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념무상(無念無想)

 

각박하다.

그것이 무슨 뜻인지, 무얼 빗대어 표현하려는지 밝히지 않아도 대략 감이 온다. 아무래도 우리네 ‘삶’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인정이 없고 모진 세상을,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학생은 학생대로, 직장인은 직장인대로, 사업가는 사업가대로, 노인은 노인대로. 각자의 각박함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각박함 속에서 희망이라는 한 줄기 빛을 찾아 헤맨다.

그런데, 그 각박함 속에서도 가끔은 ‘무념무상’이 가능한 때가 있다.

운동을 하거나, 좋아하는 것에 몰두하거나 아니면 그냥 말 그대로 멍 때리고 있을 때다. 이 ‘무념무상’의 상태는 꽤 매력적이다. 마음의 공간이 새로이 열리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기적’에 가깝다. 각박하게 사느라 한 치의 틈도 보여주지 않을 것 같던 삶의 희망은, 그 틈 사이로 고개를 빼꼼히 들이민다. 그것이 고개를 들이밀지 않아도, 내가 그 틈 속을 후벼 파고 들어가 삶의 희망을 찾아내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그랬다.

무언가 대단한 결심을 하거나, 삶의 패턴이 바뀌었을 땐 어김없이 ‘무념무상’을 거친 뒤였다. 잠자리에 들어 수많은 생각을 정리하고 몽롱할 때, 일 년에 몇 번 하지 않는 조깅을 할 때, 맛있는 것을 먹고 유명한 것을 보는 여행지보단 그곳으로 가는 지루한 운전석이나 비행기에서. 글을 쓰자고 한 결심, 책을 내자고 한 바람, 본업에 충실하자고 한 다짐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전하고자 한 실천.

명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려 할 때 떠오르는 생각은 ‘아이디어’와 ‘결심’을 동반한다.

평소에도 이것저것을 하면 좋겠단 생각을 하지만, 실천의 정도가 다르다. ‘무념무상’의 이후에 떠오르는 그것들은 기어이 나를 움직인다. 마음 저 깊은 골짜기에서, 제대로 살기 위해 가야 할 길을 알려주는 또 다른 나의 목소리어서 일까. 각박한 삶 속에서 나지막하던 그것이 ‘무념무상’의 상태에 이르러 내 귓가를 때린 순간. 작은 기적은 일상 속에서 꽃을 피운다.

각박한 삶은 우리에게 ‘무념무상’의 기회를 쉬이 주지 않는다.

그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무념무상’을 일주일에 몇 번해야겠다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그보단,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나지막한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려 노력하다 보면, ‘무념무상’을 좀 더 자주 맞이할 수 있다. 또는, 깨달음을 억지로 얻으려 하기보단 지금의 나와 주변을 그대로 받아들여보는 것도 좋겠다.

‘무념무상’에 좀 더 자주 다가가기 위해 나는, 내가 써 내려간 글을 항상 마음속에 간직해야겠다. 각박한 삶 속에서, 마음의 공간을 새로이 열리는 기적을 좀 더 많이 맞이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