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을 감옥에 있어야 한다는건 어떤의미일까.

글쎄, 하루라도 감옥에 갇힌다는 걸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모르겠다. 그러나 감옥에 간다는 건 두 가지 이유 말고는 없겠지. 정말로 자기가 저지른 죄에 의해 벌을 받는 의미든, 아니면 그저 부당하게 갇히게 되든. 뭐 이유야 어쨌건간에 특정한 공간에 갇힌다는 것 자체는

꽤 끔찍한 형벌일 것이다. 어쩌면 고문일지도 모르겠다. 자유를 제한하는 것만큼 인간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없으니까. 그러고보니 가장 삶에서 감옥과 근접했던 때가 있기는 했었다. 바로 군대에 있던 시절. 군대를 감옥이랑 비교하면 어떨까, 솔직히 더 낫다고 해야할까 못하다고 해야할까. 밸런스가 너무 적절하다고 생각되는데? 군대 2년 vs 감옥 2년. 이정도면 글쎄… 솔직히 섣불리 선택을 못하겠다. 둘다 싫거든. 굳이 굳이 선택해야 한다면 그래도 한달에 8만원은 줬던 군대… 겠지만. 아, 선택을 하면서도 싫은 기분이 잔뜩 들었다. 예전에 누군가가 수기 형식으로 썼던 교도소에서의 경험을 담은 웹툰을 본 적이 있다. 뭐 절절하게 교도소에서의 삶이 얼마나 짜증나고 비참한지를 얘기하면서, 결론은 ‘니들은 교도소 가지 마라’ 였는데, 특이하게도 기억이 나는 에피소드가 딱 하나가 있다. 바로 교도소 별미 라는 에피소드. 교도소에서는 넣어준 사식으로 바깥의 음식을 먹거나, 혹은 밖에서 넣어준 돈으로 일정한 물품 및 식품들을 구매할 수가 있었는데, 그래서 매일 나오는 교도소밥에 질린 죄수들은 자신들끼리 온갖 지혜를 짜내어 교도소에서의 별미를 창조해냈다고 한다. 그중에 하나가 부식으로 나오는 마른 오징어를 그냥 먹으면 맛이 없으니, 콜라에 하루 담가서 불려놨다가 케찹과 마요네즈를 버무린 소스에 찍어먹었던 메뉴로, 그렇게 맛있었다고 한다. 오죽하면 교도소에서 나온 지금도 그 맛이 생각이 난다고. 뭐 그사람이 밖에서까지 그걸 만들어 먹었으리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볕도 들지 않고 난방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차가운 노란 장판 하나 깔린 교도소 바닥에서, 30초도 안돼서 발바닥이 시려워지는 그 방 한 칸에서, 각자의 사정을 가진 장정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콜라를 넘치지 않도록 용기에 붓고, 그 용기에 마른 오징어를 정성스레 담가 하루밤새 불린 뒤, 다같이 모여앉아 차가워진 발바닥과 귀들을 마주하고 다같이 나눠먹는 모습을 상상하면, 그 맛이 상상되어 미칠지경이긴 했다. 교도소에 가본적도 갈일도 가고싶지도 않은 나지만, 그 콜라에 불린 오징어를 케찹과 마요네즈를 듬뿍 찍어 먹고 싶은 기분이 들었으니. 사람은 자기가 선 위치에서 어떤 식으로든 지혜를 짜내게 되고, 그게 가장 절박하게 발휘되는 분야 중 하나가 먹을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 에피소드였다.

 

