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고 싶을 때 나에게 다가온 말

그럴 때가 있다.

어디선가 뚝 떨어져 갈 길을 잃은 듯한 느낌이 들 때.

여긴 어디, 난 누구를 수 없이 되뇌어보지만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어쩌다 어른이 되고, 어쩌다 직장인이 되고, 어쩌다 부모가 되면서 느끼는 시차일까. 마음의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은데, 돌아가는 세상의 속도는 아우토반을 질주하는 자동차의 그것과 같다. 허겁지겁 속도를 내어, 나에게 주어진 세상의 요구를 쫓아가는 내 마음의 원형이 영 안쓰럽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더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허탈하다.

속도는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도로에는 나보다 빨리 가는 미친놈과, 나보다 느리게 가는 바보만 있을 뿐이라는, 자기중심적이면서도 상대적인 생각. 아니라면서도 난 상대의 속도로 나의 것을 가늠한다. 나보다 빠른 사람들은, 분명 더 좋은 조건과 운이 따랐을 것이라며 시기 질투한다. 내 뒤에서 나를 보며 그러한 한탄을 뱉어내는 사람들은 생각하지도 못한 채. 빨리 가면 빨리 갈수록, 앞에 있으면 앞에 있을수록 불안하다. 나를 따라잡을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앞사람과 더 멀어지는 그 간격을 보면서.

그런데, 삶은 속도로만 이루어져 있을까.

속도에 연연하다가, 생각지 못한 신호등에 멈춰 서는 때가 있다. 때론, 원하지 않는 사고가 나기도 한다. 그러면, 그제야 깨닫는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왜 이렇게 속도를 내며 나아가고 있지?”. 아차, 방향을 생각 못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면서 전속력으로 달려 나가는 자신에게 화를 내다, 곧 연민을 느낀다.

“바보 같이 지금까지 무얼 한 거야? 아, 그런데 힘들긴 힘들었겠네. 그래, 잠시 쉬어가.”

삶이란 게 그렇다.

속도를 내다보면 방향을 잃고, 방향을 생각하다 속도를 내지 못한다. 더 빨리 가지 못한다는 자책감과, 목적지에 대한 집착은 ‘지금 이 순간’을 바라보는 시야를 오염시킨다. ‘방향’과 ‘속도’에만 열중하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잊는 것이다. 속도를 쫓다 방향을 잃고, 방향을 잃어 나를 잊은 것이다. 그 둘을 결정하는 것은 자신인데도. ‘방향’은 내가 바라보는 곳이며, ‘속도’는 누구를 따라가는 것이 아닌 나만의 페이스다.

그걸 잠시 잊었다가, 한 드라마의 대사를 듣고는 번쩍 정신이 들었다.

무언가를 바로 잡고 싶다는 지난한 인생의 고민은, 결국 내가 있는 곳. 지금으로부터.

“한숨 쉰다고 해결되지 않아요.”

“길을 잃은 느낌이에요.

어디로 가야 할지 정말 모르겠네요.”

“어디 있는 게 뭐가 중요합니까.

형사님이 어디에 있든, 형사님은 형사님이지 다른 사람이 아니잖아요.

그 자리에서 늘 최선을 다하다 보면 모든 걸 바로 잡을 수 있어요.”

– [라이프 온 마스] 기억을 잃은 한태주 형사에게, 무심하지만 의미 있게 던진 식당 주인의 말 –