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작년에 서울 문화 재단 최초 예술 지원 창작 준비금을 신청했는데 운좋게 받았고, 얼마 안되는 금액(200만원이 얼마 안된다고 하면 욕할 사람도 있겠지만 이걸로 공연을 하기엔 말도 안되는 금액이다)이기에 낭독극이라도 한번 하려고 했었다. 근데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니 내가 작가로서 마지막 연극을 한 게 2015년, 학교를 졸업 하기 전 2학기. 그나마도 그때는 학교 제작이라 설렁설렁 연습을 다녔었고 사실 내가 한 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냥 글만 열심히 써서 넘겨준 다음에는 그냥 지들끼리 놀도록 방치했을 뿐이지. 사실 별로 맘에 들지도 않았었다. 그래도 내가 한 게 없으니 말을 안했다만.

좌우간에 그게 벌써 해가 넘어갔으니 햇수로는 4년인데, 개월수로만 해도 36개월이 넘어가는 중이니… 솔직히 조금 민망했다. 물론 그 중간중간 친구들 작품을 도와준 것도 있고, 아예 팀원으로 참여해서 각색이랑 드라마터그까지 했던 공연(2017년 연극 <불구자들>)도 있었지만, 그것들은 내가 쓴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어디 가서 직업이 뭐냐고 하면 아주 당당하게 ‘극작가입니다.’ 라고 하면서 산 지가 4년인데, 그 4년동안 내가 쓴 작품 하나 공연으로 올리지를 못하고 있었다. 뭐 그동안 대본도 열심히 썼고, 자기 계발 한다고 중국어 공부에, 학사 학위 따고, 아르헨티나 탱고 배우다가 대회도 나가고, 태극권 배우다가 우슈 3단까지 땄지만(더럽게 많이 하긴 했네 뭘), 극작가로서는 아무것도 활동한 게 없었다. 기껏해야 중간중간 연극 많이 보고, 연극 평 많이 쓰고, 공부 많이 한 것 정도? 근데 그것도 너무 그것만 하다 보니 주변에서 “극작 관두고 평론으로 갈아탔냐?” 고 하는 말들이 워낙 많았다. 뭐 다들 농담으로 하는 말이었겠지만,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고, 평소 자존심도 세던 나라서 그런 것들을 다 은근 담아두게 됐었다.

특히나 짜증났던 케이스가 주변에서 알짱거리면서 “야, 그냥 저질러야 돼. 너무 생각이 많으면 안돼. 넌 지금도 너무 늦었어.” 라고 훈수나 두던 애들이었는데, 아니 한놈은 무용하는 놈이라 공연 만드는데 돈 들 게 하나도 없었다. 지 몸뚱이 하나만 가지고 안무 짜서 어디 대회 참가 신청해서 나가기만 하면 되는 놈. 다른 한놈은 배우라서 맨날 페이만 받고 공연해서 지가 지돈내고 공연 만들어본적 단한번도 없는 놈. 에라이, 다 망해버려라 재수없는 놈들. 퉤.

좌우간 그런저런 이유로 다시금 생각을 해 봤을 때, 내가 과연 이런 지원금을 200만원이라도 다시 받을 수 있는 날이 있을까? 라는 질문에 나는 섣불리 YES 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래, 이때 아니면 지를 수가 없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일단 극작간데, 연극을 내 작품으로 좀 해보고 싶었다. 진심. 그래서 결국 질렀다. 사비를 조금(많이) 들여서, 아예 대학로 극장과 계약까지 해버렸다. 연습실도 계약 끝. 이제 날짜도 나왔고, 돈도 질렀겠다, 같이 연극 할 친구들만 모으면 됐었다.

됐었지… 됐었는데…

극작가라는 직업이 얼마나 세상 피곤하고 슬픈 직업인지를 이번에 새삼 되새김질 할 수 있었다. 소설가나 시인들이야 출판만 하면 그만이지, 극작가의 대본이 관객을 만나려면 일단 관객 이전에 배우들을 만나야 된다. 그런데 내가 배우들을 만나 가면서 간과했던 것이 하나 있었다.