그런데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감옥에 20년 들어가 있어야 한다고 하면 어떤 기분일까. 담담할까 아니면 더 괴로울까. 상상이 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알기로는 굳이 권력이라는 한 분야로 좁히지 않는다 하더라도, 어떤 분야에서든 ‘정점’이라는 말을 붙일 정도의 위치에 올라갔던 사람들이라면 의외로 대범하고 의연한 법이다. 이건 경험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것은 아니다. 내 경험이래봤자 편협하고 주관적이니, 틀리지 말란 법도 없으니까. 다만 내가 겪어보기로, 보통 특정 위치에서 탑정도에 올라갔으면 경제적으로 풍족한 법이고, 경제적으로 풍족한 사람은 가방끈이 대체로 긴 편이고, 교육을 잘 받았으니 인성도 사실 좀 덜떨어진 부분이 있을지언정 ‘모난데’는 없는 게 보통이었다. 게다가 일단 한 분야의 정점에 올라선다는 것은 보통 사람의 포부와 야망 수준으로는 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애당초 성질머리가 더러운 것과는 별개로 그릇 자체는 큰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사람들이니 뭐 정점에 올라섰다가 한순간 몰락을 한다거나, 감옥에 간다고 해도 크게 동요하지는 않는 모습을 봐 왔다. 감옥에 간다고 해도 금방 나올 거라는 계산이 있을 것이고, 감옥에서 금방 나오지 못하더라도 아마 ‘자기 개발’이나 ‘좋은 경험’ 쯤으로 받아들이지 않을까. 근데 20년이라. 모르지, 우리는 초라하게 늙어가거나 꼬꾸라지는 모습을 바랄지도 모르겠지만 예상외의 인간적 성취나 성장을 이뤄낼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렇게 되면 그야말로 삶의 아이러니 아니겠는가. 모두가 고통과 무너짐을 바라지만 오히려 성장하고 성숙해진다면. 수많은 민주 투사들이 독재자들의 바람과는 달리 실제로는 성숙해져서 돌아왔고, 넬슨 만델라의 경우는 결국 위대한 승리마저 일궈내지 않았던가. 아이러니하게도 악당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20년 감옥형 뒤에 위대한 성인처럼 되어있다면, 그거는 어떤 의미로든 대중에 대한 최고의 복수이지 않을까. 영화 <밀양>에서, 자신이 용서하기도 전에 멋대로 ‘신’에게 구원받고 용서받았다는 범인의 말에 분노하는 전도연처럼. 착해진 악당에게 분노하는 마음.

 

대한민국 대통령의 임기는 5년 단임이다. 정권교체가 안된다고 하더라도 전임 대통령에 대한 그늘을 벗어나기 위해서 또는 전임 대통령의 측근의 힘을 제거하기 위해서라도 일종의 숙청은 필수다. 그것이 권력의 속성인듯이 말이다.

사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성군’들은 이 숙청을 통해 만들어져왔다. 아직도 왕정의 때가 묻어있는 전근대적인 사회이건만 공화국인 현대 한국에서도 숙청 없이는 권력을 제대로 쟁취하고 휘두르기가 힘이 드는데(그것이 긍정적인 방향이라 할지라도), 왕정인 과거에는 어떠했겠는가. 세종대왕이 ‘대왕’으로 불려질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 태종 이방원이 세종의 아내 쪽 집안, 즉 처가댁을 제노사이드에 가깝게 학살해버린 토대 위에 세워졌다. 형들이었던 효령 양녕 역시 허투루나마 권력에 도전하지 않았던 건 동생에 대한 사랑 이전에 생존에 대한 본능도 있었을 것이다. 태종 이방원의 이런 권력을 위한 학살은 세종때가 처음이 아니어서, 아버지 태조 이성계를 위해(이성계는 분노했지만) 정몽주를 비롯한 정적들을 과감히 철퇴로 대가리를 으스러뜨린 존재였다. 이방원이라는 학살자의 수많은 살인 위에서 태조, 태종, 세종 까지 3대에 이르는 조선의 건국초 치세가 이어질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지만 세종은 이런 토대 위에서 전제 왕권을 제대로, 또 긍정적으로 휘두를 수 있었다. 뭐 전제 왕조 시대에 뭐든지 긍정적이었단 법은 없지만. 참고로 세종은 본격적으로 노비 세습제를 시행한 첫 번째 왕으로, 세종때에 이르러서야 드디어 조선에서는 엄마가 노비면 딸도 노비, 엄마가 관비면 딸도 관비, 이렇게 대대로 착취당하는 시스템이 확립되게 되었다. 세종은 양반들의 대왕은 확실했던 것 같은데, 글쎄, 노비들에게도 대왕이었을까. 혹은 학살당했던 반대파 사람들에게는?

