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말 하고 살라’는 거짓말에 속지 마라!

 

“내가 싫어하는 그 행동, 한 번만 더하면 헤어질거야!”

무서운 말이다.

이 말을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사이엔 뭔가가 있다. 듣는 사람은 아마도 말하는 사람이 싫어하는 행동을 여러 번 했을 것이다. 그 행동이 반복되는 동안 말하는 사람은 그만큼 참고, 또 경고를 했을 것이다. 즉, 말하는 사람은 화가 많이 나있다. 사랑하는 마음이 마이너스를 지나고 있다면, 이것은 헤어지기 위한 명분에 속하는 말이 되겠지만 보통은 사랑하는 마음이 남아 있기에 하는 말이다.

(다행히, 실제로 지금 우리에게 닥친 일은 아니니) 우리는 쉽게 ‘감정’과 ‘메시지’를 분리할 수 있다.

 

감정: 분명 내가 싫다고 말했는데도, 반복되는 너의 행동 때문에 난 몹시 화가 나있어!

메시지: 난 아직 널 사랑해. 그러니 내가 싫어하는 그 행동 그만 해줄래?

 

하지만 이것은 듣는 이에게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는 당장 대답이 튀어나온다.

“그래, 헤어져!”

이 대답 또한, 우리는 ‘감정’과 ‘메시지’를 나눌 수 있다.

감정: 그래 될 대로 돼라! 어차피 넌 헤어질 마음인 거지. 내가 노력한 건 알아주지도 않고!

메시지: 나도 나름 노력 많이 했는데. 알아주었으면 좋겠는데. 설마 정말 헤어지려는 건 아니지? 용서해줘!

메시지에 감정이 실리면,
감정만 전달되고 메시지는 전달되지 않는다!

서로의 ‘메시지’를 들여다보면, 위 두 사람은 절대 헤어져선 안된다.

하지만, 현실에선 기어이 헤어지고 만다. 왜 그럴까? 3자의 입장에서 보지 않으면, 당사자들은 위 대화에서 절대 ‘메시지’를 읽을 수 없다. ‘감정’의 힘이 더 크기 때문이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다. 그건 본능이자 자연법칙이다. 아무리 이성적으로 생각하려 하는 사람도, 결국은 ‘나는 이성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이고 결정했어!’란 ‘안도감/ 만족감(감정)’을 얻는데 주력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 과거를 돌아보면, 우리들은 그제야 제 3자의 시야를 갖게 된다. 그래서 후회한다. 우리가 그때 헤어지지 않았다면, 조금만 서로를 더 배려했더라면 어땠을까란 노래 가사가 수두룩한 이유다.

하고 싶은 말 하고 살라는 무책임한 말

“왜 바보 같이 아무 말도 못 해? 하고 싶은 말해!”

상사에게 호통을 당하거나,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한 소리를 들을 때. 이러한 목소리는 나 자신으로부터 먼저 온다. 그리고 그 상황을 전해 들은 사람들도 위로한답시고는 뭐라도 한 마디 하지 그랬냐고 부추긴다. 하지만 정말로 그 자리에서 바로 자기 할 말을 하면 어떻게 될까?

‘하고 싶은 말’을 당장 하는 것은 순간 정의로워(?) 보일 수 있지만, 가장 큰 함정은 그 말은 결국 ‘감정’만 전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미 무언가를 맞받아쳐야 한다는 나의 상황은, 그 이야기에서 ‘감정’만 접수하고 요동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내뱉는 말에 ‘메시지’가 실릴 리 없다. 그저 맞받아친 말에는 ‘감정’만 장전되어 발사되는 상황. 그 말은 주워 담을 수도 없다. 당장 할 말은 해서 시원하다는 생각이 들 찰나, 결국 ‘아차!!!’란 후회는 쓰나미와 같이 몰려온다. 헤어질 마음이 없는 사람이 화난 연인에게 ‘헤어져!’라고 말하고는, ‘내가 대체 무슨 말을 한 거야, 정말 헤어지게 되면 어쩌지?’란 상황과 다르지 않다.


– 상사 –

“아니, 자네가 왜 그렇게 쓸데없는 일을 하지?”

