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닐 때 선생님에게 들었던 이야기 중에서 가장 재수없다고 생각했던 것중에 하나가 바로 ‘보는 눈’ 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심미안’. 특히나 예술에 있어서는 ‘아름다움을 보는-알아보는, 꿰뚫어보는- 안목’ 으로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이하 ‘눈’으로 통칭하겠다.

그러니까 선생님이 한 말은 이거였다. ‘눈’ 이야말로 절대적으로 중요하고, 너희들이 길러야 할 덕목 중에 하나이다. 근데 이 ‘눈’이란 건 굉장히 길러내기가 힘든데, 이걸 기르는 방법은 ‘많이 보는 것’ 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많이 보지도 않았을 니네 풋내기들의 눈이래봤자 다 ‘후지고 썩은’ 것밖에 없다는 결론이었다.

음… 뭐 존경하는 선생님이긴 하지만 면전에서 니 ‘눈’이 후지다는데 기분이 안나쁠 사람은 없었다. 아마 그 교실에 앉아있는 모두가 그랬을 것이다. 하긴 예술을 전공하는 대학생이라고 해봤자 과제에 치이고 학교생활에 치이고 개인 제작에 치이다 보면, 정작 일반 4년제 대학교 학부생보다 과연 소설책이나 많이 읽을까 의문이다. 영화 연극으로 치면 뭐 말할 것도 없고. 게다가 우리학교는 안산에 있었기 때문에 서울 왔다갔다 하기도 너무 힘들었다. 실제로 학교 다니면서 1학년 동안에는 가장 불만이었던 게 전시회든 공연이든 보러 갈 시간과 여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문득, 근데 ‘눈’같은 게 뭐가 중요해?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해한다. 나도 그랬다. 솔직히 ‘심미안’ 같은 거 없어도 번듯한 직업 하나 얻어서 삼시세끼 배불리 먹고 가족들 건사하며 사는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 ‘심미안’ 좀 없다고 사는 데 특별한 불편함이나 차별을 받는 사람들을 본 적도 없다. 오히려 무던하기에 별 스트레스 없이 잘 사는 사람들을 더 많이 본 것 같다.

그런데, 놀랍게도 중요하다. 예술과 아무 관련이 없는 일반인들에게도 이 ‘눈’ 은 중요하다. 특히나 ‘심미안’은 꽤나 중요하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눈’이 점차로 개발된 사람은 세상을 한꺼풀 벗겨보는 재미를 가지게 된다. 그 말인즉슨 세상이 이래저래 끝에서 끝까지, 바닥깊은 곳에서부터 저 높은곳까지,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타인과 내가 어찌저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뭔 말인지 모르겠다고? 그냥 ‘편협해지지 않는다’ 정도의 장점이라고 보면 된다. 세상 살면서 수없이 많은 꼰대들을 겪어봤을 사람들이니 ‘편협’ 이라는 게 얼마나 극혐을 부르는 인성인지는 굳이 설명 안해도 될 것이다. 그 편협이 내 몸에 깃들지 않게 해주는 것이 ‘심미안’ 이라고 보면 된다.

헌데 왜? 이 심미안과 편협함이 도대체 뭔 상관이 있길래?

인터넷 자주 하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돌아다니는 그 짤방을 알 것이다. 소위 ‘현대미술이란 것의 수준’ 정도로 돌아다니는 짤일텐데, 미학자인 진중권씨가 개그맨 장동민씨가 들고나와 소개하는 현대 미술가의 작품을 꽤 고가로 책정했는데, 사실 알고보니 그 작품은 장동민씨가 즉석에서 아무렇게나 물감을 칠해댄 작품이었다는 것이었다. 쩔쩔매는 미학자 진중권씨의 표정과 더불어 통쾌한 듯 깔깔 웃어제끼는 장동민 씨의 표정에 사람들은 묘한 쾌감과 동시에 냉소적 감정을 느낀 듯 했다.

‘현대 미술이란 것들은 죄다 사기고, 웃기지도 않는 짓거리야!’

이런 분노에 동참하는 것까지는 이해하지만, 그게 도를 지나쳐서 하나의 인터넷 주류 담론이 형성되는 과정은 안타까움을 넘어서서 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현대미술이란 것이 지나치게 대중들과 유리된 것도 사실이지만, 사실 ‘아방가르드’ 는 ‘현대’에 예술을 하는 모든 예술가들의 숙명이나 마찬가지이고 이들이 앞서나가기로, 혹은 실험을 하기로 결정했을 때는 대중들과 어느정도 유리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들의 분노가 이런 ‘현대 미술’을 넘어서서 ‘현대 예술’에 대한 무조건적인 분노와 깔아뭉갬으로 들불처럼 번지기까지 할때는 좀 참담하기까지 했다. 아니 도대체 대한민국 사람들한테 이렇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열등과 분노’를 심어준 대한민국 교육과 사회 그리고 미술계는 뭐하는 곳이란 말인가.

