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게임의 명 대사다. 너는 아직 준비가 안됐다. 아마 World of Warcraft 에 나오는 무슨 캐릭터의 대사였는데. 솔직히 그 게임 안해서 잘 모르겠다. 다만 이 문구가 하나의 meme 으로 써졌던 건 아주 잘 알고 있다. 아마 어느 던전에 들어가려고 하면 레벨이 맞지 않을 경우에 이런 대사가 나왔던 것 같은데, 아니었나 그냥 그 캐릭터와의 싸움에서 지면 나오는 대사였나.

내 인생을 돌이켜 보건데 나는 보통의 경우에는 준비가 안됐다는 생각을 잘 안했던 것 같다. 예를 들면 시험 공부는 안해갔지만 무조건 시험 점수는 잘 나왔으면 했다. 수학은 못하지만 찍어서라도 점수가 기적적으로 1등급이 나왔으면 했다. 영어 같은 경우도, 단어는 100개도 못외웠지만 점수는 항상 잘 나왔으면 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무슨 시험을 치든지간에 항상 준비는 턱없이 부족했지만 점수는 잘 나오기를 바랬다. 내가 준비가 안됐다는 생각 자체를 안했다고 한 것은 바로 그런 의미이다. 생각이 있었으면 ‘준비가 안됐으니, 이번엔 잘 안 나올거야, 그러니 다음엔 준비를 더 잘하자’, 라는 과정으로 이어졌겠지만 생각 자체가 없으니 그냥 무조건간에 점수가 잘 나오기를 바랬던 것이다.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답은 간단했다. 난 그냥 맞기가 싫었던 것이다. 난 선생님한테 맞는 게 싫었고, 집에 가서 또 맞는 건 더 싫었다. 난 지금도 맞는 게 싫은데, 오죽 맞는 게 싫으면 아직도 조금 험악한 상황 같은 게 벌어질라 치면 무의식중에 ‘쟤가 때릴 것 같으면 맞기전에 내가 먼저 때려야지’ 하면서 상대방 급소와 때릴 각도 같은 걸 찾고 있는 것이다. 농담이 아니다. 물론 나는 실제 싸움을 해본적이 단 한번도 없지만… 항상 맞고 살았던 호구의 삶은 이런 것이다. 아마 실제로 싸움이 내인생에 벌어질 일도 없겠지만 그런다고 내가 자신있게 주먹을 휘두를 수 있을지는 미지수인 것이다.

시험을 못보고 점수가 못나오면 맞았는데, 무언가를 하지 않는데 맞으니까, 일단 근본적으로 그 무언가가 싫어졌다. 최초엔 수학이었다. 중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담임 선생님이 전교에서 ‘잘 치기로’ 유명한 수학 선생님이었다. 나는 사람이 사람 발바닥을 몽둥이로 그렇게 세게 때릴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정말 공포 그 자체였다. 심지어 첫날에는 깜빡 잊고 실내화를 안가져갔는데 신발도 신고 있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나는 발바닥을 미친 듯이 처맞고, 신발도 신지 못한 채, 양말만 신은 발로 2월달 차가운 시멘트 교실 바닥 위에 서 있었다. 당시 14살이었는데 진짜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그러자 담임 선생님은 ‘남자새끼가 운다’며 다시 교탁 앞으로 불러내서 머리엔 원펀치를, 뺨에는 따귀를 때린 뒤 ‘쳐 울면 죽여버리겠다’ 고 하며 다시 자리로 돌려보내… 지 않고 다시 교실 뒤에 서 있게 했다.

훨씬 더 아프고 훨씬 더 눈물이 나려고 했는데 진짜 ‘죽기 싫어서’ 버텼던 기억이 난다. 중학교 1학년을 그렇게 보내면서, 난 다시는 맞지 않으려고 미친 듯이 수학을 공부했다. 정확히는 수학 숙제를 미친 듯이 했다. 그리고 수학 수업때마다 문제를 풀어야 했기 때문에 진짜 무슨 산업용 계산기처럼 공식을 머리에다 박아놓고 숫자만 바꿔가며 혼자 응용해서 풀어댔었다. 그 중학교 1학년 동안 수학 성적은 내 인생 전체를 통틀어 가장 높았었다.

