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09

세월호 100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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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도저히 쓰지 않을 수 없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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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에 두 개의 시간이 있다. 바다 밑바닥 세월이 멈춘 동안에도 땅 위의 세월은 진척 없이 흘렀다. 나는 오직 나의 시간에만 있었다. 배에 탄 누구 하나 나와 일면 없었고, 어쩌면 평생 거리에서라도 스쳐 지날 가능성마저 적은 사람들이었다. 완벽한 타인. 세월호의 비극이 실상 내 생활에 영향 미칠 구석은 없었다. 누가 얼마나 죽든 나와 얽힌 일이 아니라면 사는 데 문제 될 건 없다. 뭐가 어떻게 잘못되어가든 내가 연관된 일이 아니라서 피해 볼 것도 없다. 차가운 물 밑 세월이 영원히 멈춘대도 나는 그들의 시간을 살지 않는다.

그런데도 나는 내 세월이 졸졸 흐르는 게 무턱대고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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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박성호 군이 자신에게 보낸 편지를 보고 나 홀로 시를 썼더랬다.

[박성호 군 편지 기사] http://v.media.daum.net/v/20160305195402920

하느님을 따르겠다던 아이는

기어이 그 곁으로 떠났다.

하느님께 어여쁜 아이였지만

이리 빨리 부를 계획이 아니셨다.

세상에서 귀히 쓰이도록

아이를 위한 계획이 준비되어 있었거늘.

어찌하여 이 아이는 벌써 그 곁으로 갔단 말인가?

돌려보낼 수만 있다면,

그리하여 2년 전에 쓴 편지를

제가 쑥스러워하며 읽어 볼 수 있도록.

하느님조차 못하는 일이 있다는 걸

알아버렸을 때조차 아이는 기도하고 있었을게다.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도 누구도 원망치 않겠다던 아이.

아이의 너그러움을 갖지 못한 나는 원망으로 땅을 친다.

2년 후 제 모습을 그리며 설레었을 아이의 풋풋함과

삶의 모든 순간 늘 감사로 임하겠다는 아이의 다정함과

진중하게 제 소명을 고민하는 아이의 진중함이

여전히 편지에 남아있다.

받을 사람 없는 편지에

아이가 살아있다.

미안하다, 아이야.

나는 너의 하느님이 밉다.

하느님의 손을 빌려

그 큰 손아귀를 바다에 담가

통째로 세월을 꺼내고 싶었다.

하느님은 지켜보았고

악마들은 수를 썼다.

기적이란 걸 일으켜달라고

수없이 외쳤지만

간절함도 세월과 함께

바닥으로 꺼져버렸다.

희망을 삼켜버린 바다 위로

올라야 할 것은 오르지 않고

별 일 없이 해만 올랐다.

그럼에도 하느님께 기도한다.

부디, 그곳에서 잘 돌봐 달라고.

더는 추위라곤 영영 모르도록

천국의 여름에도 두꺼운 솜이불로 꽁꽁 싸매 달라고.

버릴 수도 부칠 수도 없는 편지 말들이

천진하고 해맑아 억장이 무너진다.

너는 편지를 받아야 했다.

너는 포옹을 받아야 했다.

굳건히 살아 올라와

너를 걱정하던 모든 이의 포옹을.

부디 잊지 않길.

그 아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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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았었다. 알량한 글 가닥으로 세월호 희생자들 뭐 대단히 생각하는 마냥 포장되는 게 두려웠다. 이 시를 쓰던 시점까지도 난 팽목 한 번 가 본 적 없었으니.

좀 느리고 둔한 사람이다, 난. 그래서 일면 방관적이다. 나 말고도 할 사람 있는 일에 잘 나서지 않는다. 새해 시작 부근에 맞이 글을 쓰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다. 여러 사람이 쓸 글이기 때문이다. 세월호에 대해 쓸 사람 많겠거니 싶어서 하고픈 말들을 그냥 내버려두었다. 무엇보다 내가 세월호에 뭐 하나 해 준 것도 없고, 실상 별 관련도 없는 사람인데 쓸 자격이 있나 싶었다.

리본을 달고 다니긴 한다. 종로 쪽에서 일이 잦은 탓에 광화문 광장에 자주 가는데, 그때마다 향을 올리고 희생자들 얼굴을 빤히 보다 오곤 했다. 숫기가 없어서 리본 만드는 부스에 들어가 말 한 번 걸어 보지도 못했다. 모금함에 주머니 속 푼 돈 몇 푼 던져 넣고 그 행동이 꼭 면죄부를 사려는 짓거리 같아 부리나케 도망 나오며 난 아무것도 한 게 없다고 되뇌었다.

