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누군가에겐 다르고, 틀릴 수 있다

 

나는 상대방이 말할 때, ‘다름’과 ‘틀림’을 구분하여 사용하는지 주의 깊게 관찰한다.

그 두 단어를 적절하게 사용하는지가 관심사다. ‘다름’과 ‘틀림’은 확연이 그 뜻이 같지 않은데, ‘틀림’으로 통용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과와 배는 ‘틀리다’로 말하는 사람이 꽤 있다. 사과와 배는 ‘다른 것’이다. 틀리고 말고 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한두 번 실수는 나도 가끔 하지만, 그것을 ‘틀리다’로 말하는 사람들은 꽤 꾸준하다.

우리네는 ‘다름’을 용인하지 않는 문화다.

물론, 시대가 변하고 세대와 문화가 많이 바뀌면서 나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한국인이라는 집단 무의식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예로부터 침략에 노출된 우리나라의 운명은 사람들로 하여금 결집하게 했고, 그것은 ‘집단주의’를 이루었다. 외세에 집단으로 대항하며 살아남았고, 품앗이를 하며 서로를 도왔다. 그러면서 ‘개인주의’는 상대적으로 악(惡)이 되었다. 남들과 다르면 이상한 것, 무례한 것, 틀린 것이 된 것이다. 지금은 과도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단주의’라는 피를 안고 태어났으면서, ‘개인주의’의 시대가 열렸는데 그 둘이 어설프게 얽히고설켜 사회적인 충돌도 많이 일어난다.

어찌 되었건 ‘다름’과 ‘틀림’을 적절하게 사용하는지 유심히 바라보는 이유는, 두 단어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다른 것을 틀리게 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다른 것을 틀리게 보기 시작하면 갈등이 일어난다. 직장은 ‘집단’이다. 혼자서는 일을 할 수 없다. 그럼에도 각 개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일을 해야 한다. 이런 특수한 상황 속에서 ‘다름’과 ‘틀림’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면, 직장 생활은 더 힘들어진다.

나와 다르다고 남을 틀리다고 규정하는 사람은, 자신은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부정하거나 모르는 것이다.

대부분은 그것을 모른다. 부정하는 사람이라면, ‘다름’과 ‘틀림’의 차이를 알면서도 일부러 ‘틀리다’라는 말을 사용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라면 나쁜 사람이지만, 모르고 사용하는 사람은 무섭다. 스스로 알지 못하면서 무의식적으로 다른 것을 틀리다고 말하며, 대상을 그렇게 규정한다면 생각만으로도 무시무시하다. 그 어떤 설명이나 논리도 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나도 ‘다름’과 ‘틀림’을 구분하지 않는 사람들을 ‘틀리다’라고 규정짓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나와 표현을 달리하는 것뿐인데, 나조차도 무조건 그들은 틀렸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때로는 정말 달라서 틀릴 때도 있다. 다르다는 것이 ‘개성’을 표방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면 그 ‘다름’도 틀린 것이 될 수도 있다.

당장, 사용하는 단어를 가지고 누군가를 재단하기보단 스스로 ‘다름’과 ‘틀림’을 잘 구분하자고 마음먹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다를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