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좋아하고 흥미가 있어하는 분야에 한에서는 배움이 빠른 편이었다. 동시에 벽에 부딪치는 것도 빨랐다. 뭐든지간에 좀 재밌어한다 하는 것에서는 같이 배우는 사람들에 비해서 진도가 상당히 빨리 나갔다. 피아노와 드럼처럼 음악을 배울 때도 그랬고, 유도나 웨이트 트레이닝 같은 운동을 배울 때도 그랬으며, 심지어 지금 직업으로 하고 있는 이야기 창작이나, 속셈학원에서 계산을 배울 때조차 그랬다.

같이 시작하는 이들에 비해서 월등히 빨리 진도를 나가기 때문에 초반에는 더 탄력을 받아서 재미를 느꼈다. 하지만 그게 길고 멀리 가지는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초반에 시행착오를 겪은 애들이 나가떨어지지 않고 버티다 보면 나를 하나둘씩 앞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때쯤에 벽에 부딪치는 경우가 많았다. 하나둘씩 나를 앞질러서 저만큼씩 가는 애들을 보는 것은 솔직히 편한 심정은 아니었다. 그러나 참을 수 없어지는 순간이 꼭 오고야 말곤 했다. 내 뒤에 한참 뒤처지던 아이가 어느순간 나를 앞질러서 나가더니, 어느덧 내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거리까지 저만큼 멀리 가버린걸 보고야 마는 것이었다.

그런 순간이 오면 진지하게 온 힘을 다해서 그 아이를 한번은 이겨보고야 말리라 하고 스스로와 싸움을 걸 듯이 도전을 했고, 보통은 패하고 말았다. 그렇게 온 힘을 쏟아서 싸움을 걸어본 뒤에 패배하면 다시 일어설 힘이나 자존심 같은건 보통 존재하지 않았다. 20대가 되기 전의 어린아이일 때는 더했고. 그리고 그럴 때쯤에 관두곤 했다. 더 이상 아무런 재미를 느끼지 못했으니까.

어릴때는 이런게 좀 트라우마였다. 어린 시절의 일기장을 열어보면 자주 이런 에피소드나 트라우마가 언급되곤 한다. 난 처음엔 배우는게 빠른데, 왜 어느순간부터는 정체되는 걸까? 그리고 왜 나보다 한참 뒤처지던 그 아이는 이제는 내가 따라잡을수도 없을만큼 저 멀리 가버린 걸까? 그 아이는 비결이 뭘까? 나는 왜 뒤처지는 걸까? 왜 나는 이제 그 아이를 이길 수가 없는 걸까?

이런 고민들이 항상 있었다. 나이가 들고 20대가 넘어가면서부터는 남과 경쟁하기보다는 내가 진짜로 재밌어서 하고싶어하는 것들을 배우기 시작하고, 스스로와의 싸움에서 재미를 많이 느끼면서 되도록 그만두지 않고 오래오래(가능하면 평생) 배울수 있는 것들을 찾아다니다 보니 그런 좌절감은 많이 사그라들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어린시절에 내가 받았던 상처나 트라우마들, 그리고 고민들의 원인은 다 ‘잘못된 교육’에 있어왔다. 기본적으로 내가 어린시절, 특히 유년기에 받았던 교육들은 모든 것들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함’을 전제로 깔고 있었다. 속셈학원에서든, 피아노학원에서든, 태권도학원에서든, 체육시간에 하는 체조나 달리기든… 문득 기억나는 것은 내가 초반에 배움이 빨랐기 때문에 어떤 과목이든 상당히 재미있어할 동안, 잘 따라오지 못하던 친구들은 그야말로 죽을상을 하고 하기 싫어 죽겠는 표정들로 억지로 하고 있던 모습들이었다. 그리고 한참 경쟁에서 앞서나가던 내가, 이제 하나둘 다른 아이들에게 추월당하기 시작하면 날 가르치던 교사들은 굉장히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고, 직접적으로 사람을 비교하며 무안을 주고 경쟁심을 부추겼다. 그리고 계속해서 지게 되면 패배자 취급을 하며 자존심을 깎아 먹었다.