졸업한 직후의 학생 연기자라면 충분히 페이가 없는 상황에서도 연습과 공연에 참여할 여지가 있었다. 뭐 페이 없는 공연이 조금 부당하더라도 당장 제작 투자자인 사람(나)부터가 페이 없이 사비를 수백 들여서 하는 공연이고, 또 학교 다니면서 공연하는 것 역시 페이 없기는 매한가지니까. 그리고 졸업한 직후기 때문에 뭐라도 밖에서 공연을 해서 프로필에 한줄 쓰고 싶은 게 졸업한 학생 연기자의 욕심이고, 그렇게 밖에서 하나라도 하면 예술 활동 증명이 돼서 ‘예술인 패스’ 가 나오기 때문에 그렇게 밑지는 장사도 아니었다.

그런데, 내가 일단 같이 하고 싶었던 배우들은 다 나처럼 ‘졸업한 지 2년 혹은 3년차’인 애들인 게 문제였다. 졸업한 지 2년 혹은 3년이 된 배우들의 특징이라면 일단 대부분이 독립해서 혼자 혹은 룸메이트와 거주하는 자취생이라는 것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일단 자취생들은 가장 급한게 바로 매달 꼬박꼬박 ‘월세’를 내는 거였다. 당연하게도 월세를 다달이 갖다 바치려면 일정하게 돈이 나올 구멍이 있어야 되는데, 그래서 이 배우들, 그러니까 주변에서 내가 섭외를 좀 해보려고 했던 친구들은 죄다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돈을 버는 데 시간을 많이 써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허나 내가 암만 사비로 수백을 써봤자, 정작 배우들의 페이는 10원짜리 한푼도 줄 수가 없는데, 얘네들이 나랑 같이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나는 연습실 대관도 최대한 돈을 아껴야 했기 때문에 매일 낮 12시부터 연습 시작 시간을 잡았는데, 이러니 평일 낮에 아르바이트도 하지 못하고, 더군다나 페이도 없이 하루종일 나와 같이 연습실에 틀어박혀 8주 연습 1주 공연을 하려면, 친구들은 월세를 못낼 처지가 되는 것이었다.

주변 친구들이 하나 둘 씩 난색을 표하며 나가 떨어졌고, 나는 정작 돈은 돈대로 써놓고 이러다 배우 캐스팅 하나를 못해서 정작 연습은 시작도 못하는거 아닌가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다행히 캐스팅 문제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졸업 언저리에 있는 몇 년간 연락 한번 안했던 후배까지)에게 연락을 돌리고, 또 사람이 사람을 연결하는 식으로 어떻게 해결이 되어갔다. 그러나 이 캐스팅 과정에서 이 졸업한지 2, 3년차가 되는, 이 애매한 시간대의 청년 예술가들이 어떻게 삶에 부딪치는지 몸소 취재가 된 셈이었다.

사실 예술 계통의 경우는 한 번 데뷔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이 한 번이 마중물이 되는 경우가 꽤 있다. 물론 꽤 있다고 해서 다 그런 건 아니다, 나도 나름 데뷔는 2012년도에 했지만 그게 마중물이 되었으면 쉬지 않고 연극 작업을 했어야 정상이니까. 데뷔를 했어도 그 이후에 뭐가 없는 사람은 이렇게 다시 밖에서 작업을 이어나가기가 힘든 법이다. 어쨌거나 이제 막 얼굴을 알려가고, 자기 자신을 알려가려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 시기가 정말 힘들었다. 나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운 좋게 잘 풀려서 계속 작업을 이어나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똑같이 열심히 해도 안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인 것이다. 그리고 제일 열받는게 앞서 말했듯이, 운좋게 잘풀린 인간들이 잘 안풀리는 인간들에게 훈수두는 거고. 이렇게 생각하니까 더 열받네. 진짜 망해버려라.

