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業)에 관하여

그건 네 업이야.

나는 공감의 정도나 깊이가 보통보다는 꽤 강해서, 감정적이고 눈물도 많은 편이다. 하지만 동시에 어떤 점에 대해선 매정하리만치 이성적이고 냉정해서 종종 “그건 그 사람 업(業)이지. 본인이 감당해낼 일이지. 어쩔 수 없어.”라는 말을 잘도 해댄다. 생판 남에게는 물론이고 친구나 애인, 심지어는 가족에게도 비슷한 말을 하곤 했다. “정말 힘들겠지만, 그건 니 업이야.”라는 식으로. 인간의 이중성, 모순성은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이렇게 스스로를 조금만 살펴보면 깜짝 놀랄 만한 이중성이 드러난다.

업을 영어로는 카르마라고 한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미래의 어떤 결과를 낳는 원인, 심신으로 짓는 선악의 소행’ 정도가 되겠다. 그러니까 내가 남의 일이라고 쉽게 내뱉었던 그 말의 의미는 “사람은 자신이 한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니까.” 정도가 될 것이다. 어느 쪽으로 읽어도 매정하기 짝이 없다. “그건 니 업이지만, 정말 힘들겠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을 텐데, 아직 나는 그 정도로 마음이 넓진 못한가 보다.

작업, 직업, 졸업 그리고

그런데 우리는 사실 ‘업’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딱히 의식하지 않은 채로 자주 써댄다. 가령 ‘작업(作業)’ 같은 단어처럼. 작업은 범박하게는 ‘해야 할 일’ 또는 ‘예술가들이 작품을 만들어내는 과정’, 속되게는 ‘이성의 마음을 훔치려는 빤히 속 보이는 짓’까지 다양하게 활용된다. 하지만 그 속에 ‘카르마로서의 업’을 의식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작업을 뜻풀이 그대로 이해하면 ‘업을 짓다’ 정도가 된다. 이 글을 쓰려고 작정한 뒤 곰곰이 되짚어보니 나는 다른 일을 할 때는 그 일의 종류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반면에(운동을 한다, 화장실 문고리를 고친다, 청소를 한다, 등등) 꼭 글을 쓸 때만 ‘작업한다’고 말해왔던 것 같다. 글을 쓰며 살겠다고 다짐한 순간부터, 은연중에 나는 알아차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게 내 업을 짓는 일이라는 걸.

그런 점에서 ‘직업(職業)’이라는 단어도 새삼 생경하게 와 닿는다. 직업을 뜻풀이 그대로 이해하면 ‘어떤 업을 맡다.’ 정도가 된다. 작업과 직업은 얼핏 비슷한 뜻인 것 같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작업은 그저 하는 것이지만, 직업은 생계를 위해 하는 일을 의미한다. 현실적으로 말해, 작업이 직업이 되기 위해서는 돈을 벌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내게 직업이 무어냐고 물으면 늘 대답이 궁했다. 수십 개의 갖가지 아르바이트는 직업이라 말하기엔 어설픈 것 같고, 그나마 소속된 곳이 있었던 학원 강사는 관뒀으니까. 프리랜서라는 단어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여전히 의문스러운 대답이긴 하지만, 아무튼 대답할 거리는 된다. 글 쓰는 작업이, 직업이 될 수 있을까. 온전히 내 생계를 책임지는 작업을 해낼 수 있을까. 이렇게 말하고 나니까, 나도 직업을 갖고 싶다.

내가 처음 ‘업(業)’이라는 단어에 대해 새삼스럽게 느낀 것은 대학 졸업식 날이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3번의 졸업을 거쳤는데(유치원은 중퇴(!?)했기 때문에 졸업한 적이 없다) 대학 졸업은 유난히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다음이 예정되지 않은 졸업은 처음이었다. 초등학교 졸업하면 중학교, 중학교 다음엔 고등학교 하는 식으로 늘 졸업 이후엔 설레는 시작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대학 졸업은 그렇지 않았다. 그때 깨달았다. 졸업이 졸업(卒業)이라는 것을. 어떤 업을 끝내는 것, 혹은 어떤 업이 끝나버리는 것. 그것도 돌연히, 별안간. 나는 진정한 의미의 졸업을 처음 겪었던 것이다.

내 삼십 대의 업(業)

업의 차원에서 본다면, 이제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뭔가 새롭게 개업(開業) 해야 한다. 진짜 가게를 차린다는 의미가 아니더라도, 뭔가 그럴듯한 업을 열고 시작해야 한다. 작업을 하든, 그 작업이 직업이 되든, 어느 날엔 그 모든 업들이 별안간 졸업해버리든 간에 그 시작에는 개업이 있을 테니까. 서른의 한 해도 이제 두 달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 아무튼 오늘도, ‘업’이라는 단어에 사로잡혀 이런 작업만 해댔다. 내 삼십 대의 날들엔 어떤 개업을 해낼 것인가. 그래 이것도 결국은 다 나의 업일 것이다. 내가 남에게 매정히 했던 말처럼, 내가 책임지고 견뎌내야 할 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