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경영학은 잡학 중에 상잡학이다. 글쓴이가 한 말이 아니라, 실제 어느 경영학 교수님이 한 말이다. 이는 경영학 비하 발언이라기보다 그만큼 경영에 필요한 여러가지 요소들을 한데 묶어놓은 아주 복잡한 학문이라는 메타포이기도 하다. 실제로 경영학은 조직관리, 인사관리, 수요관리, 공급관리 등 다양한 분야를 망라한다. 그래서 경영학은 하나의 단독적인 학문이라기 보다 경영 전반에 필요한 요소를 집합시킨 시스템에 가깝다.

    최근에 와서 경영학은 경영학이라는 이름 아래 다양한 분과과목들이 파생되었다. 그것은 경영환경이 더 복잡해지고, 미래예측과 합리성을 따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경영학이라는 집합적 학문은 조금씩 학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최근 경영학 경향에 있어, 그들의 학문적 정체성 확립을 위해 더욱 공고히 하는 영역은 어떤 영역일까. 그건 바로 ‘리더십’과 관련된 분야다. 많은 경영기획자들이나 마케터, 컨설턴트들 또한 바로 이 부분을 집요하게 파고 든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컨설턴트들과 마케터들은 ‘리더십’ 과 관련한 책들을 써내려 가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경영전략 또한 결국은 거시적 관점에서 ‘리더의 역할’을 강조하고 ‘리더의 관점’을 확장시키는 데 주력한다. 여기서 말하는 리더는 단순히 회사 CEO가 아닌 단 한명의 개인까지도 포함되는 포괄적 범위다.

    이런 지점에서 우리는 제자백가의 사상들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제자백가는 말 그대로 ‘여러 스승들과 많은 학파’를 말한다. 제자백가의 수많은 사상가들은 춘추전국시대 국가경영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제후들의 질문에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다닌 사람들이다. 지금으로 치면, 국가경영 컨설턴트들이었는데, 이들이 가장 크게 내세운 건 바로 위정자들의 리더십이었다. 어떤 관점으로 인간을 바라볼 것인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백성들을 대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열띤 토론과 논쟁은 300여년 동안 지속되었다.

    춘추전국시대의 위정자들은 민심을 먹고 살았다.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는 역사의 진리이기도 하다. 고대국가가 민심을 먹고 사는데 반해, 현대 기업은 고객들의 ‘로열티’를 먹고 산다는 정도로 시대가 변했을 뿐이다. 그래서 제자백가가 말하는 백성은 피지배자임과 동시에 현대적 관점에서는 고객이다. 유비가 조조를 피해 강하로 떠날때, 수많은 백성들 또한 유비를 쫓아왔던 일화를 생각해보라. 경영자가 사람을 선택할 수 있지만, 사람들 또한 경영자를 선택할 수 있다.

    현대 경영학에서 고객은 내부고객인 직원을 모두 포함한다. 그래서 외부고객과 내부고객 구분 없이 이들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잘 관리하여 높은 생산성을 유지하고 좋은 경영효과를 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연구한다. 2,000년 전, 기업은 아니었지만 공자, 노자를 비롯한 수많은 사상가들이 이를 연구했다. 물론 국가경영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이는 현대 사기업에도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그래서 그들을 현대로 소환해 컨설턴트로 환생시킨다면 과연 어떤 주장을 할까 재미난 상상을 해보았다.

    다들 알겠지만 공자의 ‘인(인)’사상은 결국 사랑하라는 말이다. 이는 인간을 목적으로 대하지 말라는 칸트의 사상과도 맞닿아 있다. 고객들과 직원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경영을 하면 ‘패자’가 될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들을 계승한 맹자와 순자에서 주목할 점은 바로 성선설과 성악설의 대립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선한가, 악한가를 두고 2,000여년 전 두 학자는 치열한 대립을 했다. 이는 마치 맥그리거의 X, Y 이론을 보는 듯하다. 본래 게으른 X형 인간과 자진하여 책임을 지려한다는 Y이론의 철학적 본질과 유사하다.

