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원래 collaboration

너무 흔해진 그 이름, collaboration

당장 인터넷 포털에 ‘콜라보레이션’을 검색해보자. (물론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컬래버레이션’이 맞지만.) 어쩌면 그리도 많은 ‘합작’들이 있었는지. 심지어는 딱히 컬래버레이션이라 부르지 않아도 될 법한 상황인데도, 그럴 듯하게 보이려는 심산인지 하나같이 콜라보, 컬래버, collaboration을 남발한다. (이하 컬래버레이션으로 통일하겠다.)

이번 글에서는 그중에서도 패션에 관한 컬래버레이션 현상의 변화와 의미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패션 업계는 가장 활발하고도 휘발성 강한 컬래버레이션의 장이다. 두 패션 브랜드가 손을 잡고 특별한 제품을 선보이는 것. 컬래버레이션이라는 말이 유행하기 전이었다면 ‘한정판’,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불렸을 제품들. 개인적으로 눈여겨봤던 시리즈로는 도메스틱 캐주얼 브랜드 ‘커버낫’과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리복’의 컬래버레이션이 있다. 그런데 요즘의 컬래버레이션 사례들을 살펴보면 업계와 장르의 경계가 허물어졌음을 알 수 있다. 애니메이션 캐릭터, 맥주 브랜드, 가구 브랜드, 심지어는 예능 프로그램과의 컬래버레이션까지 나오고 있다. 우선 개별 사례들을 살펴보자.

  1. 스파오 X 짱구/ 해리포터/ 위베어베어스 등등…

일본의 유니클로, 스웨덴의 h&m, 스페인의 자라 등등 글로벌 SPA 브랜드의 홍수 속에서 나름의 입지를 다지고 있는 이랜드 그룹의 스파오. 다 같은 패스트패션 SPA 브랜드라고는 하지만, 각자의 분위기나 콘셉트, 주 타깃층은 모두 다르다.

스파오의 경우 주 타킷 연령층이 10대~20대 초반으로 상대적으로 낮고, 가격대도 저렴한 편이다. 또 자잘한 각종 컬래버레이션을 자주 하는 전략을 선보이는데, 주 타깃 연령층의 니즈에 맞게 각종 애니메이션이나 캐릭터와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한다. 전체적으로 디자인의 특이점은 없다. 기존의 제품에 해당 캐릭터 자수를 배치하는 정도. 그나마 짱구와의 컬래버레이션은 실제 애니메이션 속 짱구 잠옷 디자인을 그대로 SNS에서 잠깐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 이런 방식은 진정한 의미의 컬래버레이션이라고 보기는 힘들 것 같다. 두 주체 간의 협업과 합작이라는 점에서는 일면 컬래버레이션의 의미를 담고 있긴 하지만 실질적으로 컬래버레이션 된 제품이 노출되고 소비되는 곳은 스파오뿐이니까. 짱구나 위베어베어스 애니메이션에서 캐릭터들이 스파오 컬래버레이션 옷을 입고 등장한다거나, 해리포터 번외편으로 스파오 단편 스토리가 제작된다거나 한 적은 없다. 해서, 엄밀히 말해 이런 방식은 컬래버레이션이라기보다는 캐릭터에 대한 권리를 스파오에서 활용했다고 하는 편이 적합하다.

  1. 데상트 X 삿포로 맥주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데상트는 일본의 대표 맥주 브랜드 삿포로와의 컬래버레이션 F/W 제품을 출시했다. 플리스 소재의 후디, 재킷, 맨투맨, 바지와 뮬 스타일의 스니커즈로 구성된 이번 컬래버레이션 캡슐 컬렉션은 패션 브랜드와 주류 브랜드의 ‘그럴 듯한’ 합작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럴 듯한’ 이라고 강조한 이유는, 간혹 순전히 주류 회사의 마케팅 목적으로 단체복 용도의 의류에 주류 브랜드 로고만 박는 경우도 있는데 반해 데상트 스포츠 의류의 기술력과 디자인을 살리면서 삿포로 브랜드의 이미지까지 잘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특히 트렌디한 소재인 플리스를 사용했다는 점이 인상 깊다. 상대적으로 데상트의 로고는 작게, 삿포로 맥주의 로고를 메인으로 배치했다는 점도 컬래버레이션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했다고 평가된다. 컬렉션 화보만 봐도, 이번 컬렉션이 데상트 제품을 기반으로 삿포로 맥주의 색감과 감성을 얹어내려는 노력을 확인할 수 있다.

아, 물론 살짝 삿포로 회사 직원복 같은 느낌이 나는 건 감안해야 한다.

  1. 슬로우포크 X 하이브로우

아메리칸 스포츠&캐주얼 유니섹스 의류브랜드 슬로우포크는 가구 브랜드인 하이브로우와의 컬래버레이션 제품을 선보인 바 있다. 맨투맨과 후디, 나일론 소재의 파우치의 간소한 구성이지만 캐주얼 무드의 슬로우포크 제품과 하이브로우 폰트의 상성이 워낙 좋아 얼핏 보면 컬래버레이션 제품이 아니라 그냥 슬로우포크의 신제품처럼 보인다. 물론 두 브랜드 입장에선 그게 단점일 수도 있겠지만.

