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개발이 아니라 재생이다

도시재생 열풍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산업화를 정면으로 맞이했던 영국과 미국을 선두로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한 우리나라까지, 도시는 개발보다는 재생에 방점을 찍고 있다. 이는 더 이상은 확장이 불가능한 도시라는 경계선과 한계와 맞물려 있다. 도시란 무형의 문화가 존재하는 곳이면서도 ‘공간’ 이라는 물리성으로 극히 제한된 형태를 띄기 마련이다. 지방분권이 강화됨에 따라 도시공간은 더 이상 ‘확장’에 기댈 수 없다. 서울은 더 이상 행정구역을 넓힐 수 없으며, 다른 광역시도 역시 강제 통폐합을 하지 않는 이상 도시의 확장성은 멈출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이제는 아무리 작은 도시라 하더라도 원래 고유의 생태계를 살리는 방식의 성장을 취할 수 밖에 없다. 요즘따라 도시 저마다의 사람냄새가 다르고, 아스팔트의 냄새가 달리 느껴지는 이유도 바로 이런 도시정책의 변화에 있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시재생’에 대한 개념조차 잡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도시재생은 지방분권이 강화될수록 합리성과 효율성이 극대화된다. 지역문제는 지역이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앙에서부터 내려오는 도시재생은 있을 수 없다. 허나 많은 지역주민들이 ‘도시재생’ 이라고 하면, 그저 보도블럭을 다시 깔고 벽에다 벽화나 칠하는 그 정도의 수준으로 알고 있다.

도시재생은 말 그대로 ‘다시 사용’ 한다는 의미다. 도시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자원을 다시 활용한다는 뜻이다. 서울대 소비트랜드 분석센터의 김난도 교수는 올해 ‘트렌드 코리아 2019’를 통해 도시재생에 있어 의미있는 키워드들을 몇 가지 제시했다. “컨셉, 세포마켓, 뉴트로, 카멜레존, 나나랜드” 이다. 책에서 제시하는 10개의 트렌드 키워드 중에 절반이 도시재생에 적용시켜볼만한 의미있는 내용이다.

컨셉은 ‘감성’ 아닌 ‘갬성’의 영역이다. 소비자 분화시대에 들어오면서 대규모 소비시장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것으 가장 주된 이유는 소비자들이 점점 ‘감성’을 버리고 ‘갬성’을 찾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감성’은 일종의 이데올로기가 만든 것이다. 유행에 가깝다. 시대마다 고유한 성격의 감성이 존재한다. 1970년대에 통기타 감성이 지금은 전체적으로 유효하지 않다. 하지만 ‘갬성’은 말 그대로 ‘개인적 감성’ 이다. 내가 좋으면 그 뿐이다. 내가 원하는 감성, 나를 충족시켜주는 감성의 영역이다. 조금은 마니아 기질이 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이 시장은 파이가 크지 않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요즘의 마니아들은 SNS를 통해서 서로 의견교환에 익숙하고 자신의 고유 취향을 스스럼 없이 드러낸다.

이런 컨셉이 개발한 ‘갬성’은 도시재생에 있어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도시재생은 도시 본래의 자원을 다시 활용하는 것이다. 다른 도시는 가지지 못했던 자원을 개발하면서 자연스럽게 얻게 되는 ‘컨셉’은 그 도시만의 것이다. 이것은 꼭 그 지역에만 가야 누릴 수 있는 문화적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세포마켓’이라는 개념은 세포 단위의 시장이 만들어 진다는 의미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소비자들도 각자의 갬성을 앞세워 다양한 컨셉들의 상품을 소비하길 원한다. 소비자가 직접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기도 하고, 자신만의 채널을 통해 공유한다.