내게 있어 어린 시절의 배움은 모두가 경쟁이었다. 그리고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는 아이들에게는 인권이나 자존감, 인성함양 같은 건 없었다. 그냥 루저 취급일 뿐이었다. 선생 뿐만 아니라 부모들조차 그랬으니, 내가 뭔들 뒤처지기 시작한 이상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그걸 끝까지 해내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또 하나는 배움의 과정에 있어서, ‘벽에 부딪쳤을 때 그것을 극복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선생을 1명 빼고는 만나지를 못했었다(1분은 내가 지금도 존경하는 드럼 선생님이다). 생각해보면 단순했다. 초반에 앞서나가던 나와, 나중에 나를 추월해가던 아이들의 차이점은 하나밖에 없었다. 고비나 벽에 부딪치는 순간이 처음에 오느냐, 아니면 좀 늦게 오느냐 그 차이일 뿐이었다.

초반에 신나게 앞서나가던 나와 달리, 처음부터 벽이나 고비에 빠진 아이들은 그 특성상 기초를 철저하게 복습하면서 기본기를 다지게 됐고, 또 선생들도 초반에 잘 헤쳐나가지 못하는 아이들은 많이 케어를 해 주는 편이었다. 그렇게 한번 고비를 이겨낸 아이들은 이후에 오는 고난들을 손쉽게 이겨내며 속도를 붙일수가 있었고, 반면 초반에 진도를 많이 빼서 나중에 좀 어려워지는 순간에 벽에 부딪친 나는 처음에 배웠던 것들조차 헷갈려 하는 혼란에 빠지곤 했다. 어느 순간에는 초반에 잘 하던 것조차도 긴장해서 잘 못하게 되기도 했다. 명백한 슬럼프라고 해도 좋을텐데, 이걸 극복하게 도와주는 선생이 정말 극히 드물었다. 애당초 선생이란 사람들도 자기가 가르치는 아이들끼리 경쟁시켜서 더 잘하는 애 한명을 뽑아내고 싶어했지, 경쟁에서 중도 탈락할 것 같은 아이들에겐 관심도 없었으니.

앞서 말한 그 드럼 선생님의 경우만이 달랐다. 사실 드럼 연주라는 것 자체가 딱히 ‘경쟁’과는 상관이 없는 분야기도 했었다. ‘피아노’는 이상하게도 한국사람이라면 거의 셋중 하나 정도는 다녀봤을까 싶을 정도로 많이 배우기 때문에 묘하게 경쟁이 붙지만, 드럼의 경우에는 일단 그렇지도 않았고, 배우는 과정 자체도 처음부터 상당히 ‘자기자신과의 싸움’에 포커스가 맞춰졌다.

드럼을 처음 배울 때 나는 앞에 패드 하나를 놓고 스틱으로 박자에 맞춰 두드리는 연습을 했다. 4분의 4박자에 맞춰서 1박에 1번, 2번, 3번, 4번. 4번까지 쪼갤수 있게 되는데 한달은 걸린 것 같았다. 나는 시키는대로 우직하게 하는 편이었기에 이번에도 진도를 꽤 빨리 나간 편이었다. 근데 빨리 나갔는데도 한달에 고작 그 정도였다. 가르치는 선생님도 기본기를 꽤 중요하게 생각하셨고, 나는 그저 속이 터지지만 시키는 것만 하면서 딱 하루에 1시간만 하고 집으로 갔다. 솔직히 하루에 1시간 이상을 하기는 힘들었다. 정말로 속이 터질 것 같았으니까. 농담이 아니라 답답한 마음에 혈압이 올라오는게 느껴져서 더 이상 이 짓을 못하겠다 싶을 때 자리에서 일어나면 1시간이 지나있던 것 뿐이지, 1시간만 하려던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지루한 과정을 조금씩 지나다보니 악센트를 어디에 넣는지를 배웠고, 나중에는 변화를 주는 법을 배웠다. 4박자까지 쪼개다가 2박자를 4박자로 쪼개서 총 8박자로 쪼개는 법을 배웠고, 이건 영원히 완벽해지지가 않았었다. 그래서 계속했다. 만족스러울 때까지. 나는 그때쯤 처음 시작했을 때와는 달리(처음에는 부모가 억지로 시켜서 음악 학원에 갔다. 피아노를 5년 배우다 그만 둔 게 너무 아까웠다나 뭐라나. 내 의지로 시작한 드럼은 아니었다.) 드럼과 굉장히 사랑에 빠져 있었다. 그때까지 살면서 가장 싫증을 내지 않고 오래 배운 게 드럼이 아니었나 싶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경쟁이 없었고,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고, 잘 하고 싶은데 열심히 하면 반드시 잘 할수 있었다. 배우는 과정 자체가 지옥같이 지루했기 때문에 사실 하루 1시간 이상씩의 시간 투자만 성실하게 한다면 딱히 슬럼프가 올 일도 없었다. 정확히 ‘한 만큼’만 늘었기 때문이었다.

