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할 땐 짐이 따라온다.

 

‘여행’이란 단어는 지쳐 쓰러진 우리를 일으켜 세우는 힘을 가졌다.

그 단어를 떠올리는 순간, 우리는 유체이탈을 경험한다. 앞사람의 입김이 느껴지는 만원 버스 안에서도, 상사가 내 맘을 후벼 파는 이야기를 해도, 금요일이 4일이나 남은 월요일 아침에도 이미 마음은 해변가에 자리를 깔고 누워 있을 수 있다. 그럼으로써 앞에 닥친 모진 스트레스를 슬쩍 피하거나, 듣고 싶지 않은 소리를 조금은 의연하게 흘려보내는 것이다.

‘여행’은 생각한 그 순간부터가 즐거움이다.

‘선택’이란 게 이렇게 행복한 것인가를 돌아본다. 삶에서 우리의 ‘선택’은 대개 두려움의 대상이다. 지금의 내가 못나 보일 땐, 과거의 ‘선택’을 후회한다. 이랬더라면, 저랬다라면. 그러니 미래의 나를 앞두고 맞이하는 현재에서의 ‘선택’은 큰 부담이다.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 즉, 지금의 나를 원망하면 어쩌지란 걱정은 불확실성에 갇힌 우리네의 운명이니까. 그런데, 여행을 앞둔 ‘선택’은 마냥 좋다. 설령 그것이 최선의 것이 아니더라도, 무엇을 어떻게 맞이할지 모르는 설렘은 어떠한 후회도 상쇄 한다. 모든 게 즐거운 것이다.

하지만 실제 여행이 시작되면, 현실은 만만치 않다.

여행을 가기 위해 사전에 정리해야 할 것들. 예를 들어 밀린 업무를 해내거나, 부재중에 일어날 일들을 미리 처리하느라 얼마간의 에너지는 동이 난다. 그리곤, 현실적인 일들이 눈 앞에 산적한다. 집을 떠나는 것이니 먹는 것부터, 자는 것, 입는 것, 씻는 것 등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더불어, 어떻게 하면 여행을 좀 더 효율적으로 할까를 고민하다 보면 그것은 즐거움이 아니라 슬슬 무거운 ‘선택’이 되어 온다. 떠나기 전에 마냥 즐거웠던 ‘선택’도 막상 여행이 시작되면서 그렇게 돌변하는 것이다. 이쯤 되면 ‘여행’은 하고 싶은 일인 건지, 해야 하는 일인 건지 헷갈린다.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여행은 짐과의 사투가 된다.

그 짐들은, 나를 위한 것이지만 내가 모시고 다녀야 한다. 여행을 결심하고, 필요한 물건을 가져온 건 나의 선택이다. 그리고 집을 떠나온 자의 숙명이다. 끌고, 들고, 옮기는 동안 스멀스멀 집이 그리워진다. 그저 나를 포용해주는 집을 왜 떠나, 주렁주렁 짐을 달고 여기저기를 나는 왜 전전긍긍하는가. 여행지의 첫 풍경에 경탄하고는, 시간이 조금 지나 습관적으로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댈 때쯤 짐에 대한 불평과 집에 대한 그리움은 귀소 본능을 자극한다.

여행을 할 때.

짐이 따라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집을 벗어난 불편함도 감수해야 한다. 아무리 별이 많은 호텔의 어느 럭셔리한 방이라도,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와 친숙하게 점프하는 내 방의 침대만큼은 편하지 않다. 여행지에서의 즐거움은, 돌아갈 곳이 있다는 전제하에 성립된다. ‘여독’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일상의 피로와 같이, 여행에도 피로가 있다. 일상과 여행의 황금비율이 얼마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는 일상에 쏠리고, 여행에 쏠리면서 그 안에서 아웅다웅하며 위로와 피로를 오간다.

인생이 여행과 같다는 말과, 어차피 여행도 우리네 인생에 속해있다는 사실, 일상이 있어야 여행이 의미가 있으며, 여행을 할 땐 짐이 따라온다는 생각들이, 오늘 저들끼리 내 머릿속을 휘저으며 여행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