그렇게 1년을 버티고 났더니 운이 좋아서 2, 3학년 때는 수학 선생님이 아예 다른 선생님이었다. 근데 문제는, 내가 근본적으로 수학을 싫어하게 됐다는 데 있었다. 생각을 조금만 해봐도 자명했던게, 안하면 죽음의 공포를 느낄 정도로 처맞게 되고, 그게 싫어서 공부를 하더라도 이유가 죽음의 공포를 피하기 위해서인데… 그게 즐거울 리가 없었다.

그렇게 해서 버릇이 되면 좋지 않으냐고 반문하는 인간들도 분명히 있을 것인데… 얼마전에 인상깊게 봤던 정신과 의사의 말이 있다. ‘우울한 기분은 절대 성격이 될 수 없다. 우울함이 길어지는 경우라면 그것이 본인의 성격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특정한 기분은 절대로 성격이 될 수가 없다.’ 마찬가지 폭력이나 죽음에 대한 공포, 극도의 스트레스와 긴장, 이런 것들은 버릇이나 습관이 될수는 있지만 성격이 될 수는 없다. 군대만 갔다와도 알수 있을 것이다. 군시절의 버릇이 평생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해서 나는 중학교 1학년 이후 수학을 아예 놔 버렸고, 퍼져버렸다. 진심으로. 2, 3학년 때는 선생님이 좀 널널했었다. 딱히 수학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과목이. 그리고 동시에 재미도 없었다. 사실 나는 중학교 1학년때 유독 수학 시간이 죽음의 공포에 거의 질식해 지릴 정도였었지만, 그 덕에 모든 ‘공부’ 란 것에 같은 스트레스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모든 과목들의 성적이 다 수직으로 동시에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중학교 2, 3학년 과정은 기초중의 기초라고 할 수 있다. 이 기초를 놓쳐버리자, 나는 다시는 성적을 회복할 수가 없었다. 오로지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굳이 교과서를 통하지 않았어도 훌륭한 공부를 할 수 있는 ‘언어’. 그러니까 ‘국어’ 과목뿐이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나는 계속 공부를 싫어했다. 단한번도 좋아했던 적이 없었다. 좋아했던 적이 없으니, 어떻게 공부를 해야하는지도 몰랐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중 하나인데, 공부를 좋아하지 않으면 절대로 공부를 하는 방법을 알 수가 없다. 공부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성적을 올리는 방법은 학원이나 과외를 통해서 억지로 주입을 받는 경우밖에 없는데, 나는 중학교 2학년 이후로 어떤 학원도 간 적이 없었다.

공부를 좋아하지 않는데 혼자서도 공부하는 법을 알아서 잘 해낸다? 말도 안되는 일이다. 야구를 좋아하지 않는데 혼자서 야구 트레이닝법을 익혀서 홈런 타자나 강속구 투수가 된다는 거나 똑같은 말이다.

내게 필요한건 다시 기초로 돌아가서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좋아하지 않으니 그 방법을 알 리가 없었고, 알았다 한들 좋아하지 않으니 실제로 실천했을 리가 없었다. 눈앞에 있는 교과서를 펴놓고도 잠을 자는데 혼자선들 그게 될까.

그러니 나는 매번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는 상태에서 시험을 쳤고, 시험 점수는 잘 나오기를 바랬다. 마라톤을 나가서 걷기만 하는데 기록은 2시간 10분대가 나오길 바라는 것과 같았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한국 공교육 아래서의 대부분 사람들이 그랬겠지만, 우리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하며 12년을 보내왔었다.