워낙에 기본기 연습을 많이 하다 보니 드럼 선생님이 다가와서 하루는 이렇게 이야기 할 정도였다.

“거 너무 밟고 지나간 돌다리까지 다시 두드려보는 거 아니니? 가끔은 좀 과감하게 건너뛰고도 해봐야지.”

아마 어지간히도 기본기라든가, 슬럼프가 오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강했었나 보다. 나는 실제로 이제는 누구와 경쟁을 할 일도 없고, 진도를 빨리 나갔다가 누군가에게 추월을 당할 일이 없는데도, 새로운 것을 많이 배우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배운 것을 꾸준히 하려고만 했을 뿐. 드럼 선생님은 그런 나를 붙들고 조용히 드럼 세트에 앉히고는 기본 박자를 알려주셨다. 아마 그때가 거의 반년에서 8개월이 지났을 때였다. 생각보다 길다면 긴 시간인데 그 시간동안 나는 패드만 붙들고 앉아 있었던 것이었다. 아무 욕심도 내지 않고.

처음 세트에 앉아본 기분은 정말 묘했었다. 그리고 세트에서 처음 드럼을 치면서 연주를 해본 기억도 생생하다. 패드를 칠 때와는 다른 재미였다. 아, 이렇게 하나씩 배워나가는 거구나. 재밌었다. 그리고나서도 패드를 치러 연습하러 가는게 싫지가 않을 정도였다. 패드를 잘치게 될수록, 세트에서도 잘 치게 됐었으니까.

지금은 피치못하게 음악은 반 관둔거나 마찬가지지만, 그때 정말 질리도록 패드를 두드렸던 탓인지, 스틱을 잡고 뭐든 쳐보면 얼추 박자가 아직도 나온다. 더블 스트로크 까지는 능숙하게 되지가 않지만(그건 한참 드럼 칠때도 잘 안됐던 거긴 하지만), 나름대로 박자감각이란게 몸에 인이 배겨져 있다. 학교에서 연극을 할 때도, 알게 모르게 그 박자감각의 덕을 많이 봤던 것 같고, 탱고를 추면서도, 사실은 몸을 쓰는 운동을 했던 것보다도 그 박자감각에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사실 탱고의 박자 쪼개기는 드럼에 비교하면 너무나도 단순할 정도니까.

지금도 내가 얼핏 남들 보기에 ‘무용한 것들을’ 사랑하는 것은 아마 그것 때문일 수도 있다. 니가 그동안 탱고나 추고 태극권이나 하지 뭘 했니마니 하면서 뒤에서 욕을 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다. 가끔 나도 그게 굉장히 스트레스기도 하다. ‘기본기’ 라는 건 겉으로 드러나는 게 아니니까. 그러나 5년을 쳤던 드럼이, 나중에 연극에 춤에 내 인생에 드러나지 않게 좋은 거름이 되었던 것처럼, 지난 3년의 공부도 아마 지금 준비하는 연극에 나름 큰 거름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그동안 배운 것들을 맘껏 풀어놓고 놀아볼 수 있게, 얼른 연습에 들어가고 싶다. 첫 연습이 시작될 2월이 벌써 기대가 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