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서 박승현이라는 보디빌더가 한국 피트니스 업계의 약물 사용 실태를 폭로하는 영상을 올리면서 시작된 이른바 ‘약투’가 화제였다. 아,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아예 화제가 아니었으려나? 어쨌거나 나는 운동을 좋아하고 운동 채널을 주로 구독했기 때문에 거의 영상이 뜨자마자 접했었고, 현역 보디빌더가 자신의 경험을 담아서 풀어내는 실태에 대한 이야기는 꽤 충격적이었다.

내가 칸투칸의 글쓰기 프리터 일을 시작할 때 거의 처음 썼던 글이 ‘보기 좋은 몸’과 ‘건강한 몸’은 다르다는 이야기였다. 아마 ‘강해보이는 몸’ 보다도 ‘정말로 강한 몸’을 추구해야 한다, 뭐 그런 논조였었던 것 같다. 그때 나는 외국의 초일류 보디빌더들은 공공연하게 약물을 사용한다고 말하고 다닌다, 고 썼었다. 그리고 같은 프리터 분에게서였나 담당자분에게서였나, 자신도 운동에 관심이 많은데 그 이야기가 정말이냐고 물어보셨었다.

너무 정말로 모르겠으니 좀 알려달라는 그분의 마음이 느껴져서 솔직히 좀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왜냐면 ‘그거 정말이에요? 아니지 않아요?’ 라고 반문이 오면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도 갑자기 의심스러워지기 마련이니까. 나도 순간 내가 알던 그 실태가 맞기는 맞는걸까? 라고 생각이 잠깐 들기는 들었었다. 그분은 운동하는 사람들은 자존심이 강해서 약물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아마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그분이 말하는 운동선수들은 아마 국내 운동선수인 걸로 추측이 된다.

나는 그보다도 한참 예전에 한 헬스 커뮤니티에서 지금은 큰 수술을 받고 재활중인, 왕년의 전설이 되어버린, 그러나 당시에는 그야말로 유일무이한 황제였던 The King 로니 콜먼의 내한 행사에 다녀왔다는 사람의 글을 읽을 수가 있었다. 그때 그사람은 너무 궁금해서, 왜냐하면 2000년대 초중반쯤이었기 때문에 뭐든지 특정 분야의 선진기술이나 문물은 아직 들어오지 않았던 때였고, 로니 콜먼이라는 사람이 있는 건 알지만 실제로 한국에 오는 건 또 처음 보는 사람들의 심리에, 더군다나 보충제만 먹고 운동해도 되는 줄 알았는데 약물을 쓰니 마니 하고 있으니 너무나도 궁금했던 나머지, 나름 용기를 내어서 로니 콜먼의 내한 행사에 가서 질의 응답 시간에 물어보았다고 했다.

“당신은 로이더인가?”

로니 콜먼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Yes.”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아니면 Sure 였던가. 아무튼지간에 그사람은 그때 그 후기를 남기며 ‘어떤 거부반응 하나 없이 당연하다는 듯 너무 손쉽게 대답해줘서 맥이 다 빠질 지경’ 이었다고 했다. 내가 그 글을 본 게 이미 2000년대 초중반이니, 한 2,3년전 쯤에 칸투칸에 글을 쓸 때는 이미 머릿속에 인이 박혀 있었던 것이었다.

‘최상위 프로페셔널 보디빌더 = 로이더’

내가 보디빌딩, 그러니까 한국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헬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건 군대에 가면서였다. 군대에서 처음 접한 역기나 아령을 들고 전문적으로 근육에 부하를 줘서 크기를 키워가는 운동은, 나름 운동을 많이 했다는 나에게도 꽤 새로운 재미였다. 무엇보다 보디빌딩은 운동이 곧바로 사람의 ‘외모’, 즉 신체적 매력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자존감이 낮거나 번식경쟁에 시달리던 20대 초중반 시절의 남자들에게는 신세계나 다름없었다.

딱 내가 그랬다. 자존감이 낮고 번식경쟁에 시달리면서 20대 초중반이 되어 군대에는 왔는데 모태솔로에 연애도 못해봤던.

자연스럽게 운동에 빠져들었고, 근육의 크기를 키우고 매력적인 몸을 만드는데 용을 썼었다. 물론 제대로 운동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거의 마구잡이로 하는 운동이었고, 전역할 때 쯤에는 군생활에서 얻은 여러 잔부상들에 무리한 보디빌딩까지 겹쳐서 관절과 인대가 꽤 손상된 상태였다.

지금 나는 보디빌딩보다는 기능성 트레이닝 위주의, 그리고 고정적인 부하 운동보다는 움직이고 표현하는 것들에서 더 재미와 보람을 느끼고는 있지만, 사실 그것도 애당초 따져보면 유도하다 다친 부상, 군대에서 심화된 통증, 보디빌딩으로 악화된 건강들이 토대가 되었다. 애당초 다치고, 아프고, 뭔가 더 이성에게 매력을 느끼고 싶고 외모가 아름다워지고 싶은 낮은 자존감의 마음가짐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보디빌딩을 하다가 결국 그것들이 더 악화되고, 너무나도 지속적인 통증이 건강을 해치고 마음까지 피폐해지게 만드는 상황을 근본적으로 해결해보려는 노력에서 나온 결과들이다.

