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 생뚱맞은 질문을 했다.

김의 노래를 들어본 적 있어?

김? 김이라고?

먹는 ‘김’ 그거 말이야.

그게 무슨 노래를 불러…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 하고 있네.

웬 생뚱맞은 이야기를 하냐는 듯 친구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김이 노래를 한다니 생소하긴 하다. 생각지도 못했던 단어의 조합은 허영만 ‘식객’이라는 만화의 에피소드 중 하나이다. 트럭을 몰고 다니며 식자재 장사를 하는 주인공이 판매하는 김이 별로라는 손님의 한마디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마침 주인공 라이벌이 하는 고급 식당의 손님도 반찬으로 나온 ‘김’ 맛에 대해 말하며 최고의 김을 찾는 여행이 시작된다.

김이라는 식재료는 우리 식탁에서 빠져도 크게 섭섭하지 않은 반찬이지만 식당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반찬이 없을 때는 시중에 파는 일명 도시락김 하나만 있어도 든든하다. 김에 참기름을 바르고 소금을 뿌려 구워내면 고소하고 짭조롬한 맛에 바스락거리는 식감까지 더해져 별다른 반찬이 없어도 밥 한 공기는 거뜬히 비워낼 수 있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조리되지 않은 생김을 구워서 간장과 참기름을 섞은 양념장을 만들어 찍어 먹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도시락김이 대중화되지 않아 시장에 가면 기름을 바르고 소금을 뿌려 바삭하게 구운 김을 투명한 비닐봉지에 넣어서 판매했었다. 부지런한 어머니들은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기도 했다. 어느 날 친구 집에 가니 식탁에 기름을 바르고 소금을 뿌린 김이 놓여 있었다. 어찌나 윤기가 흐르며 맛있어 보이던지 집에 가서 구운 김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그 뒤로 종종 우리 집 식탁에도 조리된 김이 올라오곤 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집에서 유독 조리되지 않은 생김을 많이 먹은 건 외할아버지 영향이었던 것 같다. 할아버지는 부산 외곽의 어촌 마을에서 김을 수확하고 고기를 잡던 분이셨다. 젊은 시절에 김을 말리는 대회에서 우승했던 이야기를 하실 때면 그 시절로 돌아간 듯 생생한 표정이셨다. 본인께서 직접 건져올린 바다향이 가득한 신선한 김을 먹었으니 별다른 조리가 필요 없었으리라.

아직까지도 공장에서 찍어 나온 도시락김을 선호하지 않는 어머니는 그런 김은 맛이 없다고 하신다. 지난주 명절이라 들어온 선물세트 중에 좋은 김이 있다며 온 가족에게 나누어 주셨다. 건네받은 김은 얼기설기하고 투박하기 짝이 없었다. 시중에서 파는 깔끔하게 포장되어 나오는 촘촘하고 매끈한 김과는 결이 달랐다. 부스러기가 떨어질라 조심스레 한 장을 꺼냈는데 얼핏 바다향이 나는 듯했다.

온 가족이 점심을 먹기 위해 떡국을 끓여 달걀지단과 얇게 자른 김을 고명으로 올려서 내어갔다. 고기 고명은 준비하지 못해 아쉬워하며 떡국을 한 숟가락 입으로 가져갔다. 멸치육수만 내어 다소 심심한 떡국 국물이었는데 바다향 가득한 시원한 맛이었다. 김이 풀어지며 국물과 함께 어우러져 시원한 감칠맛이 났다.

새삼스레 김이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었나’ 하고 다시 생각해 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갑자기 몇 달 전 보았던 식객이라는 만화책이 생각났다. 그때도 어린 시절 추억이 살포시 떠올랐었는데 진짜 ‘김’ 맛을 보자 그 기억이 더욱 생생해지는 듯했다. 재래 방법으로 김을 만드는 분들의 노고와  참김이 만들어지는 소리를 시적 언어로 풀어냈다고 생각했던 장면이었다.

바닷가에 펼쳐진 대나무발 위에는 솜씨 좋게 올려놓은 김이 말라가고 있었다. 햇살이 비치면 어느 순간 김이 마르면서 톡톡하는 소리가 난다.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 신기한 소리가 들린다며 재미있어했던 그것은 김의 노래였다. 그 소리도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거의 듣지 못해 잊고 있던 풍경이었다. 나에게는 아지랑이 피어나듯 희미한 기억이지만 어머니께는 얼마나 생생한 젊은 날의 추억일까? 이제는 김을 먹을 때마다 ‘엄마’가 떠오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