‘현대 미술’ 이란 것이 우리 생활과 아무런 연관이 없어보이는 신선놀음 같아 보여도, 많은 사람들이 하등 쓸모없는 사기에 웃기지도 않는 짓거리라고 혐오하던 ‘현대 미술’ 은 사실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수많은 양식들의 토대가 되었다. 형태를 단순화하는 미니멀리즘은 하다못해 우리가 사용하는 스마트폰의 디자인에 영향을 줬고, 철근과 콘크리트와 유리를 사용하는 단순한 형태의 건축물들은 그 이전에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사용되었던 장식적인 양식의 건축물들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천지가 개벽한 수준이다. 영화의 포스터, 패션잡지의 이미지로 쓰이는 지금은 너무나도 익숙해서 이게 무슨 양식인가 싶은 수준인 인물들의 구도와 색채감각도, 처음으로 쓰이기 이전까지는 너무나도 생소했던 것들이다. 당장 멀리 갈 것도 없이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반 언저리의 그림들, 패션, 건축, 생활소품들을 보면 우리가 지금 굉장히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정말이다. 만일 자기가 쓰는 ‘아이폰’의 아름다운 디자인에 감성적으로 감동을 하며 감탄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있는데 ‘현대미술’에 대해서 그토록 냉소적이라면, 이것처럼 헛웃음이 나올 일은 어디 있겠는가. 그 ‘현대미술’ 이 없었다면 ‘아이폰’의 디자인은 존재하지조차 못했을 것인데.

사람들이 그저 사물과 똑같이 그리려고만 했다면 미술의 역사는 지금과 달랐겠지만, 안타깝게도 사진의 발명은 ‘미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으로 예술가들을 회귀시켰다. 그리고 그런 사진과의 경쟁에서 아예 다른 길을 택했던 수많은 천재들 덕분에 우리들이 누리는 생활상의 모든 ‘현대적인’ 디자인들이 탄생했다. 그 ‘현대미술’들이 없었다면 아이폰도 없었겠지만, 우리는 여전히 장식적인 상징물들이 가득한 건물들에서 살고 있을 것이고, 방마다 둥근 기둥과 서까래가 존재하는 다채로운 건물들에서 살아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네모 반듯한 성냥갑과 같은 건축물은 아마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조차도 현대 미술에 그닥 조예가 깊은 편은 아니지만, 역사를 알게 되고, 자주 보다보면, 보이는 것들이 생기는 법이다. 그러다보면 그 의미없어 보이는 추상화 중에서도 눈물이 나는 것들이 있는 반면, 하품이 나올 정도로 정말 지루한 작품도 자기 자신의 취향을 기준으로 나뉜다. 이런 기준조차 없는 사람들이 남의 취향을 멸시하거나 ‘교정’ 하려고 하는 폭력적인 편협성을 보통 드러낸다.

현대 미술에 대해서 어줍잖게도 몇마디 이렇게 주워섬길수 있었던 것은 아주 초보적이나마 ‘눈’이 생겼기 때문이다. 곰브리치의 <서양 미술사>를 완독하면서 첫장부터 끝장까지 수없이 실린 도록들을 역사별로 훑으면서 그림을 정말 수도없이 봐댔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눈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비록 실물로 보지 못한 그 도록들 안에서이지만 좋아하는 그림이란게 생겼고, 좋아하는 작가가 생기기도 하는 법이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나서 가장 통탄스러웠던 것이, 이 책을 읽기 전에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다녀온 일이었다. 난 루브르 박물관의 그 수많은 걸작들을 주마등 훑듯이 슥 훑어댔고, 어쨌거나 다 보기는 봤으나 기억에 남는건 왼손 새끼손톱만한 크기의 모나리자를 인파의 저 멀리에서 봤던 기억이었다.

