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직의 진짜 의미

화려한 아르바이트 경력

웬만큼 유복하지 않고서야, 요즘 세상에 아르바이트 한 번 해보지 않은 청춘이 어디 있겠냐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아르바이트 경력은 꽤 화려하다. 조금 길어질 테니 적당히 읽다 내려가셔도 좋다.

바리스타, 스포츠 브랜드와 남성 정장 브랜드 판매직, 행사 매대 판매직, 공장 집진기 청소, 신문 배달, 석산 발파 현장, 영화관 좌석 소독, 의류 브랜드 입점 공사, 선거 사무실 철거, 백화점 VIP 고객 대상 리프레쉬 여행 진행 보조, 추석 스팸 세트 판매, 24시간 마트 캐셔, 재수학원 국어 강사, 초등학생 글짓기 과외, 백화점 전문 택배 일까지. 그 외에도 자질구레한 단기 아르바이트까지 더하면 그야말로 내 이십 대는 아르바이트의 춘추전국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왜 이렇게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는가 하면, 우선은 내 주제보다 더 많은 돈이 필요했고 기왕이면 젊을 때 이것저것 해보자는 심산도 있었다. 밝히기 부끄럽지만 나름대로는 ‘그래도 글을 읽고 쓸 문학적인 시간은 필요하지.’라는 이유로 고정적으로 시간에 얽매이는 장기 아르바이트보다는 단기 아르바이트를 선호한 탓도 있다. 그 시간들만큼 내가 문학적이었는가를 따져보면, 역시 아르바이트든 뭐든 간에 정규직이 좋다는 생각이 든다.

매번 천직이라고 착각했다

한 가지 우스운 점은 그 많은 아르바이트들을 할 때마다 나는 ‘이야, 이거 진짜 나랑 잘 맞는데? 거의 천직인데?’라고 생각, 아니 착각했다는 사실이다. 겨우 몇 개월 해놓고서 천직 운운하는 것부터가 어불성설이고, 결과적으로 여러번 ‘천직’을 갈아치웠으니 또한 자가당착인 셈이다. 그럼에도 내가 매번 그 일들이 천직이라 착각했던 이유는 단순했다. 어떤 일이든 그 요소들 중에는 기꺼이 즐거운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판매직은 사람들과 대화하며 제품을 소개하고 실적을 올리는 즐거움이 있었다. 신문 배달이라든가 선거 사무실 철거, 공장 집진기 청소 등등의 몸으로 하는 일들은 대개 이른 시간에 일을 시작했는데, 마음만 먹으면 아침잠 정도는 얼마든지 떨쳐낼 수 있는 내 바이오리듬과도 잘 맞았다. 또 남 눈치를 보지 않고 작업에 몰두할 수 있다는 장점과 정직하게 땀 흘려 돈을 번다는 뿌듯함도 한몫했다. 가장 오래 일했던 재수학원 국어강사 일은 정말 얻은 것이 많은 경험이었다. 우선 학생들과 진심으로 교류하면서 사람을 얻었다. 항상 말이 글보다 못했던 아쉬움도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덜어냈다. 누구 앞에서든 조리있고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언변도 얻었다.

그렇게 즐거울 때마다 나는 그 일은 나의 천직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지금, 나는 글 쓰는 작가로 살아가고 있다. 이것만은 정말 나의 천직이길 바라면서.

천직의 진짜 의미

즐겁고 잘 해낼 수 있으면 그게 천직 아닐까. 흔히들 잘 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 사이의 기로에서 헤매곤 하는데, 그래서 그 갈림길 초입은 늘 북적인다던데 때마침 잘 하기도 하고 좋아하기도 하는 일을 만난다면 말이다.

하지만 10년의 아르바이트 경력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글 따위나 쓰고 앉아 있는 나로서는, 그것은 천직의 진짜 의미가 아니라고 말 할 수밖에 없다. 매번 즐겁고 매번 잘 해냈으나 아르바이트는 아르바이트로 끝이 났고, 매번 실망스럽고 매번 괴롭고 아주 가끔 행복하나 글 쓰는 일은 여전히 하고 있으니. 이제 나는 기꺼이 글 쓰는 일을 나의 천직이라고 여긴다. 책을 여러 권 낸 적도 없고, 글밥은 소박하기 그지없으며, 무슨 명문(名文)을 짓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선언한다. 글 쓰는 일이 나의 천직이라고.

그 일을 얼마나 즐기고 능숙하게 해낼 수 있는지, 물론 그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천직의 진짜 의미는 그 일의 온갖 어려움과 귀찮음, 고난과 모욕을 기꺼이 감수해낼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이기는 게임은 누구나 즐겁다. 즐거운 게임은 누구나 계속 하고 싶다. 그러나 지면서도 기꺼이 하고 싶은 것, 패배조차도 삶의 일부로 감사히 받아들이는 것, 해서 그 일을 하며 평생을 살아도 후회하지 않을 만한 것. 바로 그것이 천직이다.

자문해보자.

간혹 사람들은 천직을 찾는 것과 부와 명예를 쟁취하는 성공을 동일시한다. 더 나아가 부와 명예를 얻지 못한 사람이 하고 있는 일은 천직이 아닐 것이라는, 역 명제의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하지만 천직은 부와 명예와 필수불가결한 관계가 아니다. 천직의 필수불가결한 관계는 행복과 만족이다. 아무리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삼시세끼를 내리 먹으면 물리고, 아무리 즐겨듣는 음악이라도 24시간 내내 들으면 노이로제에 걸릴 것만 같은데 하물며 어떤 일을 평생 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결심인가. 다시 말해, 평생 동안 하고 싶은 일을, 천직을 찾아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과 만족일 것인가.

혹 천직을 찾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내가 이 일을 얼마나 즐겁게 할 수 있는가, 얼마나 잘 해낼 수 있는가’ 말고도 반드시 자문해보아야 할 것이 있다. ‘나는 이 일을 위해 얼마나 큰 좌절까지 감수할 수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평생 동안 하고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물론 최상의 시나리오는 그 모든 질문에 합당한 일을 천직으로 삼는 것이겠지만, 세상에는 나처럼 빛을 밝히기보다 어둠을 짊어지는 데 더 능숙한 사람도 있는 법이다. 이것도 천직이라면 천직이니, 누가 뭐래도 행복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