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이 필요하다

누구나 자란다. 시간이 지나면 다들 큰다. 왜소증 계열 환자들도 내면이 성장한다. 영원히 아이로 살아가는 뇌 관련 질병 환자들도 영혼이 성장한다. 추측 아닌 확신이다. 육체의 성장이 유독 표 나서 그렇지, 드러나지 않는 성장도 있다. 킬로그램과 센티미터는 편협한 지표다. 겉과 속이 다 크는 사람도 있고, 겉만 크고 속은 어린 사람도 있고, 그 반대도 있다. 속의 속에 영혼이 있다. 심장은 몸을 움직이지만 영혼은 사람을 움직인다. 뼈와 살로 이루어졌다 해서 다 사람일 수 없다. 살아있는 사람의 시간들을 생이라 부른다. 영혼은 인생의 심장이다. 종종 살아있되 삶이 멈춘 사람들을 본다. 소중한 걸 잃었거나 소중함을 모르거나. 경우는 달라도 둘 다 안타까운 처지다. 영혼을 잃어서 그렇다. 붙은 숨보다 혼이 먼저 죽을 수도 있다.

도입 말에 구체성을 더해보자. 영혼이 살아있고, 숨이 붙어있는 한 누구나 자란다. 속도의 차이일 뿐 시간과 경험에 비례해 다들큰다. 누구는 몸이 좀 더 빨리 크고, 누구는 생각이나 감성이 먼저 큰다. 공정한 비교를 위하려면 무형에도 단위를 부여해야 한다. 무엇보다 영혼이 자라야 사람 구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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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지오, 박재은, 강산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      

아프리카 속담 중 하나다. 아이는 홀로 자랄 수 없다. 부모 품 안에서만 클 수도 없다. 사람은 주변과 더불어 성장한다. 밥과 옷, 잠만 제공해도 몸은 큰다. 그것뿐이라면 부모의 헌신 하나로 족할 테지만, 영혼을 키우는 양분은 관심과 사랑이다. 아이는 성인이 될 때까지 부모의 터전인 마을에서 거의 살겠고, 그곳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 옆집 아주머니와 윗집 할머니, 가게 할아버지와 식당 아저씨, 학교 친구들과 선생님, 오가는 거리의 행인들이 모두 아이에게 영향을 끼친다. 아이와 함께 웃거나 울고, 때론 꾸짖거나 칭찬하고, 배우거나 가르치며 마을은 아이를 키워낸다. 비단 마을 사람뿐 아니라 마을의 자연과 사물 하나까지 아이를 보살핀다.

아이는 그렇게 주변과 상응하며 도덕과 윤리를 배우고 이치를 깨닫는다. 잘 자란 아이는 마을에 보탬이 되고, 제가 그리 컸듯 마을의 어린것들을 다시 길러낼 테다. 마을을 벗어나 새로운 터전에 자리를 잡는다 해도 그 또한 마을의 자랑이다. 마을이 기른 아이는 엇나가지 않는다. 어른 이전에 사람으로 자랐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아이를 올바르게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한 성인이 성장하는 데 온 도시가 필요하다.  

다 커도 더 자란다. 어느 정도 나이를 기준으로 성인을 가늠하지만 신체 성장을 중점으로 나눈 수치일 따름이다. 사람으로서의 성장은 어쩌면 성인 나이 시점부터 시작일는지 모른다. 마을이 준 성품을 바탕으로 마을 밖 세상과 부대끼기 시작한다. 마을은 친절했지만 도시는 일면 냉소적이다. 숱한 마을로부터 키워진 성인들이 도시로 모여든다. 번화로부터 번영을 누리기  위함이다. 각각 마을에겐 귀한 자식이겠지만 도시에겐 숱한 이방인 무리 중 하나일 따름. 도시는 적응할 시간을 빠듯하게 준다. 실수만큼 충분한 기회를 주지 않는다. 실패를 보듬어주지 않는다. 안 그래도 복작거려서 수시로 한 명씩 내쫓으려 한다.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성인은 더 성장해야 한다.

이젠 기다려서는 안 된다. 먼저 손 내밀고 관계 맺으려 애써야 한다. 옆집 이웃 얼굴도 잘 모르고 사는 도시 속에서 제 이름 기억해 줄 사람들을 만들어 나간다. 스스로 기회를 만들고 제 몫을 찾아야 한다. 마을은 아이에게 먼저 다가갈 준비가 된 곳이었다만, 도시는 다가오지 않는 자를 모른척한다. 하지만 적극성을 가진다면 도시에는 더 많은 기회가 열려있다. 마을에서 배운 것들은 큰 도움이 된다. 도시 역시 사람 사는 곳이기에 결국 진심과 성의가 통하기 마련. 중요한 건 끈기다. 적응하고 나면 온 도시가 한 성인을 키운다. 마을에선 할 수 없는 경험을 제공하고, 마을에서보다 훨씬 큰 기회를 제시한다. 도시에는 흐름이 있다. 소식은 빠르게 퍼지고 능력은 순식간에 인정받는다. 위기를 숱하게 이겨낸 성인에게 도시는 양분의 밭이 된다. 혹, 도시에 적응 못하고 물러선다 해도 상처받지 말라. 세상엔 수많은 도시가 있고, 어디엔가 한 성인의 자리는 반드시 준비되어 있다.