그리하여, 결국 팀은 꾸려졌고, 연습날짜도 시간도 장소도, 공연 날짜도 장소도 시간도 다 정해졌다. 이제 4월 둘째주면 드디어 4년만의 내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공연이 올라가는데… 사실 아직 연습에 들어가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저 무덤덤할 뿐이다. 그저 생각대로 무사히 잘 흘러가기만을 바랄 뿐.

다만 아쉽고 미안했던 건 9명이나 되는 배우진을 꾸려놓고 페이 한 장을 못 준다는 것이었다. 물론 내가 사비로 다 내기 때문에 전에 했던 작업처럼 ‘회비로 몇만원씩을 걷네’, ‘단체 아르바이트를 해야되니 주말에 몇 명이 어디를 가야 되네’ 같은 구질구질한 일은 안 시키지만. 그래도 미안한건 미안해서, 여기저기 또 돈 나올 구멍이 어디 없나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찾은 게 ‘K 창업 지원’ 이라는 국고 보조금 지원 사업이었고, 하나는 내가 창작 준비금을 받았던 ‘서울 문화 재단’ 의 창작 지원금. 창작 준비금과 지원금의 차이는, 준비금은 ‘이런 작품을 쓸 계획입니다’ 라면서 200만원을 받아가는 거고, 지원금은 ‘이런 작품을 공연까지 올리겠습니다’ 라면서 최대 1500만원을 지원받는 것이다. K 창업지원의 경우는 서초구민을 대상으로 하는 예술 계통 창업 아이디어 지원 프로젝트였다. 구체적으로 읽어보니 실질적으로 내가 지원할수 있는 분야는 아닌 것 같았지만. 일단 내가 하는 건 공연이지 어떤 아이디어 사업같은 게 아니니까.

정권이 바뀌면서부터, 특히 작년부터 서울시에서 가장 많이 돈을 뿌리고 있는 게 바로 ‘청년’과 ‘창업’ 이라는 키워드라고 듣기는 했다만, 정말로 여기저기 국고 지원금이 돌아다니는 게 피부로 느껴졌다. 특히나 서울 문화 재단의 사업은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해마다 지원규모나 사업의 세부사항이 커지는 느낌이었고. 나름대로 정부나 지자체 차원에서 청년들에게, 도 청년의 창업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았다.

다만 내가 서울 문화 재단에서 약소하게나마 창작 준비금을 타서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입장이지만, 조금은 편치만은 않은 것도 있었다. 바로 뭐든지 돈을 줘서 해결을 하려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당연하지만 청년 창업을 하겠다는 사람들에게 지원금을 바로 꽂아주거나, 예술을 하겠다는 서울시 청년 예술가들에게 지원금을 주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고 보여진다.

사실 내가 진짜로 바라는 것은, 서울시 청년 예술가들이 ‘굳이 지원금 같은 거 받지 않더라도’ 예술 활동을 하기에 적합한 환경이 되는 것이다. 서울시가 그런 환경이 되려면 청년들의 주거, 경제활동, 그리고 예술활동, 거기에 더해 서울시 거주민들의 삶과 예술의 관계 같은 것들이 근본적으로 재설정되고 탄탄하게 정비가 되어야 한다.

청년 예술가들의 문제처럼 청년 창업가들의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창업 하겠다는 청년들의 아이디어를 심사해서 나랏돈을 영수증 일일이 떼어 가면서 귀찮게 해가며 돈 주고 생색내기 보다는(예술 지원사업도 그렇고 그렇게 해서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보장도 없다), 그런거 없이도 청년들의 창업 활동이 활발해질 수 있는 허브나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더 근본적인 노력을 했으면 한다.

아직은, 아직은 결과에 투자하는 것 같다. 앞으로는 좀더 근본에 투자를 했으면 한다. 10년뒤에, 나는 청년이 아니겠지만(법적으로는, 그때도 마음은 청년이겠지만), 10년뒤의 청년 예술가나 창업가들은 나처럼 정부에서 영수증 떼어가는 귀찮은 나랏돈이 아니라, 정부에서 잘 구축해놓은 허브와 시스템 속에서 편안하게 또 모험적으로 도전을 하며 역동적으로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