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이 점점 더 떨어지니 따뜻한 이불 속에서 나오기가 싫다. 하지만 연말이 되니 모임이 많아져 밖에서 사람 만날 일이 많아진다. 얼마 전 12월이 생일인 친구를 축하하는 자리에 나갔다. 주말 시내는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어딘가 썰렁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길거리에서 사라진 음악 때문이 아닐까? 12월이 되면 크리스마스가 한 달이나 남았어도 거리에 불빛과 캐롤송으로 울려 퍼지던 시절이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점차 거리의 캐롤송이 사라져갔다. 어떤 이들은 경기가 좋지 않으니 흥겨움도 사라져서 그렇다고 했지만 사실은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켜주던 캐롤송이 사라진 건 음원 저작권 때문이다. 일정 규모 이상의 시설에서는 음원 사용료를 지불하도록 규정되면서 비용에 부담을 느껴 음악을 차츰 틀지 않게 된 것이다. 2015년 캐롤송에 대한 규제를 풀어주었지만 여전히 거리에서 캐롤송을 듣기는 힘들어졌다.

음악뿐 아니라 모든 작업자들의 저작권은 중요한 부분이다. 음원 저작권이 생겨난 배경은 카세트테이프와 CD에 담겨 판매되던 음악이 MP3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음원 파일로 대체되면서다. 음악, 영상이 디지털화되자 P2P 사이트의 불법 다운로드 문제가 대두되며 저작권법이 강화되었다. 지금은 핸드폰으로 음악과 동영상을 어디서든 듣고 볼 수 있다. 나날이 발전하는 기술로 인해 사용자들은 점점 편리해졌지만 그것에 따라 산업이 변하고 법 제도가 함께 바뀌었다. 분명 더 좋아진 것 같은데 캐롤송이 더 이상 들리지 않는 적막한 거리처럼 마음은 자꾸만 쓸쓸해진다. 항상 이맘때쯤 친구들도 같은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나 만 흥겨웠던 때를 추억하는 건 아닌 것 같다.

2012년 여름 응답하라 1997이라는 TV 드라마가 방영되었다. 30대 초반 주인공들의 학창시절을 배경으로 지금의 주인공은 평범한 직장인이지만 90년대 그들의 화려했던 청춘 일기와 함께 그때의 아이콘, 대중문화, 사회적 이슈 등 시대적 배경이 선명하게 그려진 드라마다. 방영과 동시에 엄청난 인기를 끌며 추가로 2편이 더 제작되었고 모두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 인기는 드라마가 끝나기 무섭게 후속편을 제작해 달라는 시청자들의 요청이 있을 정도였다. 재미있는 점은 시리즈 중 2015년 겨울에 방영한 1988이 가장 근래에 방송되었는지만 드라마의 배경 연도는 갈수록 과거로 역행했다.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들을 보면 주로 아침이나 초저녁에 하는 가족 드라마나 늦은 저녁 시간에 하는 트랜디 드라마가 대부분이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금, 토 주말 어찌 보면 애매한 시간대에 방영되었음에도 엄청난 인기와 파급효과를 가져왔다. 이 드라마의 인기 요인은 여러 가지겠지만 시청자들의 마음을 강력하게 사로잡은 것은 청춘의 기억, 찬란했던 시절의 향수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기억이 있고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무언가에 의해 향수에 젖어드는 순간이 있다. 그 대상은 사진, 음악, 음식, 장소 등 다양한데 드라마에서는 그 시절을 지나온 사람이라면 모두 기억할 만한 특징을 아주 잘 살려낸 것이다. 해당 나이는 말할 것도 없고 내가 드라마에서 설정된 연령대가 아니더라도 저 때는 저랬었지 하며 모두를 추억에 잠기게 만드는 힘이 있었던 것이다.

나이가 들면 자꾸만 과거의 추억에 사로잡히는 것 같다. 파릇파릇하고 젊었던 육신이 자꾸만 초라해져 가는 아쉬움과 꿈 많고 열정적이던 시절의 반짝임이 사라져 가는 것 같은 안타까움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거 기억을 되돌아보면 모두 좋은 기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젊음의 패기로 어리석은 행동을 했던 적도 있고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나고 보니 너무 부끄러워 내가 왜 그랬지라며 얼굴을 붉힌 적도 있다. 경험이 부족한 탓에 수많은 실수를 하고 후회도 많이 했지만 청춘의 기억은 꼭 붙들고 싶어도 잡을 수 없는 과거라서 그런지 아련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