    맹자가 환생한다면 현대경영자들에게 이런 말을 할 것이다. 측은지심을 가지시오. CEO는 ‘인’과 측은지심으로 고객들과 직원들에게 정직하고 제대로된 분배를 하시오. 순자였다면 어땠을까. 그래서 인간은 끝없는 수양과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묵자는 어떠한가, 수레공 출신의 비천한 노동자, 지금으로 치면 노동조합위원장 정도의 파워를 가진 엔지니어였다. 그는 유가를 강력하게 비판했던 사상가 중 하나였다. 그가 환생한다면 아마 공가 컨설턴트 회사에 이런 식으로 대응했을 것이다.  “당신들의 사랑은 결국 화이트칼라에게만 국한된 것이다. 차별없는 사랑(겸애)야 말로 진정한 경영을 할 수 있다.”

    한비자는 철저하게 X이론을 믿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강력한 규칙과 제도야 말로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데 더 없이 중요한 시스템이라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한비자 컨설턴트는 현대 경영인들에게 이렇게 외쳤을 듯 싶다. “공과 사를 철저하게 분리하고, 정직한 논공행상을 함과 동시에, 그 누구도 예외없는 규칙을 따라야할 것이오.”

   반면 노자는 이 모든 사상가들을 돌려깠다. 어떤 관념과 이데올로기가 경영에 들어서게 되면, 오히려 조직의 안정성이 저해된다고 말이다.  “직원들이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게 놔두시오. 될 놈은 되고 안될 놈은 안될 겁니다. 최선을 다해 제품을 만드시오. 다만 살 사람은 살 것이고, 안 살 사람은 안 살 것입니다. 이것에 목매여 규칙을 만들고 관념을 만들면 될 일도 안됩니다. “

    실제 춘추전국시대 중국의 역사에서 단기적으로는 한비자가 승리했다. 하지만 15년을 넘기지 못했다. 이는 현대경영에서도 많은 의미를 남긴다. 철저한 규칙과 내부시스템으로 돌아가는 회사는 결국 외부환경변화에 더디기 마련이다. 관료제가 심화될수록 피터의 법칙은 더욱 가속화되고 융통성 없는 멍청이들만 가득하다. 하지만 공동체 유지를 위해 어느 정도의 규칙과 제도가 필요한 것도 사실임은 분명하다.

    유학이 잠시 주춤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이들은 천년의 역사 속에서도 찬란하게 명맥을 유지했다. 문제는 이 유가사상은 묵자의 비판대로 여전히 차별적 사랑이라는 한계에 늘 마주하게 된다. 성리학으로 이어진 유가의 사상은 한비자의 제도와는 또다른 계층적 제도를 만들었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계층과 위계에 의한 꼰대문화의 핵심요소로 자리잡게 된다.

    현대 수많은 스타트업들은 노자 컨설턴트의 사상을 선호한다. 아무 간섭없이 직원들의 자율성을 보장하여 자연스럽게 회사의 경영을 맡기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극단으로 자리잡게 되면, 경영자 자체가 정말 노자가 아닌 다음에야 회사를 보고만 있을 수 있을까.

    모든 컨설팅이 100%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듯, 제자백가 컨설팅의 가르침은 상대적으로 적용해야 할 일이다. 문제는 언제나 맹신에 있다. 실제로 춘추전국시대 대부분의 제후국들 또한 제자백가 컨설팅을 제대로 실행한 제후가 없었다. 그 이유는 실제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도 분명히 있었을 터.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관점을 어디에 놓고 보느냐에 따라서 경영의 목표와 수단은 엄연히 달라진다는 것이다.

    지금도 수많은 경영지침서들이 서점에 출고되고 있다. 제자백가 시대부터 지금까지 약 4,000여년 가까이 이 시장은 언제나 과포화상태였고, 밀리언 셀러의 시장이었다. 우리는 누구나 내 가슴 속에 스스로를 한 제후로서 살아 가면서도, 또 어떤 제후에 속한 삶을 살아가기도 한다. 그래서 제자백가의 고전 컨설팅이 말해주듯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을 넓히면, 경영이 달라진다. 물론 자기경영도 포함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