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아니 정확히는 그놈의 그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들고 나와서 전세계를 휩쓸동안 한국은 버팅기고 있다가 결국 삼성조차 ‘아이폰보다 좋은 옴니아!’ 라는 이불을 하도 세게 차서 구멍이 날만한 헛짓거리를 한 끝에 스마트폰의 대열에 기어코 합류하게 된 이후부터, 대한민국에서는 유령이 출현해서 날아다니고 있었다. ‘융복합’ 이라는 이름의 유령이.

이거 사실 헨릭 입센의 희곡 <유령>의 패러디인데 아무도 모르겠지. 좌우간 이 유령은 최근엔 좀 잠잠해져서 괜히 가만히 있는 사람들 스트레스는 좀 덜게 되었다. 그러나 작년, 재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이놈의 ‘융복합’은 어찌나 TV에서든 신문에서든 떠들어대는지 거의 귀에서 피가 나올 지경이었다.

결국 요지는 이거였다. 아이폰이 뭐 별거냐, 그거 새롭고 신기한 기술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 그게 왜 혁신이냐, 그 원래 있던 기술들을 잘 조립해서 아이폰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탄생시킨 것 아니냐, 고거이 혁신이다 혁신, 그래, 융합과 복합의 시대가 왔다, 줄여서 융복합! 융복합을 하자! 융복합을 하자! 융! 복! 합! (진심 어떤 분야든 융복합이 화두인 주제에서는 이게 주장하는 전부였다.)

농담이 아니라 잡스가 죽은 이후에도 한참을 저렇게 떠들어대다가 마침내 새해가 밝아온 2019년 쯤이나 돼서 잠잠해졌으니 저 융복합의 망령이 얼마나 거셌는지는 사실 말을 안해도 모두가 잘 알 것이다. 모두가 학교에서 직장에서 그놈의 융복합과 혁신 때문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겠는가.

이 융복합의 절정은 ‘우리도 융복합 하자’를 넘어서서 ‘어? 니들 왜 융복합 안하냐?’ 로 가는 순간들이었다. 내가 본 블랙 코미디 중 인상깊었던 것 하나가 바로 이명박 전 대통령께서 ‘한국엔 왜 닌텐도 같은게 없냐?’ 라는 한마디를 시전하였던 것이었다. 졸지에 그 발언 1년 전에 이미 개발을 완료하고 출시했던 GP2X 라는 국산 휴대용 게임 콘솔은 기막힌 타이밍으로 인해 마치 그 발언 때문에 개발된것마냥 ‘명텐도’ 라는 별명을 얻어야했다.

나는 굳이 전 대통령을 깎아내리려는 게 아니다. 이런식의 위로부터 아래로 향하는 ‘주입식’ 창의력 갈굼은 예전부터 있어왔고 적폐청산을 외치고 있는 지금도 하나의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핵심은 ‘한국엔 왜 닌텐도가 없나?’는 물음이 나온 지식경제부 방문 일정에서는 그 물음에 대답할 만한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는 것이다. 게임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것은 둘째치고, 대한민국처럼 게임을 ‘사회악’으로 몰아가는 나라도 또 없다. 여성가족부는 지속적으로 게임산업을 악으로 규정하고 규제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게임업계에는 게임중독을 치료하기 위한 기금을 마련해야 한다며 세금을 걷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닌텐도 같은 창의 혁신 기업을 원한다? 애를 가둬놓고 아무것도 못하게 패면서 삥은 뜯어가고 동시에 판검사도 못하냐고 갈구는 꼴이다. 양심적으로 셋중에 하나만 하는게 맞지 않을까.

대한민국의 모든 위에서부터 아래로 흐르는 정책이 다 이런식이다. 특히 나라에서 주도한다고 될게 아닌 분야에서 다 그렇다. 애당초 게임산업 자체가 기형적으로 흐르고 있고 더군다나 시장의 주도권이 당시에는 이미 콘솔은 사양세고, 온라인으로 흐르고 있었다. 지금은 더더욱이나 세월이 흘러서 온라인보다도 모바일로 주도권이 넘어간 상태이다. 시장은 빠르게 변화하고, 기업이나 창작자들의 작업은 규제에 막혀있고, 과도한 노동이나 임금체불등의 현장에서 더 심각하게 요구하는 문제들이 만연한 와중에 ‘니네 닌텐도 안하냐?’ 식의 접근은 공허할 뿐이다.

융복합 역시 마찬가지다. 삼성은 심지어 나라에서 시켜서도 아니라 단순히 먹고살고 살아남으려고 기업 차원에서 융합과 복합 혁신을 위해 그토록 노력했건만, 결국 삼성이 내놓은 것은 퍼스트무버가 아닌 패스트 팔로워였다. 그덕에 안드로이드 생태계를 강력하게 구축하고 갤럭시 라는 희대의 명 스마트폰 시리즈를 탄생시켰지만, 그게 혁신은 아니었다.

