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의 종류

‘열정’이란 말은 뜨겁다.

듣기만 해도 온도를 전하는 이 단어는, 그래서 매력적이다. 또한,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내 맘속 어딘가에 있는 장작의 불씨가 꺼진 것은 아닌지. 한 동안 나는 너무나도 무기력하게, 그러니까 뜨겁지 않게 살아온 것은 아닌지. 뜨겁지 못했다는 생각은, 신기하게도 스스로를 반성하게 하며 마음속 온도를 체크하게 한다.

살아오면서 나는 얼마나 뜨거웠나를 돌아본다.

다행히 뜨거웠던 적은 있었다. 그런데 그 빈도를 보자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더불어, 그것의 지속 시간을 되새겨보면 괜스레 부끄럽다. 바람에 날리는 벼와 같이, 나는 이리저리 휘둘리며 그저 잠시 그 불꽃을 피웠다가 사그라들었던 것 같다.

흔히들 열정은 나이가 들면 사라진다고 한다.

스스로를 돌아보건대, 그 말은 맞으면서도 틀리고 틀리면서도 맞다. 단정 지을 수 없단 이야기다. 오히려, 열정의 사그라듬을 가늠하기보단, 열정의 종류에 대해 고찰한다. 어렸을 때의 열정과 지금의 그것은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의 열정은 ‘불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스파크’에 가깝다. 불꽃은 여기저기서 자동으로 튄다. 굳이 내가 붙이지 않아도, 어디선가 튄 정전기만으로도 충분했다. 뭔가에 영감을 받았다 싶으면, 나는 이미 불타고 있었다. 순간의 감정이기도 하고, 뜨거움이기도 했던 그 열정은 이미 나를 일으켜 세우곤 했다. 문제는 가야 할 방향도 없이 활활 탔다는 것이다. 이미 불타고 있었지만 ‘무엇’을, ‘왜’ 해야 하는지는 몰랐다. 무언가에 영감을 받고 벌떡 일어난 것은 좋았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않았다. 오히려 그러기를 반복하다 보니 ‘열정’의 온도에 무뎌졌다. 지금의 뜨거움이 다음의 뜨거움을 보장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는, 나는 열정에 있어 ‘불꽃’ 보다는 ‘장작’에 좀 더 집중한다.

당장 불을 붙여야만 움직일 수 있을 나이는 지난 것이다. 지금까지 쌓아온 경력과 경험, 그리고 풍화된 마음은 쉽사리 요동하지 않는다. 내가 불꽃을 놓든, 어디로부턴가 불꽃이 날아오든 나는 그것을 함부로 붙이지 않는다. 그보다 먼저 ‘장작’을 본다. ‘장작’은 충분히 쌓여 있는지, 쉽사리 꺼지거나 어느 정도의 온도에 도달할 때까지 부족한 것은 아닌지. ‘장작’은 많은 것을 함축한 의미다. ‘경력’, 경험’, ‘역량’, ‘꾸준함’, ‘앞을 내다보는 시야’, ‘삶에 대한 관점’ 그리고 ‘자아실현’ 등. ‘장작’이 (어느 정도라도) 준비된 뜨거움은, ‘불꽃’에만 의지한 그것보다 오래간다.

꾸준함이 부족했던 내가, 글을 쓰고 책을 내는 것이 좋은 예다.

젊었을 땐, 그것을 하고 싶었지만 못했다. (물론, 젊어서도 하는 훌륭한 사람들이 많다. 나보다 나은 사람들이다.) ‘불꽃’을 뒷받침할 ‘장작’이 없었던 것이다. 의지도, 꾸준함도, 책을 왜 내고 싶은지에 대한 목표도 없었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지금은 어느 정도의 ‘장작’이 마련된 것이고, 그 온기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바랐다. 그래서, 나는 불을 놓아봤다. 계속해서 활활 타 ‘열정’을 자극할 것인지, 나는 확신을 하지는 못했지만 방향을 설정한 것에는 스스로를 기특해하며 그 온도를 마주했다. 그리곤 그 글들이 쌓여, 내 이야기가 되고 책이 되고 내가 그토록 원하던 누군가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생산물’이 되었다.

누가 나를 뜨겁게 하는가. 그게 나인가. 남인가.

나는 왜 뜨거워지는가. 왜 뜨거워야 하는가.

나는 항상 뜨거울 수 있는가. 무엇을 위해 그래야 하는가.

어렸을 땐 내가 좋아하는 일에만 뜨거웠다면, 세월이 흐르니 해야 하는 일에도 뜨거울 줄 알게 되었다.

남에게 자극받아 뜨거워진 적도 있지만, 그것이 싫다는 오기로 자가발전을 하기도 한다.

‘열정’은 무조건 뜨거워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뜨거운 마음과 냉철한 이성이 만나, 적정의 온도를 만들어 꾸준하게 오래가는 것. ‘불꽃’ 보다는, ‘장작’에 초점을 두고, ‘열정’을 불태우기 위해선 무엇을 먼저 준비하고 왜 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내가 가진 열정의 ‘종류’를 되짚어 보고, 당장 일어서야 할 때와 꾸준히 오래갈 때를 구분해야 한다. 쉽지 않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슬슬 감이 오기 시작한다.

물론, ‘열정’이 불타올라 가슴 두근 대는 그 느낌은 젊었을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열정’이란 말이 뜨거우면서도 매력적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