 해본것도 아니고 ‘가야겠다’ 고 생각하고 ‘가려고 했다’ 는 것이었다. 불과 몇 년 사이지만 그때는 그만큼 생각에 거침이 없었다. 서울대 심리학과 대학원에 진학하려는 이유는 별게 없었다. 그저 내가 공부하고 있는 분야인 ‘극작’에서는 더 배울 것이 없다고 느꼈으나, 대학원에 진학하면서는 내가 하려는 ‘연극’에 뭔가 더 확장성을 줄 수 있는 것을 배우고 싶었다. 그렇다고 내가 이제와서 연기를 하거나 연출을 학생 신분으로 그것도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었고 크게 의미도 없어보였다. 그러다 생각을 하게 된 게 막연히 한국에서 최고 대학이면 서울대, 서울대에서 내 예술세계에 확장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분야가 뭘까, 전공을 쭉 훑어보다보니 그나마 심리학? 이런 초등학생 마인드맵 하듯 뻗어나간 생각에 선택한 길이었다.

그러나 항상 문제는 마음먹은 이후에 나타난다는 게 문제였다.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대학원의 입학 컷은 굉장히 높았다. 사실 요구하는 조건을 보고서도 처음에는 그냥 그러려니 했다. 점수는 공부해서 따면 그만이고, 언어는 공부해서 늘리면 그만이고, 배경 상식도 공부해서 갖추면 그만인 부분이었다. 내가 원하는 건 최고수준의 교육기관에서 내 예술세계의 확장을 가져다줄 수 있는 최고수준의 교육을 받는 것이었으니 그딴 입학 컷 같은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러나 제일 문제는 그 다음이었는데, 입학컷을 찬찬히 살펴보다보니 가능은 하겠는데, 문제는 진짜 가능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였다. 어학, 학력, 기본적인 전공지식등을 갖추려면 적어도 2년에서 3년은 걸릴 것 같은데,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입학에 필요한 모든 배경을 다 갖추고 나서도 얘네가 나를 받아줄지 말지가 불분명한 것이었다. 대학원이 다 비슷하겠지만(나야 가본적이 없어서 모른다만) 거의가 동대학교, 그러니까 자기 학교의 학부에서 전공한 학생을 우선으로 선발해 받는 경우가 많았고, 서울대 심리학과 대학원의 경우는 그게 더 강했다. 뭣보다 동대학교 학부 출신이 아닌 학생의 경우는 해마다 1명씩만 받는데 그마저도 맘에 안들면 그냥 안받는다는 것이었다.

원어민 수준의 영어실력, 기타 배경 전공지식, 그리고 기타 대학원 입학에 필요한 시험 점수들을 찬찬히 보면서 슬슬 느낌이 오기 시작했다.

“여기 들어갈 노력이면 유학을 가도 세 번은 가겠는데?”

사실 지금와서 얘기지만 유학을 가겠다는 생각 자체는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었다.

더 높은 수준의 교육을 원함 -> 한국에서 최고 수준의 학교를 원함 -> 그러느니 유학을 가겠음 -> 유학 가자

이게 마인드맵의 최종 결과물이었다. 그렇게 내 유학 계획은 어느새 ‘결정’됐고, 난 진지하게 유학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시작은 일단 주변에 소문내는 것부터 시작했다. 한 석 달 정도 지나니 이제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내가 당연히 유학을 갈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물론 내 가족들도 그랬다. 비록 이게 지금은 부메랑으로 돌아와서 만나는 사람마다 ‘너 유학 언제 가니, 왜 아직 한국에 있니’ 라는 질문을 계속해서 받게 되지만…

사실 유학을 결정하고 나서도 문제는 발생했다. 일단 어느 나라로 갈 것인지가 문제였고, 뭘 공부할지가 문제였다. 어처구니 없어 보이지만 실제 내 상황이 이랬다. 유학을 가기로 일단 결정해놓고, 뭘 배울지, 어느 나라로 갈지는 생각도 안해본 상황. 동기는 그저 ‘최고수준의, 상위레벨의 교육을 받고 싶어서’