연극도 마찬가지였다. 전공이 연극이고, 배운 게 연극이고, 하는 게 연극인데도, 연극을 자주 보지 않았다. 그놈의 안산이라는 지역 핑계도 있었고, 뭣보다 그저 예술대학을 다닌다는 허세에 빠져서 열심히 ‘보러다니지를’ 않았다. 부끄럽게도 정말 열심히 연극을 보러다니기 시작한건 졸업하기 1년 전부터였다. 2년에 휴학 2년까지 4년을 허송세월하고 마지막에야 정신을 차려서 연극을 보러다니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늦게 연극을 보러다녔던 만큼, 정말 기를 쓰고 연극을 보려고 노력했다.

나는 연극을 하는것만큼이나 보는 게 중요하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 보는 눈이 없으니 뭐가 수준높은지, 뭐가 수준낮은지를 알수가 없었다. 내가 하는게 수준이 높은 건지 낮은 건지도 알수가 없었다. 내가 어떤 연극을 보는걸 좋아하는지 내 취향도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애초에 보러다니지를 않았으니 처음에는 취향이 없었다고 하는 게 더 맞는 이야기일 것이었다. 자기가 연극 취향이 없으니, 자기가 만드는 연극에 어떤 기본적인 확신같은게 있을 리가 없었다. 취향이 확고하면 적어도 확신은 있는데, 내가 만드는 연극들은 전부 이를테면 ‘무한대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철없는 작품들이었다. 말이야 번드르르하지, 까놓고 말하면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자기 취향이라곤 없는 줏대없는 작품들이었다.

그런 세월이, 그렇게 만들었던 연극들이 너무 부끄러워서, 정말 시간을 내서 연극을 보러다녔다. 좋은 극장에서 하는 좋은 작품들은 다 보러 다녔고, 해외에서 공연팀이 내한한다고 하면 어떻게든 보러갔다.

몇년전 광주 아시아 문화 센터가 개관했을 때, <해변의 아인슈타인>을 봤을 때가 그랬고, 명동에도 베세토 연극제가 열려서 존경하던 히라타 오리자 선생의 <달의 곶>을 보러갔을 때가 그랬다. 베이징 국가 화극원의 경극으로 하는 쉐익스피어 <리처드 3세>를 봤을 때가 그러했다.

지난 주말에는 베세토 연극제가 다시 중국과 일본을 돌아 한국에서 개최되었다는 소식에, 다시 몇 년만에 광주 아시아 문화 센터로 향했다. 중국의 소설가 루쉰의 <검을 벼리는 이야기>를 일본의 BIRD theatre에서 공연하는 작품을 하나, 쉐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중국의 휘주 휘극경극원에서 휘극스타일로 공연하는 작품을 봤다.

예전에는 그저 해외 작품에 눈이 돌아가 사대주의에 가까운 극찬을 공연평으로 써놨겠지만, 공연을 보러다닌지 4년이 넘어가니 이제 나도 아주 조금은 ‘눈’ 이 생긴 듯 하다. 예전만큼 해외 공연 자체를 봤다는 것에 대한 감격이 덜한 것은 아쉽지만, 내가 이 공연을 보며 무엇이 지루하고, 무엇이 실망스럽고, 또 내가 재밌어 하고 빼먹을만한 부분은 무엇인지가 명확히 보인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광주에까지 가서 공연을 2탕이나 보면서 실망스러운 감상을 했다는 것이, 생각보다는 더 즐거운 일이 된 것이다.

얼마전 나는 개그맨 김 모씨가 케이블 방송에 나와 “나는 그냥 동성애자가 싫어요.” 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더 경악했던 건 ‘그 발언’ 자체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김 씨의 태도와, 그런 김 씨를 응원하는 수많은 네티즌들의 반응이었다. 싫은 건 싫다고 말 할 수 있어야 된다고 하지만, 사실 그 발언이 싫은 걸 넘어서서 이 사회에 소수자가 발붙일 곳을 없애버리겠다는 지점을 향하고 있었기에 문제가 된다는걸, 그 사람들은 알고 있었을까. 동성애자들에게 끝간데 없는 분노와 증오를 아무렇지 않게 담담하게 터뜨리는 사람들을 보며, ‘현대미술’에 갈곳없는 분노를 쏟아내는 사람들이 겹쳐보였다.

‘눈’이란 것은, ‘심미안’은 그래서 중요하다. ‘눈’이 개발된 사람은 세상을 한꺼풀 벗겨보게 된다. 그 말인즉슨 세상이 이래저래 끝에서 끝까지, 바닥깊은 곳에서부터 저 높은곳까지,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타인과 내가 어찌저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편협해지지 않게 해준다. 스스로의 편협을 당당하게 여기지 말고 부끄러워 하고 싶다면, 그래서 그 편협을 깎아내고 싶다면, 오늘부터라도 ‘눈’을 키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