보디빌딩은 그래서 아직도 마음 한켠에서는 매력적인, 그리고 근육의 힘을 키우는 어떤 ‘기본운동’ 차원에서, 또 20대 초중반의 추억을 간직한 존재로 살아있다. 하지만 내가 다시 보디빌딩을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마 내가 다시 좀더 매력적인 몸을 얻고싶어 한다면 오히려 ‘페르시안 밀’ 이나 ‘인디안 클럽벨’ 같은 기능성 트레이닝이면서도 좀더 몸에 부하를 주는 운동, 혹은 ‘무에타이’나 ‘복싱’처럼 그 부하의 강도가 커서 몸의 변화가 극적으로 나타나면서도 ‘움직임’이 기반이 되는 운동을 택할 것 같다.

보디빌딩이 싫어서가 아니다. 보디빌딩보다는 더 내몸에 맞고, 더 재미를 느끼는 것을 찾았을 뿐이다. 보디빌딩에 아무리 실망스런 부분이 있더라도, 약물을 전혀 쓰지 않고도 정말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몸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만일 내가 약물이나 어떤 실망스러운 부분들, 과거에 운동을 제대로 배우지 않고 무작정 하다 당했던 부상들을 이유로 들어 보디빌딩을 하지 않는다고 하면, 그건 그저 같잖은 핑계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보디빌딩에 분명 실망스러운 부분은 있었다. 예를 들면 약물. 앞에서도 얘기했던 약물을 굳이 뒤에서도 또 예를 들어 약물이라고 한 것은, 최근에 약물에 대해서 더 충격적인 폭로를 접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폭로 자체는 한참 된 것인데, 싸이클 황제(였던) 랜스 암스트롱의 약물 디자이너의 인터뷰였다. 이 자는 FBI에 한차례 체포된 후에, 수사에 협조하는 조건으로 선처를 받았던 것으로 보였다. 인터뷰 내용에 따르면, 약물이 인체에 끼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훨씬더 방대해서, 단순히 근육의 크기가 증가하는 게 아니라, 심폐지구력, 스트렝스, 민첩성, 회복력, 활력까지 일반인을 아득히 초월하도록 만들어준다는 것이었다.

거기까지는 사실 나도 알고 있던 터라 크게 놀라지는 않았지만, 바로 그 다음 대목이 처음 듣는 부분이었다.

약물을 하면 이 모든 상승 효과들이 ‘운동을 전혀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타나며(물론 운동을 하면 상승 폭은 더 극적으로 올라간다), 이 상승 효과는 심지어 같은 시간동안 약물을 하지 않고 운동을 정말 토가 나올때까지 한 사람보다도 높거나 비등하다는 것이었다.

아니 이제껏 약물이 괜히 약물이 아닌건 알고 있었지만, 약물 꽂고 ‘숨만 쉬어도’ 그냥 보통의 ‘일반인’들이, 아니 ‘프로선수’들조차 약물을 하지 않고 열심히 운동한 것보다도 상승폭이 크다니.

이 디자이너의 폭로는 갈수록 가관이었는데 ‘회복력’ 차원에서라도 프로선수들은 약물을 다수 복용하고 있고, 분야에 걸쳐서 약물들은 굉장히 골고루 많이 퍼져있다는 것이었다. 깨끗해보이는 축구도 마찬가지고, 야구는 말할 것도 없으며, 육상과 싸이클은 ‘구제불능’의 수준이라는 것이었다. 특히 100m 달리기 부분에서 기록이 9.9 밑으로 나오는 사람들은 전부 의심해봐야 한다고 했다. 순수한 인간의 한계는 9.9에서 10초 언저리이고, 만약 9.9 언더, 그러니까 기록이 9.8대 밑으로 내려간다면 100% 약물이라고 그는 확신했다. 실제로 육상 기록 보유자들 중 대규모 도핑 검사에서 단 1명, 우사인 볼트를 제외하면 모두가 약물이 검출되었다.

사실 좀 복잡한 마음이었다. 충격보다도. 대충 예상은 누구나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다 약쟁이판이었을 줄이야. 그리고 약을 한 사람을 아무리 노력해도 이길 수가 없는데, 다들 알게 모르게 약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씁쓸하기도 해고 한편으로는 화가 났다. 박탈감이 느껴졌기 때문에.

그리고 또, 그 아름다웠던, 같이 감동하고 응원했던 스포츠의 아름다웠던 순간들이 사실은 약물로 이루어진, 비정상적인 순간이었고, 비인간적인 힘에서 나오는 비인간적인 장면이었다는 걸 안 순간의 배신감.