       

그러니까, 한 스타트 업이 성공하는 데 온 나라가 필요하다   

창업의 위기와 실패의 위험을 아무리 논해도, 스타트 업의 거품을 지적하고 우후죽순 도전을 우려해도, 그래도 스타트 업은 계속되어야 한다. 특히 대기업 중심 사회라면 더욱 필요하다. 본래 성공은 쉽게 오지 않는다. 하나의 성공신화 뒤 백 개의 실패사례가 있다고 어찌 그게 암흑인가? 마을이 키워낸 청년들이 도시를 겪으며 더 자라 스타트 업을 만든다. 스타트 업을 하며 또 성장한다. 성장은 멈추지 않는다. 그 스타트 업이 실패해도 경험치는 오른다. 다만, 스타트 업이 성공하기 위해선 지금보다 더 큰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지원과 제도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나라가 보듬고 국민이 격려해준다면 더 많은 스타트 업이 자리 잡을 수 있으리.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규모가 2조 원을 돌파했다. 하지만 설립 3년 차를 넘기는 스타트업이 별로 없다. 60% 정도가 그 안에 망한다. 10년 후 생존 비율은 10%가 채 되지 않는다. 이에, 스타트업의 이면과 허와 실을 짚는 분석들이 숱하게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제대로 도전해 본 사람이라면 안다. 이 정도면 절대 실망할 비율이 아니란 걸. 1년의 안정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요즘 시대 변화 속도에서 기존 기업들도 10년 굳건히 버티면 대단하단 소리를 듣는다. 스타트 업은 기반이 약할 수밖에 없고, 그럼에도 3년 후 40%가 살아남는다면 충분히 긍정적인 수치 아닐까? 스타트 업 생태 자체도 스타트 단계다.

현시대에 평생직장 없단 말은 고리타분할 정도고, 도시에도 일할 곳 마땅치 않다. 중소기업은 눈 낮춰 가는 곳이 아니다. 괜찮은 중소기업 문은 여느 대기업 못지않게 좁다. 정말 많이 눈을 낮추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안전과 건강을 담보로 일해야 할지 모른다. 아무 곳에서나 되는대로 일하는 게 근성은 아니잖은가? 밥 굶게 생기면 나가서 노가다라도 하라는 흔한 말이 있다. 이걸 이렇게 바꿀 수 있는 지원이 이루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정 다 못하겠으면 거 나가서 스타트 업이라도 하나 맹그러봐라.

물론, 우려의 상당 지분이 여기 있기도 하다. 생각 없이 창업하는 행태. 구태한 아이템으로 지원금이나 타 먹고 사라지는 얌체. 그래서 스타트 업 지원에도 마을과 도시, 나라의 단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사업 경험 없는 사람들이 어디 가서 그 경험을 쌓을 수 있겠나? 대다수 흙수저 들은 단 한 번에 실패에도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사업을 통해 사업을 배우고 취미처럼 창업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누구나 경영자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숱한 실패를 보듬을 스타트업의 작은 마을이 있으면 좋겠다. 거기서 성장한 창업자들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도록 스타트업의 유기적 도시가 있다면 좋겠다. 도시를 대표하는 스타트 업들이 나라 곳곳에 다시 마을을 지어준다면 참 좋겠다.

불황이 부른 불안이 사람들을 날카롭게 만들었다. 유독 도전에 고까운 시선과 실패를 질책하는 성향. 그런데 딱히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사업을 할 수도 있는 거다. 꿈을 잃은 청춘들이 그냥 뭐라도 해 보고자 스타트업을 차릴 수 있는 거다. 그 과정에서 엄청나게 많은 배움을 얻는다. 꿈이 생기기도 한다. 사업에 실패한 사람이 직장을 찾는 게 아니라, 사업하다가 적성을 깨달아서 취직할 수도 있다. 성장을 넘어 성숙한다. 실패로 영혼이 피폐해지는 환경이라면 바른 사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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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이 꼭 그럴듯해야 하나? 왜 스타트업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우려먼저 쏟아내는가? 검증 이전에 지원을 해주고, 하다 못해 취업 장려금처럼 일단 푼돈이라도 창업 경험금이 나오면 안 되는 걸까? 실패할 경우의 수를 읊어주기보다 잘 될 방향에 대한 아이디어를 하나라도 더해주면 도움이 될 텐데.

우선, 나라가 필요하다. 온 나라란 국민 모두를 뜻하고, 투표로 뽑은 국회의원들이 통과시킨 법안과 제도 모두를 지칭한다. 정서와 시선이 풍토를 만든다. 멋 모르고 사업하는 사람은 집안 거덜 낸다는 고리타분한 고정관념을 탈피하자.  더 많은 스타트 업이 성과를 내야 제도 개선과 발전의 여지라도 가질 수 있다. 이건 더 많은 실패가 필요하다는 얘기도 된다. 그래도 계속 할 수 있다면 잘 될 경우의 수는 늘어난다. 성공은 용기로부터 오기도 한다. 안 될 일도 격려 받으면 기적을 일굴 의지가 피어난다.

국회에 앉을 수 없는 다수 국민의 기여는 스타트 업을 응원하는 일이겠다. 수험생과 취준생들에게 보내는 조건 없는 응원처럼 말이다. 작은 성공에도 호들갑 떨며 반겨주고 큰 실패는 못 본 척 아무 말 말도록. 기업도 사람처럼 혼자 크지 못한다. 한 사람이 시작한 작은 회사가 잘 커서 열 사람의 회사가 되고, 나아가 백 사람을 품을 수도 있다. 그러려면 결국 온 세상이 필요하다.

누구나 자라고, 평생 큰다. 중학생부터 청년을 지나 중년, 노인들까지 성장을 겪는 중이다. 그들이 지금 도전하는 중이라면 영혼은 계속 자랄 수 있다. 무럭무럭.

필자. 연극감독, 칸투칸 프리터, 안창용

큐레이팅. 칸투칸 HRMP, 김종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