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건의(建議)는 틀렸다

 

건의(建議)

  1. 개인이나 단체가 의견이나 희망을 내놓음. 또는 그 의견이나 희망

 

“건의사항?”

 

상명하복이 기본으로 장착되는 회사생활. 지루한 미팅의 끝은 언제나 ‘건의사항’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누구하나 나서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어렵다. 서로 눈치보기 바쁜 건의타임. 흡사 야자타임만큼이나 어렵고 어쩌면 ‘감정적 보복’까지도 생각해야하는 무시무시한 시간이다. 

 

팀웍이 좋고 상하관계가 조금 더 매끄러운 팀에서는 그나마 아랫사람이 눈치보는 경우는 덜하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상사와의 나의 나이차, 직급차, 인간적 친밀도 등 다양한 변수들이 있다. 함께 개고생하며 팀을 키워온 상사라면 조금 더 낫겠지만, 쥐뿔도 모르는 신입의 생각은 상사 입장에선 그저 개소리일 뿐이다. 

 

물론 사람간의 가치관과 생각이 다르고, 또한 합리성의 기준이 저마다 다르니 다양한 의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에 조직의 창의력은 이 ‘다양성’과 ‘다원화’를 얼마나 이루어 내느냐에 따라 그 성과가 달라지기도 한다. 하지만 직급고하를 막론하고 우리가 내뱉는 건의의 대부분은 개인의 합리성과 이기심 사이에서 묘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합리성을 포장한 개인의 이기심, 이것이 하나의 ‘의견’으로 매진되는 것이다. 

 

합리성과 이기심은 전혀 다른 말이지만 일정부분 비슷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 개인의 생각과 가치관이 항상 그 기준이다. ‘모든 인간은 합리적’이라는 경제학의 기본전제에서 합리성을 이기심으로 바꾸어도 어느 정도 맞아 떨어진다. 즉 모든 인간은 자기가 유리한 쪽으로 일을 설계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개인을 위한, 개인에 의한 삶을 살기 위해서라면 그 누가 이런 사고방식에 훼방을 놓겠는가. 하지만 ‘조직’이란 늘 개인의 합리성과 이기심이 끊임없이 충돌하여 합의점을 찾아야 할 따름이다.

 

사회초년생들이 많이 하는 생각의 오류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자신이 생각하는 조직프로세스의 합리성과 상사와 선배들이 생각하는 프로세스의 합리성이 충돌하는 바로 그 지점 말이다. 그리고 이 지점을 두고서 덮어놓고 ‘꼰대스러움’ 이라는 잣대를 들이댄다. 물론 ‘꼰대스럽다’는 표현에는 선배의 태도나 화법을 포함한 모든 분위기를 포함하는 말이겠으나, 초년생들의 태도나 화법도 사실 이와는 크게 다르지 않다. 

 

글쓴이가 처음으로 직장생활을 할 때, 나 또한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직장선배나 상사의 말 한마디는 마치 손오공이 모은 원기옥처럼 거대한 에너지파 같았고, 내가 쏘아올린 작은 기공포로는 그것을 막아 내기는 커녕 항상 줘터지기 일쑤였다. 

 

글쓴이의 직급이 올라갔을 때 내 밑으로 후배가 들어왔다. 어찌어찌 그 시간까지 버티고 있었던 나는 당돌한 후배에게 이때까지 모은 원기옥을 쏘아댔다. 하지만 후배는 늘 불만투성이였다. 처음에는 회사에 대해서, 조직에 대해서, 그러더니 점점 사람과 어느 한 개인에 대해서까지 그의 가치관을 기준으로 평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합리성과 충돌하는 지점을 끊임없이 쏟아냈는데, 나는 꼰대스러움을 벗어나기 위해 태도와 화법에 꽤나 신경을 많이 썼지만 어쨌든 원기옥은 원기옥이었다. 

 

그런데 한가지 내가 후배에게 느낀 것은 그가 말하는 불만과 건의는 지극히 개인적이라는 것이다. 무슨 말인 즉, 그는 업무프로세스의 발전 내지는 효율성을 핑계로 말하고는 있지만, 결국 그 방향은 본인이 조금 더 편한 방향으로 뻗쳐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내 예전 초짜시절을 떠올리게했다. 내가 뱉어냈던 수많은 건의들과 불만들은 과연 선배나 상사들에게 어떤 식으로 비추어졌을까. 기존의 조직이 가진 프로세스를 이제 갓 들어온 신입이 불편하다는 진심을 밑에 깔고 효율성을 핑계로 내세운 것은 아니었을까. 

선배나 상사들은 그래서 원기옥을 쏜다. 조직의 프로세스는 일종의 보이지 않는 약속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협업하고 함께 고생하며 이룩해 놓은 하나의 시스템이다. 이는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결코 실패한 것은 아니다. 정말 망해가는 회사가 아니라면 그 회사는 이 시스템으로 아직도 생존하고 있다는 증거이고, 누가봐도 망해가는 회사였다면 직장을 잘못 고른 우리를 탓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회사는 그들이 만들어 놓은 업무방식을 통해 성장하고 또 성장했다.

 

‘건의’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의 ‘불편’이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인간간의 그물’을 찢어 놓지는 말아야 한다. 회사와 조직과, 팀을 위해서 하는 건의와 개인을 지키기 위한 건의는 지극히 다르다.

 

나는 어떤 조직에 속해 있던 건의를 할 때 가장 신경쓰는 곳이 바로 이 부분이다.

 

“내가 하는 건의가 내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이기심’으로 보이지 않을까’

 

선배들이나 상사들은 사실 누군가가 건의하려는 ‘문제’들을 어느 정도는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사람들의 그물망을 찢어버리거나 다시 고쳐쓸만큼 용기있진 않다. 이 부분이 ‘꼰대스러움’ 이라면 부정하지 않겠다. 허나 그들이 가진 문제인식에는 변함이 없다. 대안이 없거나 추진력 부족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럴때 신입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활력을 불어넣고, 대안을 마련해주고, 추진력을 넣어주어야 한다. 하지만 불평과 불만만 늘어 놓을 뿐 그러지 못한다. 

 

당신의 건의는 틀렸다. 선배에게 ‘명분’을 만들어 주어야한다. 주어를 나에서 상사로 고치고, 선배로 고치고, 회사로 고쳐 다시 말해야 한다. 내가 불편한 것을 말하는 건 단순히 불평이지만, 선배와 상사가 함께 불편한 것을 말해주는 것, 그게 진정한 건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