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는 일을 좋아한다는 것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없다고 할 순 없겠지만, 많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간혹, 브런치나 SNS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산다는 것’과 같은 제목의 글을 마주하기도 한다. 물론, 그것은 언제나 ‘좋아하는 일’도 ‘일’이라는 걸로 귀결된다.

 

우리는 흔히 연예인이나 작사가, 운동선수,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을 보면 하고 싶은 일 하며 큰돈 번다고 생각한다. 원래 그렇다. 그들이 하는 우리와 다르지 않은 노력, 회의(懷疑), 좌절, 걱정은 안중에도 없다.

다른 사람의 삶은 잘 짜인 ‘편집컷’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그들의 삶을 띄엄띄엄 보고는 행복할 것이라 결론짓는다. 그리고 하기 싫은 일을 꾸역꾸역 해내는 내 삶을 지루한 ‘롱테이크컷’으로 치부하고 만다.

 

거두절미하고 반대로 생각해봤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겠다는 생각보다,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해 보는 건 어떨까. 무리다. 쉽지 않다. ‘일’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순간 숨을 쉬는 모든 존재는 고달프기 때문이다. 직장인으로서 반복되는 하루도 그렇고, 지리멸렬한 업무와 사람 관계도 그렇다. 도대체 어느 한동안은 평온하거나 행복할 겨를을 주지 않는다. 그러니 월급쟁이로서의 삶은 쉽지 않으며 고달프다.

 

그런데, 그래서 뭐? 그럼 그냥 그만둘까? 그냥 죽을까?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하도록 노력해보는 건 무의미한 일이 아니다. 툴툴대고 불평해도, 결국 직장인은 일을 하며 월급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 ‘일’은 정말 언젠가는 쓸데가 있다.

 

나는 솔직히 직장인으로서 내 ‘일’이 힘들고 고되다.

그런데, 분명 재미있을 때나 보람 그리고 의미가 있을 때가 있다. 매일이 그러면 좋겠지만, 그러면 희소성이 떨어진다. 그것들의 소중함을 모를 것이다. 그것을 알게 하기 위해 신은 사람의 인생을 이렇게 설계했는지도 모른다. 심보가 고약하다 생각되지만, 어쩌겠는가. 그것에 대한 시비는 생을 마감하고 가려야 한다.

 

직장 생활을 조금 하다 보면, 어렸을 땐 힘들던 일들도 잘 받아들이는 의연함이 생긴다.

그리고 조금씩, 그 일을 좋아하게 되는 뻔뻔함도 생긴다. 말이 뻔뻔함이지, 사실은 깨달음이다. 직장인은 ‘일’이라는 그 짧은 단어에도 경기를 일으키곤 하지만, 솔직히 까놓고 이야기하면 ‘일’이 없으면 직장인은 의미가 없다. 월급이 나오지 않고, 자신의 경력도 쌓을 수 없다. 그러니 ‘일’이란 건 생각보다 소중한 존재다.

 

상사의 다그침, 시간에 쫓기거나 과중하게 몰려드는 업무. 타 부서와의 갈등. ‘일’이 싫어지는 이유다. 하지만 돌아보면 ‘일’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 ‘일’을 해나가는 과정 중에 생기는 갈등이 직장인을 자꾸만 ‘일’과 멀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안되면 어떡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등의 두려움도 한몫한다.

 

그런 것들을 제외하고 보면, ‘일’ 자체는 좋아할 구석이 많다.

처음부터 쉽게 되지 않을 일을 풀어나가며 얻는 배움. 실패를 통해 얻는 다음 기회로의 깨달음. 일을 통해 옥석을 가리게 되는 인간관계. 더불어, 내가 하는 일의 부분을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을 하는 것 같지만 큰 그림으로 보면 무언가 대단한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된다.

누군가에게 물어보면 나는 이 하찮은 벽돌이나 쌓고 있다고 말하지만, 누군가에게 물어보면 나는 집을 짓고 있다고 말한다. 아름다운 동화로운 삶을 살자는 게 아니다. 거기에 있는 ‘관점’의 차이를 알아채자는 것이다.

 

실제로, 나는 때로 그저 윗사람 입맛에 맞는 보고서나 쓰고, 결론 없는 회의를 하는 힘없는 월급쟁이로 치부할 때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내가 기획하고 실행하여 나타나는 성과를 보면 여러 사람을 먹여 살리는 소중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부속품 같지만, 내가 하지 않으면 분명 안 되는 일도 있다. 가끔, 강의를 하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그토록 하고 싶어 하는 후배들을 보면, 어쩐지 의연해진다. 그리고 조망하게 된다. 아, 내가 이런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었구나. 벽돌만 쌓는다고 불평하고 있었는데, 내가 집을 짓고 있었다니. 배움은 어디에서나 온다.

 

자주 보면, 자세히 보면, 때론 멀리서 보면 누군가를 사랑할 확률이 높다.

‘일’도 그렇다. 반복해서 하다 보면 노하우를 알고 자신감이 생긴다. 디테일하게 들여다보면 그동안 알지 못했던 재밌는 요소들도 있다. 가끔 멀리서 조망해보면, 큰 개념으로 내가 하는 일이 정리되기도 한다. 그럼, 깨닫지 못했던 ‘의미’가 튀어나온다.

 

하는 일을 좋아해 보자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가 머뭇거려진다.

그냥, 나에게나 하려 한다. 예전엔 시간에 쫓겨 일할 때 소화도 안되고 힘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요즘은 그 스릴을 즐기는 변태로운(?) 나를 발견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무언가 성취를 하고 나면, 그것도 금방 지나갈 것을 알고 다음 일에 매진한다. 그러다 보니, 지금 하는 일이 좋아지기도 한다. 물론, 대부분은 좋지 않다. 원래 좋아하는 마음도 굴곡은 있기 마련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언제까지나 한결 같이 좋아할 수 있을까.

 

사랑까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좋아하는 것까지만 해보려 한다. 언젠가는 쓸모 있을 것이고, 나를 성장시켜 주며, 가장 중요한 ‘월급’이 나오는 ‘일’이니. ‘직업’에서 ‘직’자를 빼면 꽤 근사해진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은 나의 ‘업(業)’. 상대방을 더 좋아 하려면,  내 마음의 관점을 바꾸어보는 것도 방법이다.

 

일요일 밤.

월요일을 앞두고 마음에 최면을 걸다가 글을 쓴다.

 

나는 내 ‘일’을, 내가 하는 ‘일’을 사랑… 아니, 좋아한다! 레드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