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과 안녕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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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평범한 인사. 누구나 그렇듯 ‘안녕?’이라는 말로 우리는 만났다. 초등학교 국어책 속 철수와 영희처럼, 초급 주니어 영어 17페이지 마이클과 제인의 첫 만남처럼. 적당한 어색함과 작은 손인사, 그리고 교과서적 웃음으로 건네는 ‘안녕?’은 첫 만남에 있어 최선의 선택이다.

사실 그보다 나은 인사를 생각하려해도 막상 마땅한 건 없다. 괜히 교과서에 실린 인사법이겠는가? 언어가 다를뿐 뉴욕에서도, 파리에서도, 그 옛날 영광의 로마와 심지어 아마존 산림지대, 아프간의 분쟁지역에서도 첫 인사는 언제나 ‘안녕?’임에 틀림없다. ‘안녕?’은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중 가장 효율적이자 보편적인 진리다.

만약 우리가 외계인과 첫 대면을 하는 날이 온다면 여러분은 무어라 인사하겠는가? ‘식사는 하셨어요?’ 그들의 식사시간이 언제인지도 모르면서? 아니면 ‘그동안 건강하셨습니까?’ 언제 본 사이라고? 무난히 ‘반갑습니다.’는 어떻냐고? 반갑습니다의 선행사는 ‘안녕하세요?’다. 안녕하세요? 또한 안녕?의 존칭어일 따름이고.

고로 인류의 시대는 ‘안녕?’ 의 시대라고 할 수 있겠다. 선사의 크로마뇽인부터 현재의 네티즌까지 ‘안녕?’은 인류를 지배해왔다.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악의 축’ 노스 코리아도 4자회담에서 혹은 6자이든 8자이든 어떤 회담에서든 ‘안녕?’이라는 인사부터 건네는 법.

‘안녕?’이 없다면 지구가 멈춘다 해도 이상 할 것이 없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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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역시 평범한 인사. 하지만 이번엔 물음표가 없다. 말줄임표로 치환된 물음표의 자리는 사랑이 있던 자리가 이별로 채워짐을 의미했다. 하지만 물음표만이 사랑을 의미하진 않는다. 마침표, 느낌표 혹은 물결무늬로 끝나는 ‘안녕., 안녕!,안녕~’도 내일의 물음표를 위한 훌륭한 인사이다.

문제는 말 줄임표다. 하나여야 할 점이 여섯개가 된 순간부터 내일의 물음표는 준비되지 않는다. 우리를 이어줬던 ‘안녕.’이 우리를 갈라놓을 줄이야. (지금 ‘안녕.’을 마침표로 쓰는 이유는 그것이 마침표의 경우 비로소 중립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말이 설레임과 서글픔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는 점에 그악스러웠다. 동시에 나는 ‘안녕.’의 위대함을 실감했다. ‘안녕.’은 이 세계의 실제적 지배자였다. 지금에서 나는 ‘안녕.’이 혹시 엘빈토플러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안녕?’으로 시작된 모든 것이 ‘안녕……’으로 끝나 버린다. ‘안녕?’으로 만나 평화의 악수를 하던 손길도 ‘안녕…..’ 하는 문장 부호와 억양의 변화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회담은 결렬되고 휴전은 전쟁이 되고 호의는 미움이 된다. ‘안녕?’하고 인사해 온 외계인이 돌연 ‘안녕……’이라 말한다면 그것은 지구침공을 의미하며 역사 속 수많은 번영의 제국이 사라진 것 또한 ‘안녕?’이라 해야 할 때 ‘안녕…..’이라고 해 버렸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죽는다면 영혼을 인도하기 위해 다가온 천사가 당신의 귀에 속삭이는 말을 잘 듣기 바란다.  달콤한 ‘안녕?’을 속삭인다면 당신은 천국에 갈 것이고 안타깝게도 ‘안녕……’하며 말 끝을 흐린다면 보나마나 지옥행이다. 당신의 희비는 ‘안녕?’과 안녕……’에 의해 엇갈린다. 당신의 인생도 그것에 의해 좌우되며 나아가 당신의 가족과 당신의 국가, 그리고 수 없는 당신이 모여사는 지구 역시 ‘안녕?’과 ‘안녕……’ 사이에 존립한다.

경고하건데 당신이 누구던 행복한 인생을 살고 싶다면 ‘안녕?’의 물음표가 토라지지 않도록 조심하라. 우리가 물음표의 안녕을 소중히 여겼을 때, 비로서 마지막 순간 천사는 ‘안녕?’ 하며 나긋한 인사를 건낼 것이고, 그제서야 우리는 사랑하는 이의 손을 쥔 채

마음 편히 ‘안녕……’을 말할 자격을 얻게 될 터이니.

 

필자. 연극감독, 칸투칸 프리터, 안창용

큐레이팅. 칸투칸 HRMP, 김종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