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납할 책이 있어 산책도 할 겸 도서관에 갔다. 예전에 몰랐던 사실인데 도서관에는 만화책도 있다. 이번에는 머릿속이 복잡해 만화책을 빌려 보기로 했다.

허영만의 ‘식객’이라는 책으로 그림이 있다 뿐 읽다 보면 마치 소설이나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그림체가 그다지 정밀하진 않지만 장면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떠올라서 그런 것 같다. 한가지 에피소드를 그리기 위해 엄청난 자료조사와 고증 작업을 거친 후 탄생해서 그런지 만화책이라도 깊이가 있다.

식객을 보고 있자니 지인들과 함께 파티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맛있는 음식을 차려놓고 함께 식사를 하는 것만으로도 파티하는 기분이 들것이다. 파티는 좋지만 손님을 불러 식사를 대접한다는 것은 긴장되는 일이다. 가족도 아닌 다른 사람에게 집안을 보여서가 아니라 내가 요리와 친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좋아하지만 요리는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딱 잘라 싫어한다는 표현을 쓰지 않은 것은 내가 한 요리를 누군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볼 때면 흡족한 마음이 들기도 해서다. 다행히도 몇 가지 음식은 마음먹고 했을 때 결과물이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먹고 맛있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마음먹고’ 그렇다 나에게 요리란 그냥 일상생활하듯이 쓱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조금의 시간, 마음을 가다듬는 정도의 여유시간이 필요한 행위다.

생각해 보면 ‘나는 맛있는 것을 좋아해’라면 서도 그것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나 식재료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 같다. 번거롭고 귀찮아서 나 자신을 위한 요리는 그다지 하지 않았고 내가 하는 요리는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일 때가 많았다. 혼자일 때는 끼니를 때운다는 느낌으로 간단하게 먹고는 했다. 자취를 해도 아침부터 삼겹살을 구워 먹는 사람이 있는 반면 요리는 전혀 하지 않고 밖에서 해결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후자의 사람이었다.

첫 직장생활은 살던 곳을 벗어나 타 지역에서 했다. 주위의 다른 친구들 보다 빨리 독립한 편이었는데 이때에도 음식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변명을 해보자면 회사생활은 항상 바쁘고 야근을 밥 먹듯이 해서 집에 늦게 들어가니 식사는 항상 밖에서 이루어졌다. 한 끼의 제대로 된 식사보다는 일에 더 집중을 해서 그런지 조금만 바쁘면 간단한 군것질거리로 때우기 일쑤였다. 외근이 잦은 업무의 특성상 직원들이 모일 때를 제외하고는 혼자 먹는 시간이 많아 점심은 빵으로 대충 먹고 저녁 시간을 놓치는 경우도 허다했다.

요리를 잘하거나 못하거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혼자일 때는 대충 먹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 음식은 신경 써주면서 막상 자신은 남은 음식으로 때우는 어머니, 일부러 술자리를 만들어 안주와 식사를 함께 해결하고 혼자서는 인스턴트 음식으로 때우는 기러기 아빠(이 부분은 만화의 설정을 옮긴 것이다.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친구와 약속을 잡고 회식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혼자서는 라면을 끓여먹다가 친구와는 다양한 맛 집을 찾아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음식이라는 것은 혼자 먹는 것보다는 누군가 함께 먹을 때 더 맛있게 느껴진다. 식탁에는 음식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도 함께 있다.  요리한 사람의 정성, 맛있는 음식을 가족들과 나누고픈 마음이 있어 혼자일 때보다 함께 먹는 음식이 더욱 맛있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음식이라는 것을 같이 먹음으로써 마음의 허기도 함께 채워지는 것 같다.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해서 먹는 음식이라면 혼자 어디서 무엇을 먹든지 상관없을 것이다.

함께 먹은 음식은 기억이고 추억이 된다. 우리가 다른 사람과 함께 식사를 하는 이유는 어쩌면 이 맛있는 음식의 기억을 그 누군가와 함께 공유하기 위함이 아닐까?

요즘같이 싸늘한 겨울이 되면 어릴 적 할머니가 밥솥에 쪄서 여기저기 밥알이 붙어있던 고구마와 동치미 한 사발이 생각난다. 그때는 밥알이 붙어 있는 것이 너무 싫었는데 가족들과 옛날이야기를 할 때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 이야기를 하며 할머니를 그리워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