그러던 내가 공부를 좋아하게 된건 대학에 가고부터였다. 나는 글쓰기가 좋았고, 이야기를 읽는 게 좋았다. 그래서 이야기와 글쓰기에 대해서 공부하는 게 너무 재밌고 좋았다. 글쓰기가 너무 좋아서, 너무 잘하고 싶었기 때문에, 나는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를 알 수가 있었다. 그래서 실제로 나는 공부를 잘 했고, 실력이 빨리 늘었다.

헌데 어느날, 딱 뭔가가 막혀버렸다. 나는 정말 공부를 잘했는데, 나는 정말로 글쓰기가 많이 늘었고 잘했는데, 어느날 막혀버렸다. 깨고 나갈수가 없었다. 소재도 잘 잡고, 문체도 안정적이고, 학교의 누구보다 많이 읽고 많이 쓰는데, 왜 그럴까? 알수가 없었다. 당시 선생님은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시간이 해결해 줄거야. 나이가 좀더 들면 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왜? 단지 나이가 들어서 해결할수 있는 거면 지금도 해결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경험? 경험인가? 닥치는대로 경험을 해야되나?

그때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정말 경험주의자가 되어서 뭐든지 닥치는대로 해댔다. 그 성향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역시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막혔던 건 쉽게 뚫리지가 않았다.

궁금증은 조금 나중에 다른 곳에서 풀렸다.

탱고를 2년, 태극권을 3년을 배우고 있다. 둘다 몸을 쓰는 거라는 공통점이 있기도 하지만, 거의 매일 쉬지 않고 꾸준히 했다는 공통점도 있다. 최근에 아주 동시에 두 분야에서 막혔던 벽이 딱 뚫려서 한단계 올라간 경험이 있었다. 정말 그 벽이 딱 뚫림과 동시에, 아예 다른 세상이 펼쳐진 느낌이었다. 절벽에 매달려서 올라가려고 낑낑 댈땐 전혀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한계단 올라서니 너무나도 훤히 보였다.

그런데 그 한계단 올라서게 된 결정적 계기도 다 선생님들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딱 이것만 바꿔보면 좋겠어, 혹은 그렇게 하는게 아니라 이렇게 한번만 해봐. 그 딱 한순간이었다. 벽이 무너지는 순간은.

너무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러다 곰곰이 생각을 해 봤는데, 그 한마디 가르침은 사실 별다른 게 아니었다. 혹은 전혀 새로운 말도 아니었다. 다 예전에, 1년전에, 혹은 2년전에, 사실은 불과 몇 달전에도 반복해서 얘기한 것들이었다. 그때의 나는 뭐가 문제였길래 그 한마디를 알아듣지 못해서 올라서지 못했던 걸까.

아마 ‘준비가 안돼서’ 지 않았을까. 결론은 그것밖에 낼 수가 없었다. 방아쇠를 당긴다고 무조건 총알이 나가는게 아니다. 방아쇠는 공이를 때려서, 공이가 다시 총알의 뒷부분을 때려야 하고, 그 뒷부분이 폭발해서 탄두가 발사된다. 일단 총알이 있어야 하고, 총알에도 화약이 충분히 들어있어야 한다, 약실도 튼튼해야 하고, 기계는 정교하게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총은 발사되지 않는다.

그리고 준비가 다 된 것 같지만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때로는 단순히 경험만 많이 쌓았다고 다 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인간이고, 어쩔수없이 시공간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가기 때문에, 때로는 적절한 시간의 퇴적이 있어야 비로소 완벽한 준비가 되는 것이다. 그 한걸음 올라서기 위한 준비가.

예전에는 참 싫어했던 ‘나이 먹으면 될거야’ 라는 말이, 이제는 나도 스스럼없이 누군가에게 해주는 위로나 충고가 되었다. 글쎄, 이런말을 듣고도 꼰대라고 하는 사람이 있을수도 있겠지만, 때로는 정말로 시간이 필요한 때도 있는 법이다. 김치는 다 준비가 되어도 시간이 없으면 계속해서 겉절이일 수밖에 없듯이.

올해 시간이, 차곡차곡 내게 잘 쌓이길 바라는 바이다. 그리고 당신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