막연히 유럽을 생각했다. 유럽에서도 독일. 왜? 독일이 대학 교육은 최고니까! 단순하기 그지없는 생각이지만 정말 그런 과정을 거쳐서 내 첫 유학 후보군은 독일이 되었다. 실제로 독일 유학을 굉장히 많이 알아봤다. 뭣보다 독일은 세계 최고의 공연 예술 수준을 가지고 있고, 연극의 수준은 특히 높았기에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근데 이제 다음 문제는 ‘뭘 공부하냐’ 였는데… 예상외로 여기서 조금 걸리기 시작했다.

독일의 연극 수준은 세계 최고고, 독일로 유학을 가기로 결정했고, 유학의 동기는 세계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아서 연극 세계의 확장을 꾀함, 이면… 뭐 별로 고민할 것도 없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그게 호락호락하지가 않았다.

일단 내가 전공한 게 연출도, 연기도 아니고 ‘극작’ 이라는 게 가장 큰 걸림돌이었고, 그 다음은 내가 내 정체성을 단순한 연극인이 아닌 ‘극작가’로 설정하고 있다는 게 작은 걸림돌이었다. 그냥 가서 극작을 배우면 되는거 아니냐, 하는 갸우뚱거림에 대답하자면, 나는 지금도 마찬가지 생각이지만 ‘극작’으로는 더 배울 게 없다고 생각했다. 이제 ‘극작’으로는 읽고, 쓰고, 직접 실험하고 구현화하는 일만 남았지 특정 극작 작법을 또 다른 교육기관에 가서 배운다? 그것도 한국어로 글을 쓸 사람이 독일어를 배워가면서? 무의미했다. 진정으로. 건방진 생각이라고 비웃는 사람도 있겠지만 솔직히 글쓰기를 ‘누군가에게서’ 더 배울건 지금도 앞으로도 없다.

사실 서울대 대학원을 생각하면서 심리학을 생각한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연출? 연기? 내 길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하고싶은건 연극이고, 글을 쓰는 건데, 글쓰는 건 더 배울 게 없다. 내가 추구하는 연극 세계가 더 높은 차원이 되고자 하려면 뭘 배워야 할까? 독일이니까 브레히트 식 서사극? 근데 문제는 난 서사극 재미없는디…

생각이 여기서 막혀서 더 나아가지를 못했다. 막연히 독일 어학원과 유학원은 알아보고, 독일 예술 대학교들은 알아보고, 커리큘럼들은 이것저것 비교해보고 있는데 도무지 내가 진짜로 독일 가서 하고싶은 게 뭔지는 확신이 들지가 않았다. 단순히 학위만 따서 오는거? 뭐 그것도 나쁘진 않은 선택이었다. 이 판에서 유학다녀온 그것도 대학원 학위면 뭐 알아서 조아리는 수준이니까. 근데 그러느니 그냥 그 시절에 한국에서 연극을 더 하는 게 낫지 않나? 생각이 꼬리를 물었지만 답이 안나왔다.

그러다가 보게 된 것이었다. 명동 예술 극장에서, 베이징 국가 화극원의 작품 <리처드 3세>를.

경극 스타일로 연출한 쉐익스피어 작품 <리처드 3세>였는데, 난 이때 완전히 반해버리고 말았다. 그때 머릿속에서 확신이 들었다.

‘그래, 저거다, 저 스타일, 저 연극, 저게 갖고 싶다. 저걸 가지고 말거야.’

그때부터 바로 화극원에 대한 정보부터, 북경에 있는 중앙 희극 학원까지 일사천리로 알아보고다녔다. 전문학사로 졸업했기에 어차피 학사가 필요했던 시점에, 서울 디지털 대학교 중국학과로 입학해서 학사를 따게 된 것도 이때의 결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중국어나 중국학과는 사실 거들떠보지 않았겠지.

