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책장에는 당신이 있다

 

정리라는 행위를 하다보면 의외로 얻는 것이 많다. 서랍 구석에 박힌 500원 짜리 동전을 발견한다던가, 계속 찾아 해맸던 카드나 회원권, 쿠폰 등도 다량으로 발견할 수 있다. 때로는 얼굴도 가물가물한 사람들의 사진을 발견할 때가 있는가 하면, 숨겨놓고서도 까먹은 비자금이나 용돈 일부를 재수좋게 찾아낼 수도 있다. 적게는 악세사리부터 많게는 기억과 추억까지 함께 소환된다. 그래서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행위가 묘하게 조우하는 단 하나의 교착점, 그것이 ‘정리’ 다.

내게는 책을 꽂는 나만의 규칙이 있다. 나는 책에다 구입한 날짜와 구입처를 적어 놓는데 이는 책을 날ㅂ짜별로 정리하기 위함이다. 굳이 정확한 일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책을 구입한 월별 단위로 책을 갈무리한다. 그리고 언젠가 그 큰 책장을 바라보며 내 지난 날을 떠올리기도 한다.

내 감정의 배설구로 써내려간 시덥잖은 일기나 메노보다 어쩌면 책장에 정리된 내 책들을 바라볼 때 기억은 더 생생해 진다. 내가 써놓았던 글들이 주는 생경함보다, 책장에 곶힌 책들이 주는 멱백한 장면에 더 안락해진다고나 할가. 책장에 꽂힌 책들에서 튀어 나오는 인생곡선이나 감정의 그래프가 고스란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책 구입은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행위다. 살아있는 현실 주변을 에워싼 사람이 아니라, 되려 나를 모르는 어느 누군가에게 힘겨운 손을 뻗는 과정이자 매우 실존적 행위다. 그것이 감정의 도움이든 자기계발로서의 도움이든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으려 우리는 책을 읽는다.

책을 구입한 당시에는 심히 간절했으리라. 답답했고, 우울하기도 했을 것이며, 많이 방황했을 것이다. 어쩌면 삶이 시원찮아진 나에 대한 정답을 알려줄 사람을 기다렸을 것이고, 혹은 ‘사랑’을 몰라 그 정답을 찾으려 했을 것이다. 일순간 찾아오는 삶의 의문들을 가지고서 이육사 시인의 바람처럼 어쩌면 저 광야에 백마타고 오는 초인을 열렬히 기다렸을 지도 모른다. 아니면 지금 당장 가진 것을 잃고 싶지 않은 불안함에 수많은 활자에 기댔을지도 모르고, 더 많은 것들을 얻기 위한 열망으로 램프의 지니를 찾으려 했을 지도 모른다.

책장은 간절함의 소산이다. 그리고 그 간절했던 기억들은 박물관을 이루고 도서관을 만들어 낸다. 책에는 지식, 감정, 지혜 따위가 담겨 있지만, 책장에는 내 삶의 필름이 보인다. 그 시절의 나는 어떤 것에 심취해 있었나, 사랑에 얼마나 아파했나, 성공에 얼마나 목매고 있었나. 그런 것들 말이다.

지금에서야 그 그 책들은 책장 한 구석탱이를 차지하고 앉아, 두 번 다시는 열어보지 않을 그저 그런 박제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 우리는 그 책이 처음으로 내 손에 닿았을 때, 첫 페이지를 넘겼을 때, 그것이 내 인생에 남긴 감정과 기대를 절대 잊어선 안된다. 그것이 간절함이든, 단순한 호기심이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