숱한 자식들이 부모 곁을 영영 떠난 지 천일이 지날 동안 나는 두 목숨을 선물 받았다. 오직 내 핏줄 안위가 우선이었다. 나는 그저 남의 부모일 뿐, 타인의 자식을 위해 내 시간까지 쓸 여력은 없었다.

그럼에도 세월호 사건 천일이 되는 새해 초, 몇 날을 불면에 시달리다 이 글을 쓴다. 염치 없어 깊이 숨겼던 맘을 드러내고 싶다. 나는 세월호 아이들과 아무 관련 없는 사람이지만 그 녀석들의 부모라고. 희생된 어른들의 형제라고. 그들을 위해 아무것도 한 것 없지만 그들에 대해 글을 쓰고 싶다. 그래도 될 거라고 이번만은 염치없이 양해를 구해본다.

말했듯 템포가 느린 사람이라 촛불 정국에 다 늦게 참여했었다. 탄핵 가결 직후 집회. 사람이 많이 빠질 듯하여 나 같은 사람이라도 필요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날 중앙 무대에서 단원고 학생의 발언을 들을 수 있었다.

공부나 하지 그런델 무엇하러 가냐는 어른들을 향해 아이는 외쳤다. 공부를 더 잘 하고 싶어서 나왔다고. 교실에서 배운 정의가 과연 실제로도 행해지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고. 기억할 거라고 했다.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것들을. 또, 모두에게 기억해달라고 했다. 세월호를.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가든 각자의 삶에 충실하되 다만 알아달라고. 자신도 평생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비록 직접 새끼손가락을 맞댄 건 아니지만, 나도 그 자리에서 아이와 약속했다. 무엇하나 도움 준 적 없지만 잊지는 않겠다고. 멈춘 시간 속 희생자 가족들 억장이 무너지는 동안 흐르는 시간을 누리며 탄생의 기쁨에 환호했던 대가를 기억으로 치르겠다고. 내 핏줄이 이어지는 한 세월호의 기억을 유전자에 심을 수 있도록 대대손손 전하겠다고, 약속했다.

한번 더 염치없는 말을 하자면, 모두가 불의에 직접 맞서고 집회에 뛰어들어야 하는 건 아니다. 누군가는 제 자리를 지켜야 사회가 돌아간다. 불안한 시국에 성실히 주어진 일에 책임을  다하는 것도 훌륭한 전투다. 연애도 육아도 위대한 투쟁이다. 단지, 기억하고 알아만 준다면, 그러면 된다. 그거면 족하다.

세월호를 기억하자는 내 말에 남다른 소구점은 없다. 그저 지금까지 누군가 외쳐왔던 말과 같은 말을 하려고 한다. 나도 너무 하고 싶었던 말. 부끄러워 참았던 말. 부디, 세월호를 잊지 말아주세요.

세월호 합동 분향소에 문자메시지를 보내면 전광판에 내용이 나타난다. 이제 하루 다섯 통의 문자메시지도 오지 않는다고 한다.

#1111  

위 번호로 응원과 위로의 한 마디만. 아니면 그저 인사라도 한 줄 보내보면 어떨까? 통신 3 사가 무료로 문자 비용을 지원하니 하루 백 개를 보내도 될 법 한데.

문자를 보내고 나는 또 주춤한다. 이건 생색 낼 게 못 된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내가 한 일도, 고작 이 소소한 행위도 잘 한 일이라고. 업적은 못되도 없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약속했다. 기억하기로. 기억은 큰 힘을 지니고 있다. 잊지 않아야 되풀이 되지 않는다. 떠난 이를 다시 살릴 순 없더라도 그 이름들이 의미가 될 수 있게 만든다.

정유년, 새해는 반드시 세월호의 해, 세해가 될 수 있도록. 촛불 정국의 이정표는 결국 세월호를 향해야 한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바다 밑 세월이 멈춰있다면 무엇 하나 달라지는 게 없는 셈이다.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진 다음 단락 짓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정부 차원의 추모관 건립을 비롯하여 기억을 위한 노력이 사방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최소한의 도리다.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빛 바래선 안 될 세월이다. 이제 두 개의 시간이 하나로 흘러야 할 때다.

하나, 시간을 되돌릴 순 없다. 그게 분하다.

고작 이 정도 글밖에 못써 창피하다. 속에 끓는 것들이 많아 술술 풀어낼 줄 알았는데, 줄마다 막힌다. 매 단어가 벽이다. 말은 맘의 한 문단도 제대로 옮겨내지 못하는구나. 그럼에도, 무어라도 쓸 수밖에 없었다. 천일은 너무 긴 시간이다. 미안하다, 그냥,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