이제 사람들은 모두가 내가 1년 뒤에 중국으로 떠난다고 믿게 되었다.

아이러니하지만 바로 이 계기 때문에, 목적지와 공부하고자하는 것이 명확해진 시점에, 바로 그것이 유학 자체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화극원의 <리처드 3세>를 보고나서 ‘저거다, 저걸 갖고 싶다’ 고 생각하면서, 역으로 나는 ‘내가 재미를 느끼는 연극, 돈내고 보고싶은 연극, 하고싶은 연극, 추구하는 연극은 무엇일까?’ 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도달했다. 그 물음에 가장 근접한 답은 당연히 화극원이 보여준, 또 내가 중국으로 공부하러 가고 싶었던 ‘경극’ 이었지만, 근접한 답이지 정답은 아니었다. 난 ‘경극’의 높은 경지의 예술성과 스타일에 반한 것이지 ‘경극’ 을 그대로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갖고싶은 것은 엄밀히 말하면 경극의 예술성과 스타일이지 경극 그 자체가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이때부터 ‘내가 재미를 느끼는 연극, 돈내고 보고싶은 연극, 하고싶은 연극, 추구하는 연극’ 에 대한 답을 착실히 찾아갔다. 그리고 그것들을 나름대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배우들의 몸, 즉 피지컬을 적극 사용하고, 라이브 음악을 사용하며, 사운드와 동작이 비지 않고 몰아치도록, 기예와 서커스를 적절히 활용하면서, 대중들의 눈을 현혹시킬 정도로 재미있고, 처음부터 끝까지 연극적이며, 그것을 내가 쓴 이야기 안에서 풀어내는 것.

이런것들이 점차 정리되다 보니, 내가 어떤 연극을 봤을때도 그게 좋았으면 왜 좋았는지, 싫었으면 왜 싫었는지가 더 명확히 구분되었다.

싫은 연극들만 봤으면 유학에 대한 갈망이 더 커졌겠지만, 좋은 연극들을 자주 접하게 되면서 고민들이 늘어나갔다. 분명 내가 원하는, 내가 추구하는 연극들이 한국에도 있고, 한국의 연극인들도 만들어내고 있다. 그 사람들이 다 경극을 배워오거나 유학을 다녀와서 그런 연극을 하는 것은 아니다. 만일 내가 중국에 경극을 배우러가면 최소 1년에서 최대 5년인데, 그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배워야만 내가 추구하는 연극을 할 수 있는 것인가? 그게 꼭 필요한 일인가? 한국에서 연극을 하면서는 내가 추구하는 연극을 할 수 없는 가?

질문이 여기까지 미치자 이제 유학은 자연스레 ‘너무 돌아가는 길’ 임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유학을 아예 포기한 것은 아니다. 배우고 있는 중국어가 아까워서라도 어학연수 정도는 다녀오지 않을까 막연한 예상을 하고 있다. 나중에 나이를 먹고서라도 뭔가 배움의 갈증이 생긴다면, 혹은 정말 꼭 필요한 학위가 생긴다면 다녀올수 있을 것이다. 유학을 준비하면서 배우고 성장하게 된 부분도 분명히 있으니 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유학을 생각하면서 오히려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 더 분명히 알게 되었고, 거꾸로 유학 생각을 지금은 접어넣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유학보다는 다른, 또 많은 계획들을 세우고 있다. 내가 원하는 바를 돌아가지 않고 더 빠르게 이룰 수 있는 길을 찾아서. 어쩌면 계속 별 생각이 없었다면 유학을 지금쯤 떠났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랬다면 지금처럼 고민이나 답을 찾는 노력은 없었을 것 같다. 당장 유학가서 생활하기 바쁜데 뭔 깊은 고민이 있었을까.

결국 답은 본인에게서 찾게 되는 것 같다. 아직은 내게서 답을 찾아낼 수 있어서, 머리가 많이 굳지는 않은 나이인 것 같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