 

5년간 가장 높은 권력의 자리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면, 20년의 감옥생활을 감수할 수 있을까. 혹자는 해볼만하다 할 것이고, 또 혹자는 거부할 것이다. 당신은 어떤가?

나? 나라면 이 바보같은 질문이 일단 내게는 성립조차 안된다는 걸 말할 것이다. 나는 거의 매일 가장 높은 권력의 자리에서 중요한 의사를 결정하고 있다. 반백수생활이 3년째 이어지는데, 내 인생에서 오늘 뭐 할지 뭐 먹을지 만큼 중요한 의사 결정이 또 있겠는가. 뭐 이건 반 장난이다. 그런데 진지하게 얘기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연극을 할 때 연출을 하고, 작가를 하고, 배우도 해봤지만 사실 배우는 가장 높은 권력까진 아니었던 것 같고. 연출이나 작가는 어떻게 보면 거의 독재자에 가까운 권력을 가진다. 연출이 괜히 연출이고, 작가가 괜히 작가겠는가. 근데 그게 그리 행복하냐, 고 하면 전혀. 고통스럽기만 하지. 성추문으로 물의를 빚은 이윤택이나 오태석은 연출과 작가 이전에 ‘극단의 장’ 이라는 직책에 있었으니 나와는 비교할 대상이 못되고. 권력을 가진다는건 두가지 의미를 지니는데, 하나가 결과에 대한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가 사람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는 것이다. 대중들은 두 번째만 보고 권력이 달콤하다고 하지만, 내가 가져봤던 권력은 거의 첫 번째에만 해당하는 것들이라(그리고 두 번째에 해당하는 것은 의식적으로 멀리해왔던 탓에) 권력이란 말은 내게 곧 피곤함과도 같다. 극한의 스트레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권력이다. 두 번째 요소만을 권력으로 생각한다면 마냥 좋을 수도 있겠지만, 세상 사는 게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건 옛날부터 알고 있다. 첫 번째를 수반하지 않는 권력은 없다. 두 번째 힘으로 첫 번째를 은폐할 수는 있겠지만, 그래서 성공적으로 잘먹고 잘사는 악당들도 많고 많지만, 내 깜냥으로는 안되는 일이다. 나쁜짓도 해본놈들이나 하는 거더라고. 5년간 가장 높은 권력의 자리? 아마 나는 5년간 이것저것 챙겨먹기도 전에 성실히 일하다가 과로사할 거다. 죽은 뒤에 20년 감옥이라면 그건 나름대로 나쁘지 않을 듯 하다. 제삿날에는 콜라에 재운 오징어를 상에 올려줬으면.

 

생각해보면 그리 먼일만은 아니다. 누군가 그랬던가, 인생은 비스켓 상자와 같다고. 맛있는 조각을 먹고나면 반드시 맛없는 조각도 있는 법이다. 우리 소시민도 마찬가지일테다. 영광의 순간이 있으면 불행의 순간도 반드시 오게 마련이다. 가장 높은 영광과 가장 깊은 나락, 낮은 영광과 낮은 나락. 어떤 삶을 선택하든, 중요한것은 살아가는 동안 모두에게 평등하다는 것이다. 비록 출발선과 끝선은 많이 다를지라도,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는거, 이거 네 개만큼은 똑같다는 말이지.

 

우리네 인생도 죽음에 저당잡힌 계약직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인들이 신파극 보고 눈물 질질 짜고 죽어가는 엄마나 불치병이 나오는 드라마를 욕하면서도 오열하면서 보는건, 어쩌면 죽음을 너무 가까이에서 마주해왔던 지난 100년의 트라우마가 DNA에 박혀있기 때문은 아닐까. 한국인들만큼 죽음을 살갑게 느끼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 OECD 최고 자살율이 당당하게도 아직 1위인걸 보면, 극도로 현세지향적인 한국인들의 아이러니가 이렇게 또 느껴진다. 자살할 용기도 없고, 대단한 야망도 없는 나는, 오늘도 이렇게 그냥 살아간다. 감옥 갈 일만 없었으면, 하면서. 그러면서 감옥에서 먹는 콜라에 불린 오징어는 먹고싶다고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