하이브로우는 배우 이천희의 가구 브랜드이자, 예능 프로그램 ‘효리네 민박’ 속 이효리 가구로 유명해진 브랜드이다. 사실 가구에 관심을 가질 만한 연령대나 계층이 아니면 굳이 알 법한 브랜드는 아니다. 해서 이번 컬래버레이션은 단순히 서로 다른 영역의 브랜드가 합작했다는 의미를 너머, 서로 완전히 다른 타깃층을 가진 브랜드가 합작을 통해 고객 시장을 중첩 및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의미를 가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쉬운 점은, 슬로우포크 측에서도 하이브로우 측에서도 적극적인 언론 공세를 거의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꽤 의미 있는 가능성을 키우지 못했다. 해서, 틈만 나면 온라인 쇼핑몰을 구석구석 쏘다니는 것이 취미인 나 같은 사람이나 눈치를 채고 이런 글을 적는 것이다.

  1. 와썹맨 X 엄브로

가수 god의 멤버이자 “BAAM!“과 ”What‘s up, man!”을 수시로 외치는 박준형을 필두로 ’웹 예능’이라는 신장르를 개척한 예능 프로그램 <와썹맨>은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엄브로와의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했다. 주요 제품은 블랙 색상의 후디와 모자, 양말, 장갑이며 스티커와 핸드크림도 구성에 포함되어 있다. 후디는 중앙에 와썹맨의 박준형 로고, 하단에 엄브로 로고를 배치하고 팔 부분에도 레터링 로고를 더했다.

디자인만 보면 그리 나쁘지 않지만, 역시 와썹맨 제작진 팀복 같아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컬래버레이션이 특별한 점은 우선 1000장 한정 판매라는 점과, 수익금은 ‘와썹맨과 구독쨔쓰’ 이름으로 NGO 세이브 더 칠드런을 통해 기부된다는 점이다. 보통의 컬래버레이션들이 (당연하게도) 각각의 브랜드 가치와 수익을 높이기 위해 활용되는 전략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가끔 이런 컬래버레이션이 등장하는 것이 반갑고 훈훈하다.

어쩌다 이런 컬래버레이션 혼종이

그럼 근래의 이런 컬래버레이션 혼종 현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시장 논리로만 따져보면 ‘뭔가 돈이 되니까’ 정도일 것이다. 우선은 독특한 컬래버레이션은 SNS를 통해 세간의 주목을 받기에 좋다. 제품의 구성이나 완성도와는 별도로, 일단 한번 관심을 얻는 것만으로도 성과가 있는 셈이다. 거기다 더해 가끔은 오히려 ‘병맛’ 같아 보이는 괴상한 혼종이 몇몇 괴짜들의 감성을 건드려서 국지적이고 강렬한 호응을 얻기도 한다. 실제로 그런 현상이 얼마나 수익 창출에 효과가 있었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시장이란 원래 돈이 되지 않으면 사장되기 마련인데, 여태 각종 컬래버레이션 혼종이 범람 중인 걸 보면 뭔가 되긴 되는가 보다, 라고 추측할 수는 있다.

하지만 컬래버레이션을 해내는 공급자 측에서 어떤 의도를 갖고, 어떤 성과를 기대했던 간에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런 점에서 최근의 컬래버레이션 혼종 현상의 중심에는 해당 제품을 대하는 소비자들의 인식과 태도의 변화가 더 결정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흔히 ‘패션’ 이라고 하면 가장 기본적으로는 옷과 신발부터, 각종 액세서리와 생활 잡화들을 아우른다. 때문에 과거의 컬래버레이션이 패션 업계 내에서 상부상조하듯 이어져 오기도 했고. 하지만 이제 소비자들은 안다. 그 패션이라는 걸 누리는 우리는, 이미 컬래버레이션 혼종의 결정체라는 사실을. 한 사람을 이루는 장면에는 옷이나 신발, 액세서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늦저녁 마시는 맥주의 종류, 즐겨 읽는 소설이나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당신의 거실에 자리 잡은 가구까지. 그 모든 것들의 총체적인 집합으로서, 사람은 자기를 규정하고 남을 판단한다.

그런 소비자들이 혼종 컬래버레이션 제품들을 만났을 때, 직감적으로 그 의미를 알아채는 것이다. 가슴 한 가운데 삿포로 맥주 로고가 큼지막한 데상트의 맨투맨.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자신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아이템이 된다. 하이브로우의 레터링이 박힌 슬로우포크의 후디. 때마침 안방에 둔 가구가 하이브로우의 제품이라면, 한번쯤 눈길이 가는 것이다. 그런 방식으로 우리는 스스로의 ‘혼종 정체성’을 ‘혼종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확인하고 채워간다.

애초에 컬래버레이션이라는 게 이래야 했던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1 더하기 1을 2라고 하는 컬래버레이션이 무슨 의미와 재미가 있는가. 귀요미라고 해주면, 코웃음이라도 칠 수 있는 순간을 선물 받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