현장의 실무자들이 하려고 해도 잘 안되는게 이 융합 복합 혁신인데 나랏님들이 시킨다고 될 일이 있나. 애당초 애플의 성공사례랍시고 분석하는 것들도 잘 보면 스티브 잡스라는 인성 파탄자의 위인전을 분석하는 것에 다름이 없었다. 애플의 컴퓨터 시리즈는 잡스의 아이디어였지만 사실상 스티브 워즈니악이 혼자 다 만든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 워즈니악이라는 천재 공돌이가 나오기까지를 가능케 한 미국의 기초 공학 수준이라든가, 교육의 질이라든가, 혹은 한국의 기술 천시와는 비교되는 미국의 기술 우대, 그리고 잡스의 도전 정신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실리콘 밸리와 신규 창업장벽은 한국과 비교하기가 민망한 수준이었다. 실리콘 밸리로 대표되는 벤처기업들의 모험성이 어떤 환경에서 나오는지, 한국의 기업 환경과 그들이 얼마나 다른지는 이젠 굳이 입밖에 내어 설명하는게 입이 아픈 수준이다. 중소기업의 특허를 빼먹는 대기업의 횡포가 아직까지도 공공연한 상황에서 ‘니네 애플 안하냐?’ 같은 질문에는 대답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 주입식 융복합의 손길을 피할 수가 없었던 것이 바로 문화예술계이다. 재작년 쯔음인가 종로쪽에 CKL Stage 라는 희한한 이름의 극장이 개관했고, 또 개관 공연으로 해외 아티스트들이 와서 공연을 하는데 그게 무료라는 안내 메일이 왔길래, 호기심 반 의심 반으로 이 공연을 보러 갔다. 공짜라는 것도 크긴 컸다. 그리고 가자마자 알게된건 이 극장이 문화체육관광부의 소유라는 것이고, 이들이 부른 아티스트들은 하나같이 주제가 ‘기술과의 융합’ 이었다. 두 작품이 공연됐는데 두 작품 모두 공연 안에 직접적으로 ‘로봇’이 나왔다. 거칠게 이야기하면 로봇과의 연극, 로봇과의 무용, 두 작품이었다.

나는 이 공연들을 보고나서, 공연의 질과는 별개로 이 프로그램의 기획에 대해서 정말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을 느꼈다. 그것은 정확히 문체부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야, 니네는 로봇 왜 안하냐?’ 라는 이 주입식 융복합의 목소리. 프로그램 기획부터 초대권이 발송된 사람들의 목록에 극장의 주인까지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진 이 주입식 목소리가 너무나도 노골적이었기에 더 어처구니가 없었다. 과연 무슨 얘기들이 오가나 보려고 관객과의 대화에도 참여를 해봤는데, 두 작품의 아티스트들은 한명은 대학 연구기관과 지방자치단체와 기업에서 적극 지원을 받았고, 한명은 사비로 들였지만 기업과의 긴밀한 협조가 있었다. 일단 그 비슷한 수준의 전문 로봇 기업이 없고, 딱히 아티스트들에게 협조를 해줄만한 연구기관과 기업도 없는 한국의 상황과는 역시나 비교가 불가했다. 프로그램 기획을 한 사람이 누군지는 몰라도 불쾌하기가 이를데가 없었다. 아마 이걸 기획한 사람은 한 몇 년만 지나면 한국에서도 로봇과의 융합 복합 공연이 막 우후죽순 시도되고 생겨나리라 생각한걸까? 미안하지만 대한민국에 로봇이라고는 목소리 인식해서 티비 채널 바꿔주는 애들밖에 없는데 퍽이나 로봇 융복합 공연이 생기겠다.

몇 년전부터 서울 문화 재단이 야심차게 밀고 있는 프로젝트도 나의 불쾌감을 더했다. 바로 ‘서커스’ 워크숍이다. 이것도 어느 순간부터인가 다시 피지컬 시어터가 스멀스멀 유행하고 해외의 컨템포러리 작품들이 무용과 연극의 경계가 무너지는 것들이 많이 나오자 갑자기 어느순간 생겨서 지금까지도 쭉 밀고 있다. 그런데 그 이후로 대한민국 공연계에 서커스, 혹은 피지컬이 중시되는 공연이 많아지긴 했던가? 내 기억엔 전혀. 그리고 서커스란 것이 유럽과 미국 등 백인 중심의 선진국(이자 구 열강)에서는 뿌리깊은 역사를 가지고 꾸준히 발전해온 것들이고 현재까지도 계속 공연 발전되온 형태이지, 한국처럼 동춘 서커스 말고는 전멸해서 내세울 것도 계승 발전된 것도 더 이상 보는 사람도 없는 환경과는 비교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꼭 서커스를 해야 컨템포러리인가? 도대체 한국 공연 예술인이 하고 많은 것들 중에 서커스를 워크숍으로(더군다나 국민 세금으로 서울 문화 재단에서) 배워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서커스가 아니면 수준높은 신체 움직임을 가질 수가 없는 건지? 서커스 말고도 연극과의 경계를 허물 수 있는 신체 움직임은 이미 한국에서 많이 하고 있는 현대 무용을 포함해서 너무나도 많이 있다. 서커스 같은 생소한 것 말고도 아시아 권에는 이미 수준높은 공연 형태의 신체 움직임이 산재해있다. 인도네시아의 카타 칼리 까지 갈 것도 없다. 중국의 경극도 있고, 일본의 노와 분라쿠도 있다. 한국에 이미 한국 무용과 탈춤이 있다. 우리 공연 안에서 이미 우리것도 제대로 녹여내지 못하고, 몸의 움직임을 이용한 다양한 시도 자체가 일어나지 않고 있는데 대뜸 서커스를 이식한다고 그게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 물론 아직까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 다만 서커스를 할 줄 아는 배우가 많아졌을 뿐. 근데 그러면 뭘 하나, 서커스가 융합된 공연이 있어야 그것도 발휘가 되는거지. 그리고, 하면 관객들이 무조건 보러 와준대나?

새해에는 좀, 이런 위로부터 아래를 향하는 주입식 명령 하달이 조금 덜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제는 이런 수직적인 명령 하달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런 뭔가 가르쳐보겠다는 태도 또한 버렸으면 좋겠다. 현장의 숙련자들이, 더 대우받고 존중받고, 현장의 의견이 최소한 어느정도 이상은 어느정도 반영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더 풍성하고 다양성이 있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