도시재생 또한 이런 방식으로 접근된다. 그 도시에서 자고 자란 사람 혹은 그 도시의 감성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도시의 특성을 반영한 제품들이 이따라 생산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강원도는 이제는 쓸모 없어진 폐광지역의 도시자원을 가지고 공간재생사업이 한창이다. 할아버지 대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속초의 어업용 목선 조선소는 이제 젊은이들에게 카누와 카약을 만드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대한민국에 카약과 카누 인구가 얼마나 될지, 레저산업 파이의 크기를 따지며 사업의 성공성을 따지는 것은 도시재생사업에 무의미하다. 도시는 그 도시만이 가질 수 있는 세포마켓단위로 다양성을 확보한다. 산업화의 이데올로기였던 거대담론 대신 이제는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시장들이 들어서고 있다.

‘뉴트로와 카멜레존’ 역시 도시재생의 핵심가치다. 요즘의 젊은이들은 낡은 것을 때려 부수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낡은 가치를 재생산하는데 중점을 둔다. BTS가 전세계를 무대로 활약하고 있음에도 대구의 김광석 거리가 뜨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래서 단순 레트로가 아닌 레트로 복고를 재해석한 뉴트로가 뜬다. 새로 지은 전면유리의 번쩍이는 건물에 들어가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옛 것의 가치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뉴트로 접근을 통해 카멜레존으로 탈바꿈한다. 이는 ‘갬성’을 충족시켜주고 ‘세포마켓’을 형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트렌드다.

<글쓴이가 일하고 있는 ‘춘천’의 제일약방, 옛 약방을 코워킹 스페이스로 꾸몄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이유는 바로 ‘나나랜드’ 트렌드 덕분이다. 남의 눈길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우리나라는 현재 집단주의에서 개인주의 문화로의 이향의 갈등에 놓여있다. 명절은 더 이상 옛것의 가치로 소비되지 않고, 가족주의도 해체되었다. 이것은 세대간의 갈등으로 번지기도 하지만 결국은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젊은이들의 시대로 문화가 바뀌어갈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래서 결국 도시는 개인의 삶을 얼마만큼 충족시켜 주느냐에 따라 자원활용이 달라지게 된다.

아직도 거대 산업화 논리의 이데올로기에 빠진 기성세대들은 도시재생에 대한 시선이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그들이 보기엔, 부지런한 개미로서의 면모보다 기타치는 베짱이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노동’과 ‘근면, 성실’을 최고의 가치로만 삼아왔던 이들에겐 당연한 시선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여전히 특정세대는 도시를 살리기 위해선 ‘대규모 공단’ 이 들어서야 되고 연고를 둔 기업이 ‘투자나 인프라 확충’을 통해서만 도시를 살릴 수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 이제는 도시 자체에 투자해야하는 시대다. 개발이 아니라 재생해야할 시대다. 도시의 생산 또한 기업의 생산과 무관하지 않다. 공공행정분야에까지 TQM이나 MBO를 적용시키려 했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 다만 도시가 기업과 다른 것은 공간의 한계에 스스로 갇혀 있다는 것이다.

현대 물리학에서 주목받았던 ‘프렉탈 이론’ 이 있다. 이 이론이 도시재생에 주는 함의는 물리적 한계성을 가진 어떤 물체가 무한으로 뻗어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거대한 나무는 더 이상 자라지 못한다. 성장의 한계점이 분명히 온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끊임없이 ‘자기 유사성’을 가지며 본래 형태와 유사한 나뭇가지를 생산한다. 내부확장성에 성장을 할애한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큰 나무지만, 나뭇가지들 조차 본래 나무의 형태로 끊임없이 확장하고 있다>

도시 또한 나무와 같다. 도시가 본래 가지고 있는 모습을 활용하여, 자기유사성을 끊임없이 내부적으로 확장시키는 것이 도시재생이다. 그것이 곧 도시의 정체성이고, 컨셉이며, 갬성이다. 세포마켓은 여기서 출발하여 뉴트로와 카멜레존이 함께 덧붙여져 ‘나나랜드’를 충족 시킨다. 하지만 거시적으로 보자면 ‘나나랜드’의 한 개인이라도 도시 본래의 모습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집단문화나 공동체 문화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욱 강화된다. 도시재생은 공동체 해체도 아니고, 개인문화의 확산이 아니다. 이분법의 논리가 아니라, 도시 성장의 무한한 반복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