다시 약투로 돌아와서, 그래서 그 예전의 그 시절을 떠올리면 지금은 참 격세지감이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이런 폭로가 손쉽게 유튜브 매체를 통해서 전파되고, 또 화제가 되고 어떤 현상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더해서, 박승현씨에게는 다수의 보디빌딩, 현역 피트니스 관계자들이 연락을 해서 협박을 하고 언성을 높였다고 한다. 더군다나 박승현씨의 약투를 지켜보는 사람들 중에서도 ‘자기도 현재 약물을 하고 있는 약쟁이 주제에 누가 누구를 욕하는 거냐?’ 같은 냉소적 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거기에 모 운동 크루의 팀원이 직접적으로 박승현씨를 공격하면서 문제가 되기도 했었다. 이 크루의 리더는 ‘약투는 지지하지만 그사람도 약쟁이일 뿐이다. 나는 모든 약쟁이가 싫고 그 사람도 싫다’는 식의 이상한 논리를 피면서 박승현씨에 대한 공격을 정당화했다.

그렇게 ‘약쟁이가 약쟁이 까는’게 싫으면 그동안 내츄럴로 운동하던 사람들은 다 뭐하고 있었나? 집에서 콩나물이나 무치고 있었나? 아무리 내부 고발자에 대해서 쥐뿔만큼도 신경 안쓰는게 이 나라라고는 하지만, 특정 집단의 범죄 행위나 악행과 악습을 고발했는데, 오히려 용기있게 온갖 불이익을 감수하고 내부고발을 한 사람이 공격을 받는다?

현재는 박승현씨에 대한 지지자들이 더 많아 보이지만, 나는 그 현상 자체에 대해서 굉장한 씁쓸함을 느꼈다. 특히 가장 마지막에 말했던 케이스가 더더욱. 작년, 연극계에서 처음 미투가 나왔을때도, 각 예술대학들이 악습과 폐단, 군기잡기 문화의 개선을 요구하며 폭로를 하고, 교수가 학생들에게, 연출이 배우를 대상으로 하는 권력형 성범죄에 대한 미투가 나왔을 때, 그때도 꼭 그런 사람들은 있었다.

‘결국 너도 그 안에 있었던 동조자 아니냐’

‘지금 까지 뭘 했냐’

‘니가 이제와서 말할 자격이 있냐’

‘왜 그때는 말을 못했냐’

나는 사실 신춘문예로 등단을 한 것도 아니고, 내가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는 ‘연극계’ 사람이라는 생각조차도 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어쨌든 연극을 하는 ‘연극인’이기만 했는데도 그런 비 연극인들로부터 받는 거의 무차별적인 공격이 나를 분노하게 했다.

이제 와 얘기지만, 굉장히 존경하는 어떤 분이 이윤택에 대해서 이런 논평을 한 걸 읽은 적이 있었다. 요약하자면 이랬다.

‘한국 연극이 이윤택이라는 괴물을 가만 놔 뒀기 때문에, 한국 연극은 사실 이윤택보다도 더 나아갈 수 있었는데 고작 이윤택에 머무른 걸 수도 있다, 한국 연극은 무려 이윤택이 아니라, 고작 이윤택일 것이다’

통렬하게 공감하는 뼈아픈 말이었지만, 한편으론 전혀 인정할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이윤택의 악행과 범죄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지만, 한국 연극에서 이윤택은 ‘고작’이었던 적이 없었다. 이건 저 논평을 한 분이 그야말로 ‘비 연극인’ 이기 때문에, ‘내부자’가 아닌 ‘외부인’이기 때문에 어찌 보면 ‘생각없이’ 할 수 있는 논평이었다. 아직까지도 나는 이윤택을 범죄자이자, 내 연극 인생의 롤모델이자 선생님‘이었던’인간 으로 기억하고 있다. 한국 연극이 이윤택이라는 괴물을 가만 놔 뒀던 이유는, 우리가 단순히 내부 동조자여서가 아니라 이윤택은 절대로 ‘고작’이었던 적이 없는 ‘무려’ 이윤택이었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그의 작품들의 예술적 성취만 놓고 보면 그야말로 독보적인 작품들이 여럿이었다(평작이나 졸작도 없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연극과 전혀 관련없는 그분들의 그 발언이, 나는 그때는 어찌나 폭력적으로 느껴졌는지.

내가 연극계 미투에서 받았던 충격은 그렇기 때문에, 반대여서 더 컸었다.

‘고작’ 이윤택이어서가 아니라, ‘무려’ 이윤택이었는데, 그 독보적이었던 예술적 성취가 범죄와 폭력과 악행과 부조리로 만들어진, 피와 뼈로 쌓은 추악한 탑이었단걸 알았기 때문에 더 충격이었던 것이었다. 볼품없는 탑이 아닌, 정말 멋있는 탑이었는데, 그걸 보며 감동도 했는데 그 구성물이 범죄였단 걸 알았기 때문에 충격이었던 것이었다.

그 시기를 담담하게 고민하고 반성하고 보냈던 한 사람으로써, 이번 박승현씨의 약투, 비록 피트니스계에 국한된 작은 소란일 수는 있겠으나, 그 단면에 보이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며 또한번 그 씁쓸함의 데자뷰를 느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