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실패를 기억하는 법

 

사람은 기억과 감정이 함께 움직인다. ‘부정적인 기억’ 혹은 ‘안좋은 기억’ 이라는 표현만 보더라도 인간은 기억과 감정을 늘 함께 연동시킨다. 그래서 특정 기억들을 떠올릴 때마다 우리는 미소를 짓거나 인상을 일그러뜨리기 마련이다. 

우리 신혼집에는 작은 고양이가 한마리 있다. 이름은 ‘보리’, 종은 ‘터키시 앙고라’. 고양이를 4년 가까이 키우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고양이들은 인간만큼 감정과 기억을 연계시키는데 능숙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물론 아주 반복적으로 고양이의 특정 행위에 늘 똑같은 특정 결과를 준다면 그것은 하나의 ‘학습효과’로서 인지되겠지만, 서너번의 부정적인 기억은 곧바로 저장되지 않는 듯 했다. 사실 이 부분이 고양이는 강아지들보다 머리가 나쁘다는 ‘편견과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지점이다.

물론 사람들 중에서도 성격 좋은 사람이 있다. 이래도 ‘허허’, 저래도’ 허허’ 인 사람들. 하지만 그들은 단순히 감정과 기억의 연상이 작동되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것이 안 좋은 기억임을 인지하면서도, 어떤 다른 이유에서건 ‘괜찮은 척’ 무시해버리는 일종의 심리적 방어기제일 경우가 더욱 흔하다.

하지만 고양이들의 경우는 자신이 겪었던 부정적 감정과 기억을 정말로 연게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학대수준의 반복된 부정성이 아니라면, 아주 작은 일상적으로 입력된 부정적인 기억조차도 이들은 잘 기억해내지 못한다.

고양이가 이런 성격을 가지게 된 이유에 수많은 가설이 있지만, 그 중 가장 설득력이 있는 가설이 있다. 바로 ‘실패 보상설’ 이다. 이는 고양잇과 동물들의 습성에서 연관된 것인데, 이는 고양잇과 동물들이 개과 동물들과는 전혀 다른 사냥 매커니즘을 취하는 데서 기인한 것이다.

개과 동물들의 사냥 매커니즘은 ‘지구력’ 에 있다. 그들은 사냥감을 끈질길 정도로 추격한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지구력’이다. 그래서 개과 동물들의 사냥감은 스스로가 도망가는 것을 포기했을 때야 비로소 희생된다. 인디언의 기우제가 항상 성공하는 이유는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이라 했던가. 개과 동물들의 사냥 매커니즘이 바로 인디언들의 기우제 방식과 닮아 있다. 그들은 사냥감이 지쳐서 더 이상 도망갈 힘이 없을 때가 되어서야 그들의 목을 깨문다.

하지만 고양잇과 동물들의 사냥 매커니즘은 ‘지구력’ 이 아니라 ‘경쟁력’ 에 있다. 누가 더 빠르냐의 문제다. 톰슨가젤이 요리조리 잘 도망 다니거나 넘사벽으로 속도가 빨랐다면 사자 열마리를 풀어놔도 절대 잡히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치타는 속도 경쟁력을 높이는데 대부분의 진화를 할애했고, 덩치가 커 속도가 느려진 사자들은 그 보완책으로 능숙하게 무리생활을 하도록 사회성을 진화시켰다. 하지만 사자든, 호랑이든 어쨌든 이들의 사냥은 1분 안에 결판이 난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나 힘껏 내달린 고양잇과 동물들의 사냥 실패율이 의외로 높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는 ‘동물의 왕국’에서 등장하는 고양잇과 동물들의 사냥 성공담에 익숙할 뿐이다. 사바나 초원에서 치타는 맹수라기보다 동네 호구에 가깝고, 사자는 무겁고 게을러 사냥에 한번 실패하면 에너지 낭비가 실로 어마어마하다.

그래서 이들은 ‘실패나 부정적인 감정’을 최대한 빨리 망각하는 쪽으로 인지의 진화를 선택했다. 즉 안 좋은 기억은 빨리 잊고, 다시 재도전 할 수 있는 스스로의 자기보상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런 관점으로 따지자면, 고양이는 머리가 나쁜 게 아니라 어쩌면 매우 현명한 생존 방법을 선택했다고 할 수 있다.

고양이들은 생존을 잊기 위해 잊기로 했다. 좌절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을 애써 떠올리지 않기로 한 것이다. 고양이는 과거를 포기하고, 현재에 집중한다. 기억을 끊어내고 바로 앞에 있는 먹잇감에 다시 눈이 이글거린다. ‘기억’과 ‘감정’의 연동을 단절하고 자신이 해야할 것에 다시금 엉덩이를 씰룩거린다.

우리나라는 IMF 이전으로 절대 돌아갈 수 없다. 한 직장에서 근속 30년 감사패를 받는 것은 더더욱 힘들어졌다. 직업도 마찬가지다. 어느 한 직업을 10년 이상 끌고 가기에는 세상은 너무 빨리 바뀌고, A.I의 역습은 더욱 거세다. 이제는 더 이상 ‘끈기와 성실’ 만이 미덕이 아닌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늑대들처럼 무언가를 끝까지, 끈질기게 물어 뜯을 것을 강요받는다. 첨예한 경쟁의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우리의 감각은 날카롭지 못하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실패에 아파하고 좌절한다. 과거에 발목이 잡히고, 끝없이 되새긴다. 그것을 ‘경험’ 이라는 숙성과정으로 비유되면 좋겠지만, 그 기억들은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 일으키기 마련이다.

성취가 보장되지 않는 사회, 즉 늑대 생태계로 살아갈 수 없는 사회라면 더 이상 우리를 ‘지구력’ 이라는 울타리에 가두어 놓지 말자. ‘끈기’라는 이데올로기에 갇혀 자신을 패배자로 몰지 말자. 우리의 실패는 끈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단순히 사냥감을 놓친 것에 불과하다. 다만 내일의 사냥을 위해 오늘의 사냥을 잊자.

호시우보, 호랑이의 눈을 갖고 소처럼 걷는다. 한타 싸움에서 졌다고 써랜을 쳐대기엔 우리의 남은 날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