감정: 아니, 나한테 미리 말도 안 하고. 게다가 내가 시킨 일도 있는데, 이런 괘씸한!
메시지: 지금 일이 많고 바빠 죽겠는데, 그 일을 하는 것보단 내가 지시한 그 일을 하는 게 낫지 않겠나?

– 주니어 –

“뭐라고요? 어떻게 말을 그렇게 하실 수가 있어요? 정말 못해먹겠네요! 그만두겠습니다!

감정: 아, 정말 섭섭합니다. 그리고 말을 너무 심하게 하시네요?
메시지: 저도 나름 잘하려고 한 일입니다. 지금 제 생각엔 이게 더 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둘 다 잘못하고 있다.

상사는 그 일 보단 자신이 아까 시킨 일을 먼저 했으면 하는 ‘메시지’를 갖고 있지만, 자신에게 말도 안 하고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주니어에게 화가 나 이와 같이 말했다. 상사도 주니어가 정말 자신이 지시한 일을 하게 하려 했다면, ‘감정’과 ‘메시지’는 구분해서 말했어야 한다.

주니어는 나름 다른 일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열심히 일을 했는데, 갑자기 날아든 감정 폭발 피드백에 결국 ‘하고 싶은 말(?)’을 던지고 만다. 물론, 나름 잘하려고 했다는 ‘메시지’는 전혀 전달되지 않았다.

가상의 이야기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이건 약 10여 년 전, 주니어였던 나에게 실제로 일어난 일.

다른 동료들도 다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하극상’이라는 단어가 참 어울리는 순간이었다. 이후에 심도 있는 면담을 몇 번이나 거치고 난 뒤, 가까스로 용서를 얻고 지금은 그분과 좀 더 각별한 사이로 지내고 있지만,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은 추억이었다.

중요한 건 메시지 전달이다!

세월이 흘러 지금 내가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어떨까?

실제로 이와 비슷한 일은 여러 번 있었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흔히 일어나는 일이니까. ‘유체이탈 화법’은 이럴 때 필요하다. 그와 같은 피드백을 상사에게 받았을 때, 난 잠시 유체를 이탈하여 제 3자의 시야를 갖도록 노력한다. ‘아, 상사께서 심기가 불편하시고, 내가 이걸 했으면 하시는구나!’. 물론, 쉽지 않다. 당장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온다. 우선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급한 불을 끈다.

그 이후에 난 ‘메시지’ 전달에 집중한다.

그 상황 이후, 그 상사와 차 한잔을 하거나 술자리에서 좀 더 편하게 이야기하거나. 중요한 건 ‘감정’이 어느 정도 식은 후에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 나 –

“아, 그때 제가 나름 급하다고 생각했던 일인데 중간보고를 못 드려 오해가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다음부턴, 오해 없게 미리 말씀드리고 일을 진행하겠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너무 심하게 하셔서 좀 섭섭했어요!”

– 상사 –

“아, 그랬나? 미안하다. 그래, 앞으론 서로 잘 이야기해보자고!”

내가 잘못한 부분은 분명 있었다. 그 부분은 인정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내가 느낀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나름 잘하려고 했다는 것과 억울한 면이 있었다는 것. 심한 말을 듣고 조금은 섭섭했다는 ‘메시지’는 그렇게 전달된다. 그러고 나서 상사와 차 한잔이나, 술 한잔을 기울이고 나면 당시 섭섭했던 ‘감정’도 눈 녹듯 사르르 사라진다.


‘감정’과 ‘메시지’를 분리해보면, 우리는 ‘하고 싶은 말’을 하며 감내해야 하는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그것을 줄이는 게 목적이 아니고, 우리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좀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우리는 누군가의 상사 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후배 사원이기도 하다. 그러니 말할 때, 들을 때, 대답할 때 ‘감정’과 ‘메시지’를 구분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나 자신을 지키며 직장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감정’과 ‘메시지’를 구분하지 못하면 말을 할 때도, 말을 들을 때도 상처 받고 요동하고 매사가 괴롭다. 다시,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며 회사에서 직장인들은 ‘감정’적으로 매우 예민한 존재들이다.

아무쪼록, ‘감정’과 ‘메시지’를 구분하면서 홧김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잘 다니던 직장을 뛰쳐나가는 일이 현저히 줄어들길 바란다. 물론, 나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